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 수술의 재발견. 더 이상 어렵지도 무섭지도 않은 이식(移植)

이식(移植)’ 하면 떠오르는 고정 이미지가 있다.

뇌사자를 기다리는 침상의 우울함, 환자 수 증가는 가파르게 상승하는데 기증자 수는 늘 제자리인 그래프의 절망감, 죽은 뒤 내 몸이 차가운 메스로 파헤쳐진다는 공포감,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이질감, 기증 서약을 하고 나면 꼭 큰 사고로 죽는다는 근거 없는 악성 징크스까지. 극단적이고, 어둡고, 두렵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이식은 삶의 마지막 시기에 잡는 지푸라기 같다. 내가 살려면 남이 죽어야 하는 처절한 과정이다.

혈액형 달라도, 배를 째지 않아도 가능한 이식
이제 이런 고정관념은 과감히 깨도 된다. 이식도 기증도 첨단 의학과 공학의 발전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꼭 누군가가 죽지 않아도 이식이 가능하다. 장기를 꺼내기 위해 배를 째지 않아도 된다.

혈액형이 같지 않아도 장기를 주고받을 수 있고, 장기를 떼내지 않고 세포만으로 이식이 가능하다. 돼지에게 사람의 유전자를 이식해 성장시킨 후 이를 다시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異種)이식이 발전하고 있다. 이식받은 후 면역억제제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이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기증자에 대한 사랑과 정중한 배려
여기에 사랑과 배려까지 더해진다. 기증자의 장기나 조직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 기증과 이식 전(全) 과정에 배어 있다. 조직을 기증한 시신이 들어오면 관계자들은 정중히 묵념부터 한다.

이들에게 조직을 기증한 시신은 ‘기증자분’이라고 불린다. 조직을 채취할 때는 인격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얼굴을 가린다. 조직 채취 후 사체 복원에 염까지 한 후 베 옷을 입혀 가족에게 정성껏 보낸다.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 안규리 센터장은 “기증 절차가 간편해지고 이식 수술법이 눈부시게 발전했다”며 “5~10년 안에는 이식과 기증에 대한 인식 자체가 좀더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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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모형

Chapter 1 이식 수술의 비약적 발전

이식이 가능하려면 혈액형이 맞고, 장기가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뇌사 상태에 빠진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식 가능한 범위가 넓어졌다. 혈액형이 달라도 되고, 동물에게서 받을 수도 있다. 장기뿐 아니라 사체조직, 세포도 이식 가능하다. 더욱 다양해지고 넓어진 이식 발전상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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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이 가능한 인체조직과 쓰임새 (일러스트=유사라)
<패러다임 1>
장기 아닌 죽은 사람의 인체조직도 이식

이식이라 하면 심장, 콩팥 같은 장기가 먼저 떠오르지만 그렇지 않다. 죽은 사람 몸에서 채취한 인체조직 이식도 가능하다. 인체조직이란, 사람 몸에서 장기에 속하지 않는 부위를 말한다. 뼈·혈관·피부·심장 판막·연골 등이 이식 가능한 대표적인 인체조직이다.

장기는 한 사람의 기증으로 최대 9명이 수혜받을 수 있지만, 인체조직은 최대 100명까지 수혜받을 수 있다. 인체조직은 혈액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혈액형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이식될 수 있다. 반면 장기는 혈액이 통해야 기능하므로 기증·이식 때 혈액형 일치 등 몇몇 조건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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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이 달라도 간,췌장,콩팥을 주고받을 수 있다.

<패러다임 2>
A형 장기를 B형에게 이식

10년 전까지만 해도 혈액형이 다른 사람끼리 장기를 주고 받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ABO혈액형이 달라도 콩팥, 간, 췌장을 이식할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2009년 이후 간, 콩팥 등 생체 분야 이식 중 혈액형 부적합 이식이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15%, 20%로 기록됐다. 생체 이식을 받은 환자 5명 중 1명이 부적합 이식수술을 받은 것이다.

혈액형이 다를 때 시행되는 이식 수술 대부분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이식 수술 전에 혈장교환술을 시행한다. 혈장교환술은 혈액 내 혈장에 있는 항체를 제거해서 다시 주입하는 것이다. 환자의 한쪽 팔에서 혈액을 뽑아 혈장분리기로 들어가게 만들고, 분리기에서 항체가 제거돼 나온 혈액을 나머지 팔에 다시 넣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식 수술 전·후로 면역억제제를 투여해서 이식받은 장기에 대항하는 항체가 새로 생기지 않도록 만든다. 혈장교환술이 필요한 횟수는 이식받은 사람 몸에 항체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효과는 혈액형이 같은 사람끼리 주고받는 것과 비슷하다.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혈액형 부적합 간·콩팥 수술 성공률은 통상 90% 이상, 1년 이상 생존할 확률은 통상 96%이상이다.

혈액형 다른 사람끼리 장기 이식을 하면?

