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미충족 의료 수요가 높은 분야의 치료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매달 초 희귀의약품을 선정한다. 이번 4월에는 3개 약물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했다.
식약처의 희귀의약품 지정은 희귀난치성 질환 및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에 대한 치료제 개발과 허가를 신속히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2013년부터 희귀의약품 지정 제도를 도입해 해당 질환의 치료제 개발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희귀의약품은 (일반) 희귀의약품과 개발단계 희귀의약품으로 나뉜다. 일반 희귀의약품은 이미 허가된 품목에서, 개발단계 희귀의약품은 기존 치료제보다 유효성이 더 개선된 임상 시험에서 평가 중인 의약품 후보물질에서 지정된다.
제도 시행 이후 2025년 3월까지 일반 희귀의약품 383개, 개발단계 희귀의약품 64개가 지정되었다. 이 가운데 식약처가 지난 4월 1일 ‘악사틸리맙’(axatilimab) ‘서플루리맙’(serplulimab)을 일반 희귀의약품으로, ‘사볼리티닙’(savolitinib)을 개발단계 희귀의약품으로 추가 지정함에 따라 각각 385개, 65개로 늘어났다.
① ‘악사틸리맙’ = 이식편대숙주질환(GVHD) 치료제
‘악사틸리맙’의 대상 질환인 GVHD은 조혈모세포이식 후 수혈된 림프구가 면역 기능이 저하된 숙주(수혈 받은 사람의 신체)를 공격하는 일종의 자가면역 질환이다. 발열, 발진, 간 기능 이상, 설사, 범혈구 감소증 등의 증상을 보인다.
조혈모세포이식 이식 후 3개월을 기준으로 급성과 만성으로 분류한다. 급성은 생명에 치명적이지만, 고용량의 면역 억제제 등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만성 GVHD이다. 이 유형은 GVHD 증상이 만성적으로 발생하여 환자의 삶의 질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따라서 치료 전략은 급성과 달리 완치가 아닌 증상을 완화하고 장기 손상을 예방하는 것이 목표다.
만성 GVHD의 1차 치료제는 스테로이드 제제, 칼시뉴린 저해 계열의 면역 억제제가 활용된다. 이 두 제제로도 만성 GVHD의 증상이 잘 조절되지 않는 경우 가능한 모든 면역 억제제를 동원해 2차 치료를 시도한다.
하지만 현재 상용화된 면역 억제제에도 불응하는 만성 GVHD 환자에게는 달리 손 쓸 방법이 없다. ‘악사틸리맙’은 이에 응답하여 만성 GVHD의 3차 치료제로 등장한 신약이다.
이 약물은 면역세포 중 하나인 대식세포의 생존과 활성에 관여하는 대식세포 집락 자극 인자 수용체 1형(SF-1R)을 억제하는 항체 약물이다. CSF-1R을 차단하여 대식세포의 활성을 저해, 염증 반응을 억제하고 만성 GVHD 증상을 완화하는 기전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만성 GVHD 3차 치료에 대한 긴급한 의료 수요를 고려하여 ‘닉팀보’(Niktimvo)라는 제품명으로 지난 2024년 8월 ‘악사틸리맙’을 조건부 허가했다. 올해 1월에는 정식 허가로 전환한 바 있다.
국내의 경우, 식약처가 지난 2021년 5월 ‘악사틸리맙’의 3상 임상시험계획(IND)을 승인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악사틸리맙’의 임상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식약처는 ‘악사틸리맙’의 국내 상용화를 더욱 앞당기기 위해 이번에 ‘악사틸리맙’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참고로, ‘악사틸리맙’은 미국 신닥스(Syndax)와 미국 인사이트(Incyte)가 공동 개발하고 있다. 미국 판권은 양사가 공동으로 행사하고, 그 외 지역의 권리는 신닥스가 독점 보유하고 있다.
