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안병정 기자] 우리나라 최초 의사 문인 '김대봉(金大鳳)' 선생의 삶과 문학 세계를 조명한 세미나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의대 동창회관(함춘회관)에서 열렸다. '의학과 문학 접경 연구소(소장 유형준, 전 한림의대교수cm병원 내과)'가 주최한 이번 세미나는 의사 문인으로서 김대봉 선생의 삶을 깊이 있게 탐구한 최초의 학술 연구 발표회로서 높은 관심을 모았다.

△제7회 의학과 문학 접경 연구 세미나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의 기념촬영(앞 줄 가운데가 유형준 연구소장).

세미나에는 의학과 문학 분야 전문가들이 다수 참석했으며, 발제와 토론을 통해 김대봉이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문인 임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동시에 의사로서 생명존중의 길을 문학으로 비춰 온 김대봉 선생의 숭고했던 삶을 확인하고, 의학과 문학의 접경이 인간주의를 완성하는 기름진 토양임을 공감하는 장을 만들었다. 이날 세미나의 주인공김대봉 선생(金大鳳, 1908. 2. 11 ~ 1943. 3)은 일제 강점기에 살다간 의사이며,'시인이자 소설가'다. 호는 포백(抱白). 그는 구한 말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으며, 평양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여 의사가 되었다. 신지식인으로서 전도양양했던 김대봉은 의사가 된 처음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의원'을 열어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고, 농촌 계몽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리고 몇 해 뒤 서울로 올라가 경성제대 세균학교실과 경성제대 부속병원 외과에서 일하며 청운의 꿈을 펼쳤다. 당시 김대봉은 의사로서 연구와 임상에 주력하면서도 인본주의자로서 일상에서의 연민을 늘 문장으로 달래고 노래해 온 휴머니스트였다. 이런 사상으로 평양의전 재학시절부터 여러 비평을 조선일보 등 주요 매체에 수시로 발표했고, 24살 나이 때는 소설 '연애의 결산'을 신동아에 발표(1932년) 하는 등 문학적 소양을 드러냈다. 이후 30세 나이에 들면서 당대의 문학인들과 함께 동인지 '맥'의 창간을 주도했으며, 시집 '무심(無心)'을 펴내 문학인의 전성기를 열었다.

抱白 김대봉, 문학작품 187편 남긴 의료문학 선구자 그러나 한창 작품 활동을 펼칠 나이인 36살에 환자로부터 발진티푸스가 옮아 세상을 떠나는 비운을 맞았다. 이에 그의 문학 활동은 짧은 기간에 끝났다. 그럼에도 10여년 남짓 글짓기에 몰입했던 기간 동시를 포함하여 시 147편, 비평과 산문 27편, 의료논설 11편 등 모두 187편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다. 이를 통해 김대봉은 의업과 문학을 대등하게 집중하며, 두 영역 간 접경을 이루고자 했던 의료문학의 선구자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한편 '의학과 문학 접경연구소'의 이날 세미나는 △포백 김대봉의 삶과 문학(한정호 경남대 교수) △의사시인 김대봉(유담 의학과문학접경연구소장) △문학의 시선-김대봉의 시를 포함하여(권혁수 시인) 등 세 갈래로 진행되었다. 특히 김대봉의 문학적 생동(生動)을 공감하기 위해 세미나 앞 순서에서 포백의 '해후(邂逅)'를 국내 시낭송계를 대표하는 문미란, 김해경, 김봉술, 백원경, 네 분의 시낭송가가 합송하였으며, 마지막 순서 또한 문미란 시낭송가가 김대봉의 대표시 '무심(無心)'을 낭송하여 행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다음은 이날 세미나에서 소개된 의사 문인 김대봉 연구의 요약]

포백 김대봉의 삶과 문학(한정호 경남대 교수)

