전국의 대형병원들이 일차의료의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이나 지방 분원 설립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명지의료재단은 앞서 발표한 충청남도 내포신도시 종합병원 건립에 더 속도를 낸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내포 명지병원 건립추진단'을 발족하고 홍성화 의료원장을 단장에 임명했다. 개원 시기도 당초 계획보다 3년이나 앞당겨진 2026년 3월을 목표로 내세웠다.

또 충북대병원은 앞서 오는 2029년까지 4148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500병상 규모의 분원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최근에는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에도 선정돼 청신호가 켜졌다.

전남대는 최근 부총장이 직접 전남대병원 여수분원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이를 두고 지역 정치권에서는여수분원이 아닌 전남 지역에 아예 새로운 의대를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대학병원들의 분원 설립 움직임은 수도권에서 더 활발하다. 현재 수도권에만 총 10개의 분원 설립이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장 작년 3월에경기도 광명시에 700병상 규모의 중앙대광명병원이개원한 데 이어, 서울대병원은 800병상 규모의 분원인 '배곧서울대병원'을 경기도 시흥에 올해 상반기 중 착공할 계획이다.

연세대도 인천 송도에 비슷한 규모의 세브란스병원 분원 착공 계획을 밝혔고, 서울아산병원은 인천 청라에, 경희대병원은 경기 하남에 분원 설립 계획을 밝혔다. 이밖에 한양대의료원도 경기 안산시에, 아주대병원은 경기 평택시와 파주시에 분원 설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길병원도 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성남시·하남시에 걸쳐 형성된 위례신도시에 분원 건립 계획을 밝혔고, 이밖에 대학병원 분원은 아니지만 부영그룹이 서울 금천구에 810병상 규모의 금천·우정병원(가칭) 건립 계획을 밝히고 이미 기공식까지 마친 상태다.

고려대의료원도 최근에 현재의 안암, 구로, 안산병원에 이어 경기도 과천과 남양주 두 곳에 2028년 개원을 목표로 분원 설립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렇게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수도권에만 총 6000개 이상의 병상이 증가하게 된다. 또 기존의 서울에 위치한 대학병원들도 상당수가 증축 계획을 밝히고 추진 중이다.

하지만 대학병원의 무분별한 확장은 대한민국 의료전달체계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도 의원급 의료기관과 중소병원들의 경영난이 가속화돼 폐업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는 마당에 대학병원 분원이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설립되면 이로 인해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져 각종 '의료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

사실 상급종합병원은 보건복지부에 관리·감독 권한이 있어 병상수를 늘리기가 쉽지 않지만 분원의 경우 사실상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권한이 있어 병상수 늘리기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 때문에 대학병원 분원을 유치하려는 지자체와 외연 확장을 노리는 병원계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대학병원들의 분원 설립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원가나 중소병원 측에서는 상당한 우려를 나타내며 무분별한 분원 설립으로 대형병원 쏠림을 부추기는 것보다 의료전달체계의 정상화가 우선이라는 의견을 거듭 밝히고 있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정책이 의료전달체계 정립을 배제한 채 단편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27일 기자와 통화에서 "대학병원이 분원을 설립하겠다는 것은 본연의 역할인 연구나 중증질환 진료가 아닌 동네의원에서 충분히 진료할 수 있는 외래환자를 더 많이 받아들이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이로 인해 국민의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대학병원 분원으로 인해 그 지역의 개원가와 중소병원은 더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각종 '의료 왜곡'을 불러올 것"이라며 "분원 설립에 나선 대학병원들은 각성하고 그 지역의 중소병원들도 좀 더 위기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보다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고민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