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유령수술'…솜방망이 처벌 실효성 논란

“대리수술, 의료사고 범주서만 처벌돼 수많은 의료범죄 은폐”…보다 엄중한 처벌 촉구

언론사

입력 : 2021.06.14 07:22

지난달 말 인천 소재 척추전문병원에서 행정직원이 대리수술을 한 것으로 드러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데 이어 지난 8일, 광주의 한 척추 전문병원에서도 내부 제보에 의해 상습적인 대리수술이 이뤄진 정황이 파악됐다.

연일 대리수술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지난 2일 열린 ‘의사 자율정화 강화를 위한 대안 제시’ 방안 기자회견에서 대리수술 근절을 위해 의료계 자정활동을 통한 근본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은 “대리수술로 인해 피해를 입은 환자와 그 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들께 이 자리를 통해 의료계를 대표하여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드린다”며 “극소수의 의사들이 관여한 대리수술은, 환자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중대 범죄인 것은 물론이며 의료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대다수 선량한 의사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비윤리적 행위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회장은 “이에 의협은 위법하거나 비윤리적 의료행위를 한 혐의가 적발되거나 드러난 회원에 대해 명확한 사실관계 파악에 기초해 ▲엄격하고 단호한 자율정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자율정화 ▲중앙회와 시도의사회가 함께하는 공동 자율정화를 추진해나가는 한편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강력히 대응해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의협은 인천 척추전문병원 및 광주 척추전문병원 대리수술 의혹 관련자들을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 조치했으며 해당 의료기관 대표원장을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심의를 요청키로 의결한 상태다.

한편 불법의료행위를 한 의사들에 대한 더욱 엄중한 처벌 없이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최근 대리수술 논란이 불거진 인천 척추전문병원 규탄 기자회견에서 “범법자를 처벌하고 환자안전을 보장하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의료노조는 “언론을 통해 불법의료행위와 불법 수술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의협이 엄중 조치를 약속했지만, 의사 대부분은 가벼운 벌금형 처벌을 받는 데 그쳤고 그마저도 3년 뒤에 의사면허를 재발급 받아 다시 병원을 열고 일을 시작했다”라며 “엄중 조치를 약속한 의사협회는 오히려 불법의료행위를 한 의사들의 면허 재발급을 위해 애썼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노조는 “3년만 기다리면 다시 복권되는 솜방망이 처벌을 지속하면 의사들의 불법의료행위를 막을 수 없다”며 “더욱 강력하고 치명적인 제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리수술’을 자행한 의사들에 대한 적법한 처벌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지난 1일 의료범죄척결 시민단체 환자권익연구소·닥터벤데타와 대리수술 피해자 A씨는 대리수술 가해자에 대해 사기죄 적용 뿐만 아니라 중상해죄‧살인미수죄로 다뤄야 한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요청서를 제출했다.

대리수술 피해자 A씨는 2013년 1월 서울 강남구 소재 유명 성형외과에서 양악수술, 광대뼈 축소수술, 앞턱수술 등을 받았다. 당시 해당 병원 원장 유모씨는 치과의사 등에게 대신 수술을 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 같은 유령수술로 인해 A씨는 현재까지 안면 감각기능이 회복되지 않는 중상해를 입었다.

이후 A씨는 유모 원장 등의 중상해 및 살인미수죄 처벌을 위해 7년 동안 법적 싸움을 벌여왔다. 서울중앙지검은 2016년 4월, 의료법위반, 사기죄로 해당 병원 전 원장 유모씨를 공소제기했고 2020년 8월 제1심 재판부가 선고한 징역 1년 실형이 지난달 27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다만 2016년 당시 검찰은 ‘상해를 가할 범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취지로 상해 혐의는 불기소 처분했으며 지난 3월 강남경찰서 역시 검찰의 불기소처분을 이유로 중상해 및 살인미수죄 형사고소에 대해 불송치 결정했다.

이들 단체는 검찰수사심의위 소집요청 기자회견 당시 “유령대리수술은 의사가 직무상 범위 내에서 일반적으로 저지를 수 있는 것으로 예정하고 있는 범죄유형을 벗어나 지극히 반사회적인 것”이라며 “그럼에도 수사기관의 소극적인 법적용으로 대부분 의료법 위반으로 벌금형 처벌을 받고 극히 일부분만 사기죄와 경합해 공소제기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로부터 수술동의를 받은 의사가 아닌 제3자의 대리유령수술을 단지 병원비를 착복한 경제적 법익침해 범죄로만 처벌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의료범죄를 중상해‧살인미수죄로 기소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조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의료인이 아닌 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하거나 의료인에게 면허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 의료행위를 하게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이때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를 하게 한 경우 의료인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다.

이에 대해 대리수술 피해자 A씨의 법률대리를 맡은 원곡법률사무소 최정규 변호사는 “A씨 사례의 경우 유모 원장은 수술을 의사 면허가 있는 치과의사에 맡겼기 때문에 해당 조항에 적용되지 않는 점이 있다”고 설명하며 “의사 면허의 문제를 떠나 수술을 집도하기로 한 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가 수술을 진행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환자권익연구소 이나금 소장은 “환자의 동의 없는 수술이 문제”라고 강조하며 “이러한 의료범죄가 업무상과실치사죄 등 ‘의료사고’의 범주로만 단정돼 처벌되기 때문에 수많은 의료범죄들이 ‘암수범죄’로 숨겨져 왔다”고 말했다.

이런 행태가 오래 유지되다 보니 관행이 됐고 중상해 살인죄로 강력하게 처벌되지 않는 한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소장은 “수술은 기본적으로 신체에 대한 침해를 가져온다. 그럼에도 수술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건 환자의 동의가 있기 때문”이라며 “대리유령수술과 같은 환자의 동의가 전제되지 않은 수술 행위는 그 결과에 상관없이 형법상 상해죄에 해당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수술실에서 과다 출혈로 숨진 고(故) 권대희씨의 어머니이기도 한 이나금 소장은 오늘까지도 70여일이 넘도록 국회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입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여오고 있다.

다만 이 소장은 “수술실내부 CCTV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어느 정도 형성되면서 CCTV가 유령수술의 해결책인 것처럼 비춰지고 있지만 유령수술 의사를 처벌하는 근본적인 해법은 될 수 없다”며 “의료사고 발생 시 약자일 수 밖에 없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최소한의 창과 방패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권대희씨의 사망원인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수술실 CCTV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대리수술 관련 의료분쟁에서 수술실 내부 CCTV자료가 있는 사례는 권대희씨의 사례가 유일하다.

이 소장은 “최근 검찰 측에서 (권대희사건에 대해)당초 공소제기 한 업무상과실치사죄에서 살인죄로 공소장 변경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며 “만약 공소장이 변경이 된다면, 처벌까지 가는 길도 쉽지 않겠지만, 대리수술에 대한 상해치사가 적용되는 첫 판례가 나온다면 환자의 동의 없는 의료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라고 전했다.


메디컬투데이 이재혁 기자 dlwogur93@mdtoday.co.kr

  • * Copyright ⓒ 메디컬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 * 본 기사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인기뉴스 의료계뉴스 최신뉴스
     
     
    의료행사전체보기+
    의료 건강 전문가를 위한 의료 건강 뉴스레터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