② ‘서플루리맙’ = 확장병기 소세포폐암(ES-SCLC) 치료제
소세포폐암은 악성도가 매우 높은 악명 높은 암이다. 진단 후 5년 생존율은 국소 진행 상태에서 30%, 전이 시 단 18%에 불과하다. 폐암의 특성상 발견 시점에는 이미 다른 조직으로 전이된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 5년 이상 생존하는 환자는 18%에 불과한 셈이다.
특히 ES-SCLC는 소세포폐암의 하위 유형 중에서도 예후가 가장 나쁘며, 환자의 생존 기간은 평균 7~11개월, 5년 생존율은 2%도 안된다.
소세포폐암의 생존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치료가 가능한 타깃이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터라 쓸 수 있는 옵션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소세포폐암(NSCLC)과 달리, 소세포폐암 치료는 여전히 항암화학요법이 기본 원칙으로 자리매김했다.
‘서플루리맙’은 소세포폐암의 미충족 의료 수요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치료제다. PD-1 면역관문 단백질의 활성을 저해하여 면역 세포의 암세포 공격 능력을 증폭시키는 기전이다. 중국 상하이 헨리우스 바이오파마(Shanghai Henlius Biopharma)가 보유하고 있다.
일반적인 PD-1 면역관문 억제제와 별반 다를 바 없어보이지만, ‘서플루리맙’은 소세포폐암에도 효과적이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기전 덕택에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은 2022년 5월 ‘헤트로니플라이’(Hetronifly)라는 제품명으로 ‘서플루리맙’+항암화학요법 병용을 처음 허가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의 의약품 허가 기준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다소 동떨어져 있기에 ‘서플루리맙’은 그간 중국 내수 시장용 항암제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유럽 집행위원회(EC)가 올해 2월 NMPA에 이어 ‘서플루리맙’을 허가함에 따라 ‘서플루리맙’은 소세포폐암 치료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식약처 또한 EC의 ‘서플루리맙’ 허가 소식을 전해 듣고 이번에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 ‘서플루리맙’의 국내 임상 시험은 실시되지 않은 상황이다.
③ ‘사볼리티닙’ =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NSCLC) 치료제
‘사볼리티닙’의 보유사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AZ)로, 이 회사는 현재 자사의 3세대 티로신 키나아제 억제제(TKI) ‘타그리소’(Tagrisso, 성분명:오시머티닙·osimertinib)를 통해 NSCLC 치료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2024년 ‘타그리소’의 매출은 65억 달러(한화 약 9조 원)에 달했다.
하지만 ‘타그리소’ 또한 TKI라는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돌연변이로 인한 내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AZ는 ‘타그리소’의 불응성 또한 극복할 수 있는 NSCLC 치료용 4세대 TKI 찾기에 나섰고, 그 결과물이 중국 허치메드(HutchMed)가 개발 중이던 ‘사볼리티닙’이다.
참고로 ‘사볼리티닙’은 허치메드가 당초 발굴한 것으로, AZ는 지난 2011년 허치메드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며 중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의 ‘사볼리티닙’의 독점 권한을 확보한 바 있다.
‘사볼리티닙’은 3세대 TKI의 내성을 유발하는 cMET 수용체 변이를 억제하는 기전이다. 이를 토대로 암세포 생존과 증식에 필수적인 PI3K·AKT 및 MAPK·ERK 등의 신호전달 경로를 차단하여 NSCLC를 치료할 수 있다.
특히 3세대 TKI에 불응하는 비율이 최근 점점 늘어나고 차세대 TKI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AZ는 새로운 수익 구조 창출을 목표로 현재 ‘사볼리티닙’의 상용화를 위한 임상 2/3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식약처는 이에 따라 ‘사볼리티닙’을 임상 시험에서 평가 중 약물 규정, 일반 희귀의약품이 아닌 개발단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볼리티닙’은 ‘오르파시스’(Orpathys)라는 제품명으로 지난 2021년 6월 NMPA로부터 허가를 취득한 바 있다. 식약처와 NMPA 간의 데이터 호환이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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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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