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여행기 ①]​​ 기네스, 맥주보다 호수가 더 맛있다​​​

입력 2018.10.25 13:44

헬스조선 비타투어의 아일랜드-스코틀랜드 트레킹 답사 여행기 ①

황무지엔 빛바랜 헤더 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바람은 음울함을 싣고 들판으로 휘몰아친다. 너무 황량해서 아름다운 아일랜드로 가자. 헬스조선 비타투어가 내년 봄과 가을에 진행할 '스코틀랜드-아일랜드 트레킹' 상품의 답사를 위해 임호준 헬스조선 대표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거친 트레일을 걷고 왔다. 10박 12일 간의 답사 여행기를 몇편으로 나누어서 매주 목요일 연재한다. 첫 시작은 ‘아일랜드틱’한 위클로우국립공원의 글랜달록 호수 트레일이다.

풍경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위클로우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헤더 꽃이 진 들판. /헬스조선 DB

어느 아이리시펍 예찬론자의 아일랜드 여행

기네스 맥주를 처음 대했을 때의 그 강렬함이 아직도 기억 어딘가에 남아 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맛이…. 밋밋한 국산 맥주에 익숙해져 있던 미각에 처음 던져진 그 쌉쌀하고 깊고 풍부하고 부드러움의 복잡 미묘한 조화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아이리시 펍’을 최초로 표방한 ‘오킴스’도 한동안 자주 다녔고, 그곳의 ‘피시 앤 칩스’도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됐다. 최근 조선일보 ‘한대수의 사는 게 제기랄’이란 코너에는 ‘더블린의 펍은 그냥 술집이 아니라 음식점, 사교장, 축구 관람장, 문화센터’라는 아이리시펍 예찬론이 실려 아일랜드에 대한 동경을 조용히 펌프질했다.

헬스조선 비타투어와 함께 남미 여행을 진행하는 채경석 대표에게서 느닷없이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트레킹 상품 기획 답사 여행을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최근 지진희 등 연예인들이 스코틀랜드 스카이 섬 트레킹 여행을 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런 황무지 벌판을 걷는 여행상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짧지 않은 일정 때문에 망설여졌지만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답사 여행은 고생길인데, 트레킹 상품 답사는 정말 ‘쌩’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인터넷 등을 통해 사전에 계획한 트레킹 코스를 다 걸어보고, 고객이 걷기에 적당한지? 위험하지는 않은지? 갈림길은 어디에 있는지? 잘 못 걷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등에 대해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4시간 걷는 코스를 완성하기 위해선 두 배 이상 걸어봐야 하는데, 비용 문제가 있으니 뛰다시피 걸어야 한다. 원점 회귀 트레킹 코스는 거의 없으므로 누군가는 차를 목적지로 가져와야 해서 최소 2~3인이 필요하다. 여행사업부가 있는 회사 대표로서 ‘프로’에게서 답사 여행의 노하우를 배우려는 목적도 컸다. ‘답사 노하우 배우기’만 놓고 본다면 200% 목표를 달성한 소중한 기회였다.

이번 여행은 이동하는 것 빼고, ‘풀 데이(full day)’ 기준 11일이었는데, 유일하게 관광이 포함된 더블린 일정을 생략해야 했다. 두 번의 주말과 개천절, 한글날 휴일을 이용해 어렵게 출장 일정을 빼냈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연착까지 돼서 정확하게 밤 11시55분 더블린 공항에 도착, 공항 인근 호텔에 묵고 다음날 7시 호텔을 출발했다. 내심 차로 이동하며 차창으로나마 더블린 시내를 구경했으면 했는데, 야속한 채 대표는 공항 호텔서 바로 외곽 도로를 탔다. 조니 버나드 쇼, 사뮈엘 베케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셰이머스 히니 등 4명의 노벨 문학상 작가와 오스카 와일드, 조너선 스위프트 등을 배출한 더블린의 낮게 드리운 음울한 문학적 분위기와 원조 아이리시펍에서 원조 기네스 맥주를 마셔보는 호사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풍경
잠시 차를 멈추고 빛바랜 누런 헝겊 같은 들판으로 내려섰다.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보그랜드’를 밟았다. /헬스조선 DB

Day 1. 위클로 국립공원과 황무지의 첫 인상

9월의 마지막 날 아침 기온이 영상 9도다. 커튼을 저치니 세차게 펄럭이는 깃발과 잔뜩 찌푸려 낮게 깔린 구름이 마음을 춥게 한다. 아~! 드디어 거친 아일랜드에 왔구나! 아마도 선입견 때문에 생긴 그 낯선 우울함과 스산함이 싫지 않았다. 아니 생경해서 오히려 신선했다.

