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여행기 ⑧] 지진희, 배정남으로 뜬 스카이 섬은 우릴 반기지 않고

입력 2018.12.20 08:50

헬스조선 비타투어의 아일랜드-스코틀랜드 트레킹 답사 여행기 ⑧

그렇다. 스카이 섬은 스코틀랜드 자연미의 화룡정점이다. 섬의 독특한 지형과 복잡한 해안선은 언덕을 하나 넘을 때마다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 속에서 걷기를 사랑하는 이에게 이만한 천국도 없으리라. 하지만 날씨의 여신이 우리에게 등 돌린 순간 천국은 온데간데없고, 폭풍을 동반한 장대비가 쏟아진다. 그래도 우린 간다, ‘날개 달린 섬(게일어 An t-Eilean Sgitheanach)’ 스카이 섬으로!
산이 어우러진 퀴랑 코스
스코틀랜드 북부 끝에는 이너헤브리디스 제도 최대 섬 스카이 섬이 있다. 하이랜드에서도 유독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곳. 구름이 태어나는 섬이다. 사진은 화창한 날 퀴랑 코스./사진=셔터스톡

악천우를 뚫고 스카이 섬으로​

여행 비즈니스를 시작한 뒤부터인지, 그 전부터인지 모르겠지만 TV를 켜면 여행 전문 채널부터 돌린다. 소파에 누워 여행 채널 틀어놓고 깜빡 깜빡 단잠을 자는 것이 휴일의 일상이 됐다. KBS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거의 전편을 한두 번 이상 봤고, EBS의 ‘세계테마여행’도 대부분 다 본 것 같다. 요즘은 연예인이 등장하는 여행 프로그램이 봇물 쏟아지듯 하는데 그것들도 즐겨보고, 국내 여행이나 등산 프로그램도 눈에 띄면 채널을 고정한다.

지진희, 차태현, 배정남, 조세호가 출연한 ‘거기가 어딘데’도 그런 프로그램 중 하나다. 전편(前篇)인 오만 사막은 재미있었지만 가고 싶지 않았는데, 스코틀랜드 스카이 섬 편은 몸살이 날 정도로 가고 싶었다. 그 황량한 벌판과 변화무쌍한 기후는 ‘걷기 본능’을 일깨우기 충분했다. 워낙 유명한 관광지인데다 TV에 방영까지 됐으니 만약 상품으로 만들면 모객에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스카이 섬은 그러나 최악이었다. 원래 계획은 포트윌리엄에서 ‘해리포터 기차’를 타고 말레이그까지 가서 그곳에서 페리를 타고 스카이 섬에 입성하는 것.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아치형 철교를 증기 기관차가 연기를 뿜으며 건너는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는데 그 인기를 업고 ‘해리포터 기차’란 관광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포트윌리엄에선 관광용 해리포터 기차와 페리 탑승을 연계하는 티켓을 판매하는데 전날 예약을 하러 갔더니 “내일 페리 운항이 중지될 것 같아 예약을 받을 수 없으니, 내일 아침에 다시 문의해 달라”고 했다. 다음 날 다시 전화로 확인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기상 악화로 배가 못 뜬다고 했다. 앞이 깜깜했다. 영화 같은 해리포터 기차와 페리를 타고 마법처럼 스카이 섬에 들어가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대신 악천후를 뚫고 육지를 빙 돌아 스카이 섬으로 가야했다. 환상적인 여정이 길고 지루하고 답답하고 위험한 고행 길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비바람 치는 길을 달린다. 너무 지루하다. 페리를 타면 눈 깜짝할 새 도착하는 거리를 몇 시간째 달리고 있다. 스카이 섬으로 들어가는 스카이 브리지 바로 앞에는 007 영화에 등장해 ‘007성(城)’으로 불리는 ‘에일린 도난 고성(古城)’이 있다. 다리만 건너면 스카이 섬이라 해서 다 왔구나 했는데 그 후에도 지겹도록 달린다. 좁은 승용차에 구겨 앉아 있다 보니 팔 다리가 뻐근하고 멀미도 나려고 한다. 그렇게 녹초가 될 무렵 우리는 스카이 섬의 중심 포트리에 도착했다. 007성에서 잠깐 커피 마신 시간을 포함해 네 시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포트리에 내려 차 문을 여니 비바람이 무지막지하다. 몸이 날아갈 것 같다.

스카이 브릿지, 영국의 성
(위)몇 시간을 달려 드디어 스카이 브리지를 넘어 스카이 섬으로 넘어갔다. (아래)에일린 도난 성은 스카이 브리지 바로 곁에 있었다.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은 악천우 속에서도 고고함을 뽑냈다./사진=셔터스톡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그리고 쉼

서울의 약 3배 크기인 스카이 섬은 스코틀랜드 최고 관광지답게 걸을 곳도, 구경할 곳도 많다. 우린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10곳을 찍어뒀다. 그 중 트레킹 답사가 필요한 곳은 ‘스토르의 노인 코스’ ‘네이스트 포인트 코스’ ‘퀴랑 코스’ 등 세 곳이다. 명소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어느 정도 검증할 수 있지만 트레킹 코스는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낼 것인지, 길이 위험하지는 않은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갈림길이 있어 헷갈릴 염려는 없는지 등을 직접 걸으며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먼저 ‘스토르의 노인 코스’로 갔는데 바람이 얼마나 강한지 거짓말 조금 보태 차 문을 열기 힘들 정도였다. 등반과 트레킹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채 사장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는 차에서 내리기도 싫었다. 그냥 호텔에 들어가고 싶었다. 채 사장도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퀴랑으로 가 보자고 했다. 좁은 산길을 구불구불 올라가 만난 퀴랑은 악천우 속에서 더 신비로워 보였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나옴직한 봉우리들이 비현실적으로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바람 탓에 거의 지면과 평행하게 내리는 빗줄기가 얼굴을 아프도록 때렸다. 이런 상황에서 트레킹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 일찍 호텔로 들어가기로 했다. 스카이 섬은 왜 우리에게 이토록 심하게 구는 걸까?

나는 지금 뜨거운 물 샤워를 하고 넓은 창이 있는 호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이 호텔 참 좋고 분위기 있다. 창밖 발코니엔 애프터눈 티와 함께 스코틀랜드의 늦가을을 즐기기 좋은 탁자가 비바람으로 흠뻑 젖어 있다. 그 한 발짝 너머엔 푸른 잔디가 물을 잔뜩 머금어 더 파릇하게 생기를 뿜고 있으며, 저만치 떨어진 곳엔 스코틀랜드에 어울리지 않는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비바람에 마구 흔들리고 있다. 아! 돈 많이 벌어 넓은 마당에 잔디 깔고 1층에 통 창이 있는 리빙룸을 꾸미면 이런 멋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계획이 어긋나면서 내게 주어진 뜻밖의 고요와 평안에 취해 슬며시 잠이 들었다.

바위가 많은 지형인 스토르의 노인 코스, 바다가 많이 보이는 퀴랑 코스, 사람 두명이 작게 서 있는 산악
스카이 섬의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대표 트레킹 코스가 셋 있다. (사진 위부터 반시계방향으로) 스토르의 노인 코스와 퀴랑 코스, 네이스트 포인트 코스다./사진=셔터스톡

※ 헬스조선 비타투어의 아일랜드-스코틀랜드 트레킹 답사기는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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