김대봉의 본격적인 시쓰기는 일제 강점기 암담한 나라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1930년대 초반 그의 문학적 성향은 대개 관념적이고 선동적이긴 하지만, 나라 현실에 대한 직정적 토로 속에는 강한 역사의식과 시대적 사명의식이 배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의 문학적 성향은 점차 그 의지가 느슨해지면서 삶의 허무를 되새기는 소시민적 현실주의로 치닫게 된다. 그 결과 그의 작품들은 그 무렵 나약한 지식인으로 느끼는 고뇌와 허무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1930년대 후반에 들어선, 문학적 성향은 개인적인 상실의식에서 비롯되는 비애의 정서가 주류를 이루면서, 그의 관심은 자신의 구체현실에 대한 토로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끝으로, 그는 의사라는 직업으로 말미암아 문학과 의학의 공통적인 속성을 인간주의의 완성에서 찾고자 했다. 그렇다고 그의 문학적 특성을 섣불리 인간주의로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토록 바라던 작품세계는 현실 극복의 한 방안으로 모색한 '무심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그의 문학관은 암담한 나라 현실과 그의 짧은 삶에 의해 미완성인 채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고 여겨진다.

의사시인 김대봉(유담 의학과문학접경연구소장)

이날 발표에서는 김대봉의 의사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해 낸 내면의 심지(心志)에 시각을 집중했다. "나에게는 낮과 밤이 없습니다./ 겨울과 여름이라니,/ 설과 추석도 없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썩은 살에 붕대를 감고// --중략--// 굳게 메스를 들고/ 의심(醫心)을 두드리며,/ 동방에 켜진 불을 밝혀야 하노니,/ 이같이 쓸쓸한 광야에/ 무덤만 같이 할 죽음과 싸우는 내 앞에,/ 명예가, 부귀가, 무엇이며,/사랑이 있었던가,/ 모두가 바라지 못할 것,/ 그보다는 불멸의 진리를 찾아서/ 새 생명을 이어가야 하리다." 유담 시인은 김대봉의 시 '醫心'을 예로 들어, '불멸의 진리'와 '새 생명 추구'의 의사 김대봉을 조명했다. 이처럼 성실하면서도 연민에 젖은 인간주의는 의업에서뿐 아니라 문학에서도 근간을 이루었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인간주의 연민의 실천은 쉽지 않아서, 김대봉은 '의사로서 문학은 퍽 힘들었다'라고 고백했던 적이 있음을 소개했다. 특히 유담은 그처럼 힘든 의학과 문학 사이의 모순 속에서, 자신이 속한 인간을 향한 연민을 치유할 온전한 인간주의를 꽃피우고자 연단했던 의사시인 김대봉을 다음과 같이 일렀다.

"의사 김대봉은 시를 지었다. 시인 김대봉은 의업을 수행했다. 활동 영역이 달라, 스스로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두 영역의 접경에서, 타고난 진실성과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하기 위해, 역시 그 진실한 성실로 '인간주의적 연민'을 추구하고 다졌으리라."

문학의 시선-김대봉의 시를 포함하여(권혁수 시인)

포백의 시 '무심'은 자연의 무심함을 통해 인간에게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동시에, 자연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포백의 시가 주는 메시지는 니힐리즘에 근접하는 것 같다고 발표했다. 그의 호 포백(抱白) 역시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상태인 무(無) '흰 백을 품다'란 의미라 할 때, 그 무는 공(空)적인 무(無)이며, 이 역시 니힐리스트임을 천명한 것 같다며, 포백의 니힐리즘을 하이데거 등의 허무 반전과 연관 지어 다음을 추정했다. "포백은 니힐리즘에 따라 욕망과 암울한 시대적 현실적 부조리를 타개하고 자유로운 삶과 자유에로의 길을 모색하려 했다. 그 모색은 하이데거처럼 니힐리즘을 초극하기 위한 모색이며 야스퍼스와 키르케고르처럼 무에서 반전하는 세계를 초월한 초월자에 대한 신앙을 통해 회의주의나 염세주의에 빠지지 않고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생명존중의 길을 비춰준 숭고한 삶의 등대라고 감히 추측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