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여행기 ⑨]야속한 스카이 섬과 폭풍우 속 트레킹 답사

입력 2018.12.27 17:41

스카이 섬을 대표하는 트레킹 코스를 꼽자면 셋이 있다. 탁 트인 풀밭과 바다, 절벽, 등대 그리고 양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네이스트 포인트’는 스코틀랜드 최고의 일몰 포인트다. 동쪽 ‘퀴랑 코스’는 큼지막한 바위가 병풍처럼 서 있는 길을 따라 걷는 트레일로 유명하고, 6천만 년 전 화산활동이 만든 뾰족한 현무암 기둥이 우뚝 선 ‘스토르의 노인 코스’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절경’이라 불린다. 하지만 이것도 모두 날씨가 좋을 때의 말이다. 폭풍우 치는 스카이 섬을 걷는 것 불행일까, 혹은 행운일까.
스코틀랜드의 최고 일몰 포인트로 꼽히는 네이스트 포인트. 장밋빛 석양이 넘어가면서 풀밭과 바다와 절벽까지 물들인다. /셔터스톡

스코틀랜드 최고의 일몰, 네이스트 포인트

아침에 일어나니 비바람이 그친 듯 했다. 마음이 바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일정 상 영국 최고의 일몰을 볼 수 있다는 네이스트 포인트부터 가기로 했다. 섬의 서쪽 끝에 있어 이동 거리가 가장 길기 때문이다. 드문드문 자리 잡은 마을을 연결하는 길은 너무 좁아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한쪽으로 비켜서기를 수도 없이 반복해야 했다. 한 시간쯤 그렇게 갔을까? 저 멀리 탁 트인 풀밭과 바다와 절벽과 등대가 보였다. 이른 아침인데도 우리보다 먼저 온 차가 몇 대 있었다. 저들도 어제 허탕치고 우리처럼 아침 일찍 서둘렀을 것이다.

등대까지 완만한 내리막인 트레킹 코스는 평안하고 편안했다. 수분을 살짝 머금은 다소 쌀쌀한 산들바람이지만 축복처럼 느껴졌다. 양쪽 풀밭에선 한가로이 양떼가 풀을 뜯고 저 멀리 하얀 등대는 그림엽서를 보는 듯 했다. 스코틀랜드의 최북단 바다에 맞서 진을 치듯 펼쳐진 해안 절벽은 장엄했다. 이곳 바다와 등대에 해가 떨어져 천지가 붉게 물들면 그것이 바로 스코틀랜드 최고의 일몰이 되는 것이다. 어느새 부쩍 늘어난 관광객들은 탄성을 지르며 등대와 해안절벽과 바다를 사진기에 담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 반응은 확실히 뜨뜻미지근했다. 아! 우린 이곳을 오기 전 너무 좋은 곳을 너무 많이 보았던 것이다. 그림 같은 등대가 제 아무리 아름다워도 모허절벽의 숨 멎을 듯한 절경이나 자이언트 코즈웨이 주상절리의 장엄함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여행 일정을 짤 때 순서와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완만한 내리막의 편안한 길을 따라가면 길 끝에 등대가 나타난다. /헬스조선 DB

‘반지의 제왕’을 보는 듯 퀴랑 코스 트레킹

다시 구불구불 산을 올라 퀴랑 코스로 갔다. 비가 내리고 바람도 조금씩 불었지만 걷기에 지장이 없는 날씨. 우의로 몸을 꽁꽁 감싸고 바람 부는 퀴랑 코스에 발을 디뎠다. 퀴랑은 스카이 섬 트로터니시 반도 북단 동쪽 면에 있는 땅. 트로터니시 산등성이의 급경사면은 산사태로 형성되었는데, 산사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어서 지속적으로 보수를 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반지의 제왕’ 느낌이 나는 대지와 봉우리의 오묘한 조화는, 신이 산사태란 조각칼로 다듬고 다듬은 결과인 셈이다.

다소 좁고 가파른 곳도 가끔씩 있지만 트레킹 코스는 전반적으로 평이했다. 약 3시간에 걸쳐 퀴랑 산봉우리까지 올라갔다 원점 회귀하는 것이 애초의 계획. 그러나 바위 산 밑에까지 가 보니 정상으로 가는 길이 제법 가파르고 위험했다. 어느새 비바람까지 다소 강해져 있었다. 비바람이 없더라도 쉽지 않을텐데 이 날씨에 미끄러운 바위를 올라갈 순 없었다. 채 사장이 트레킹 앱을 한참 쳐다보니 차를 내린 곳으로 되돌아가지 말고 계속 직진해서 산을 한 바퀴 돌아 내려가자고 했다. 산 밑 호수까지 편안한 트레일이 이어져 있어 원점회귀 코스보다 이것이 더 좋겠다고 했다. 역시 탁월한 베테랑의 임기응변이었다. 온 몸이 흠뻑 젖고 바람을 이겨내느라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잊히지 않는 트레킹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았다.

퀴랑 코스에 도착하자마자 조금씩 비바람이 치기 시작했다. 코스 안내판을 지나 트레킹을 시작했지만 야속하게도 비바람이 강해져 다른 길로 가야만했다. 아래 사진은 맑은 날 퀴랑코스가 보여주는 절경. / (위)헬스조선 DB, (아래)셔터스톡

폭우가 낳은 뜻밖의 선물, 폭포

‘스토르의 노인 코스’ 시작점에 다다랐을 즈음엔 전날 오후와 비슷한 정도의 비바람으로 변해 있었다. 정말 나가기가 싫었지만 우린 놀러 온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의 코스 상태는 확인해야 했다. 스카이 섬을 대표하는 코스답게 완만한 오르막의 길은 넓고 편안했다. 이 코스의 최종 목적지 ‘스토르의 노인’은 약 6천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긴 뾰족한 현무암 기둥으로 그 옛날 뱃사람에겐 등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바위기둥 근처 절벽에서 보는 풍광이 대단해서 마이클 브라이트는 이곳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절경’ 중 한 곳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길은 넓고 편안했지만 자연은 우리에게 너무 모질고 혹독했다. 몸은 물에 젖은 천근 솜뭉치를 인듯 녹초가 됐고 비바람은 갈수록 심해졌다. 20~30분만 더 가면 스토르의 노인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파김치가 돼 돌아가는 우리에게 스카이 섬은 그러나 이런 폭우 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기가 막힌 절경을 선사했다. 아일랜드도 그렇지만 스코틀랜드의 산은 대부분 키 낮은 산철쭉과 잡풀, 고사리 등으로 뒤덮인 황무지며, 그 밑은 시커먼 토탄의 대지다. 이런 민둥산이 이토록 거세게 쏟아지는 비를 감당할 수는 없는 법. 벼락 치듯 쏟아지는 물줄기들이 땅으로 스며들지 못해 골이 진 산의 주름마다 작은 폭포가 되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끝도 없이 이어진 높지 않은 산에서 50~100미터 간격으로 작은 폭포가 떨어져 내리는 모습은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진기한 장관이었다. 트레킹을 방해한 것이 못내 미안한 스카이 섬의 자연이 우리에게 준 진귀한 선물임에 틀림없었다.


스토르의 노인 코스의 핵심은 6천만년 전 화산활동이 만들어낸 현무암 기둥이다. 이 근처 절벽에서 보는 풍광은 빼어난 절경으로 손꼽힌다. /셔터스톡
※ 헬스조선 비타투어의 아일랜드-스코틀랜드 트레킹 답사기는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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