혈액형이 다른 사람끼리 장기 이식을 할 수 없는 이유는 혈액형마다 다른 항체 때문이다. A형 혈액에는 B형 혈액(항원)에 딱 맞는 항체가 들어 있다. 그래서 B형 혈액이 들어왔을 때 열쇠와 자물쇠처럼 B형 혈액과 항체가 딱 맞아떨어진다. 항체와 항원이 결합하면 격렬한 염증 반응이 일어나면서 조직이 변성되고 파괴된다. 장기는 혈액이 통해야만 기능하므로, 수십 년간 이식 전문가들에게 혈액형은 큰 걸림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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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속 세포만 추출해서 이식 (일러스트=유사라)

<패러다임 3>
장기 속 세포만 추출해서 이식

장기 속 세포만 이식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췌장이다. 췌도세포가 파괴돼 인슐린을 주사해도 혈당조절이 안 되는 당뇨병 환자는 췌장이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쉽지 않다. 콩팥 등 다른 장기가 먼저 기증되고 나면 췌장이 버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췌도세포만 빼내 이식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우선 기증자의 췌장을 빼낸 뒤 췌도세포만 분리한다. 분리된 췌도세포를 하루 정도 배양한 후, 이식이 필요한 환자의 옆구리 부분에 넣어 준다. 췌장이식에 비해 시술이 간편하고, 시술 시간과 입원 기간이 짧다. 체외에서 장시간 보관이 가능하고, 면역거부 반응이 줄어 세포가 잘 살아남을 수 있다.

이식 후 1년 생존율이 80%, 5년 생존율이 13% 정도다. 이식받은 환자 중 30%가 인슐린을 끊고, 절반 정도가 급사할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또 췌도세포를 생체 적합성이 높은 단백질(폴리-L-라이신) 성분 또는 조형 재료(알지네이트)의 미세 캡슐에 싸서 이식하는 방법도 있다.

췌도세포가 혈액과 닿지 않아 면역거부반응이 줄어든다. 췌도세포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줄기세포 연구도 한창이다. 유아의 줄기세포 대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성인의 지방 조직에서 성체 줄기세포를 추출해 이용하는 것이다. 성체 줄기세포를 다시 어린 줄기세포로 되돌려 놓는 연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혈모세포와 조혈모세포이식이란?

조혈모세포는 골수(뼈의 빈 공간) 등에 있는 세포다. 적혈구·백혈구·혈소판 등 다양한 혈액 구성 성분을 만들어 낸다. 조혈모세포가 분화하거나 증식할 때 이상이 생기면 백혈병, 악성림프종, 다발성골수종 같은 혈액질환이 생긴다. 이런 혈액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몸속의 병든 조혈모세포를 없애고 타인의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게 조혈모세포이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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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이식용 돼지 생산 과정
<패러다임 4>
돼지 심장 이식받을 수 있는 이종이식

유전자 조작 돼지를 만들어 그 돼지의 장기·조직·세포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이식 연구가 활발하다. 일반 돼지의 것을 이식하면 돼지 혈액 속 ‘알파갈’이라는 항원이 5분 안에 격렬한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돼지 몸속에서 알파갈 항원을 제거하고, 혈액 응고 등의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의 유전자를 넣는 방식으로 유전자 조작을 한다. 이를 통해 면역거부반응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종이식 연구 중에서도 돼지의 췌도세포와 간세포, 심장, 각막을 이식하는 연구가 가장 활발하다. 이미 뉴질랜드에서는 췌도세포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임상을 하고 있다. 그 외에는 아직 원숭이에게만 연구가 진행 중이다.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미국 국립보건원이 유전자 조작된 돼지의 심장을 원숭이에 이식했더니 2년 이상 살았다.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당뇨병 원숭이에게 돼지의 췌도세포를 이식한 결과, 정상 혈당을 유지한 채 1년 이상 살고 있다.

돼지 간세포를 사람에게 직접 이식하기는 아직 어렵지만, 간접적으로 이용한 국내 사례도 있다. 최근 삼성서울병원은 돼지의 간세포로 사람의 혈액 속 독성물질을 걸러내는 ‘바이오 인공간’ 시술을 성공했다. 연구팀은 돼지의 간세포를 배양해서 생체 적합성 물질로 둘러싼 후, 이를 특정 장비에 넣었다.

이 장비가 독성물질을 걸러내는 간의 역할을 일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상태에서 환자의 혈액을 장비에 넣어 독성물질이 걸러지게 만든 뒤, 걸러진 혈액을 다시 환자 몸에 넣었다. 바이오 인공 간 시술을 하면, 빠르게 간 기능이 떨어지는 급성간부전 환자가 뇌사자로부터 간 기증을 받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게 된다.


[관련 기사]
Special Report: 이식 수술의 재발견: 더 이상 어렵지도 무섭지도 않은 이식(移植)
Chapter1. 이식 수술의 비약적 발전(現 기사 임)
Chapter2. 장기별 최신 이식 수술법
Chapter3. 移植(이식)문화ㆍ기술 발전 선도하는 기관
Chapter4. 장기기증 서약, 이렇게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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