오늘은 더블린에서 가장 가까운 위클로우국립공원의 글랜달록 호수 트레킹을 답사하는 일정. 채 사장은 “고속도로로 가지 말고 ‘기네스 호수’를 들렀다 가자”고 했다. 기네스 호수? 일요일 아침, 차는 조용하고 깨끗한 주택가를 지난다. 이곳의 집들은 참 깨끗하고 적당하다. 미국 집처럼 크거나 세련되지 않고, 유럽 집처럼 고풍스럽거나 도회적이지 않다. ‘나도 저런 집에서 한번 살아봤으면...’하는 생각이 들, 딱 그 정도의 집이다. 조금 더 오르니 울창한 나무 터널이 보였고, 조금 더 가니 꼬불꼬불 산길이 나타났다. 잠시 딴 생각 하느라 차창 밖 풍경의 변화를 의식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끝도 없이 이어진 누런 들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차를 세웠다. 이 낯선 색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빛바랜 누런 헝겊을 이어붙인 듯한 끝없는 들판에 아주 조금씩 빛바랜 초록과 검정이 뒤섞여 있다. 가슴에 부딪혀 오는 바람으로 기분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도 받았지만 왠지 모를 음울함과 답답함도 그 속에 있었던 것 같다. 들판은 꽃과 잎을 다 떨군 헤더(산철쭉과) 등 키 낮은 잡목과 고사리, 잡초로 구성돼 있다. 헤더는 연보라 기미가 있는 청색 꽃을 피운다는데 채 사장은 “지천에 꽃이 피었을 때도 좋지만 이런 색감이 보기에 나쁘지 않고, 훨씬 아일랜드틱하다”고 했다.

풍경
위클랜드국립공원 비지터센터에서 문의를 마치고 이정표를 따라 트레일을 찾아 나섰다. 깔끔한 공원의 첫인상이었다. /헬스조선 DB

군데군데 검은색은 ‘토탄’이라고 한다. 습기 때문에 나무가 석탄이 되지 못한 채로 토양을 이루고 있는데 이런 토양을 ‘보그랜드’라 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이런 토탄 대지 때문에 아일랜드와 스코들랜드엔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키 낮은 잡목과 잡초만 자라는 황무지가 나타난다는 것. 흙을 파서 말려 토탄을 만드는 모습을 여행 중 수시로 목격했고, 대부분의 호텔에서도 토탄으로 벽난로를 때고 있었다. 차를 타고 조금 더 내려가니 ‘기네스 호수’가 나타났는데 별 무감흥이다. 토탄 대지 때문에 아일랜드의 시냇물은 모두 거무튀튀한 색인데, 이런 물이 모인 호수는 멀리서보면 기네스 맥주보다 더 시커멓게 보인다. ‘기네스 호수’는 마치 와인잔처럼 생긴 호수를 기네스 맥주 회사에서 사들인 뒤 호수 제일 윗부분에 인공으로 모래를 깔아 마치 맥주의 흰 거품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굳이 먼 길 둘러 와서 볼 필요는 없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국립공원으로 들어오니 차도 많고 사람도 많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도 꽤 흥행한 영화 ‘P.S I Love You’의 촬영지. 뇌종양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무뚝뚝한 아일랜드 남자 제리(제라드 버틀러 역)는 자신이 죽은 후 아내 홀리(힐러리 스웽크 역)가 절망하지 않도록 한 달에 한 가지씩 실천할 내용을 적은 봉투 10개를 아내에게 건넨다. 그 중 하나가 헤더가 가득한 동산을 찾아가는 것. 이렇게 가슴 절절한 사랑의 무대가 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비지터센터로 들어가 물으니 모두 9개의 트레킹 코스가 있는데 호수를 감싸고 있는 능선을 한 바퀴 돌아오는 흰색 코스가 가장 멋지다고 했다.

풍경
토양이 덜 굳은 대지라 트레일 중간 중간 늪지대가 많았다. 좁은 나무 데크는 따라 걸어야 발이 빠지지 않는다. /헬스조선 DB

풍경
기네스 맥주보다 더 시커멓게 보였던 ‘글랜달록 호수’. /헬스조선 DB​
트레킹은 어퍼호수(Upper lake)까지는 잘 포장된 평지인데 이후에는 호수를 품은 능선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가면 갑자기 기네스 맥주보다 더 시커먼 글렌달록 호수와 계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나는 갑자기 ‘훅’하고 가슴을 찔러오는 조망의 감동을 좋아한다. 다시 트레일은 호수가 시작되는 계곡 상류까지 능선을 따라 완만한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호수의 시작 지점을 돌아내려오면 걷기 좋은 호젓한 숲길이 비지터센터까지 연결된다. 총 길이는 약 12.5Km. 너무 힘들지도, 너무 쉽지도 않은 행복한 걷기다. 조망과 운치는 물론이고 가는 빗방울 실은 바람까지 아일랜드틱해, 가슴이 뿌듯해져온다. 이렇게 첫날부터 가슴 꽉 차는 일정이라면 ‘성공 예감 10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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