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클리닉] 고대구로병원 수부센터

입력 2014.11.18 16:32

지름 1mm 미만의 끊어진 혈관을 잇는 재건수술은 미세하고 전문적인 수술 기법이 필요하다. 끊어지고 손상된 조직을 단순히 잇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혈액이 잘 흐를 수 있도록 원래 기능까지 회복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도체 공정 수술’이라고 불린다. 미세현미경을 보면서 1~2mm 크기의 혈관을 연결하는 미세재건수술 분야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수준이다.

세계 각국에서 우리나라 기술을 배우기 위해 연수를 온다. 하지만 이면에는 유쾌하지 않은 얘기들이 담겨 있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80년대, 하루 수십 건씩 발생하던 근로자들의 손가락 절단사고를 접합하면서 쌓인 실력이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고대구로병원 수부(手部)센터가 있다. 이 센터는 공장이 많던 구로 지역의 수많은 손가락 절단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 줄을 잇던 시절과 그 역사를 함께한다.

1980년대 고대구로병원이 개원함과 동시에 수부센터가 생겼다.
1980년대 고대구로병원이 개원함과 동시에 수부센터가 생겼다.(사진=조은선·임성필 St.HELLo)
공단 근로자들의 잘린 손가락을 원래대로 회복시키려는 의료진들의 열정은 미세재건수술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손가락 재건수술 성공률 97%’라는 임상 성과를 자랑하게 만들었다. 열 개 손가락이 모두 절단된 환자의 손가락을 접합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금은 고대구로병원 수부센터에 손가락 절단 환자들이 그리 많이 찾아오지 않는다. 인근 지역에 공장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고대구로병원의 뛰어난 미세재건수술 실력이 함께 의미를 잃은 것은 아니다. 신경재건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향해 경주하고 있는 고대구로병원 수부센터를 찾았다.

case 1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다가 기계에 손가락이 잘린 이모씨(56·서울 양천구)는 잘린 손가락이 운명이려니 하고 불편함을 참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씨는 오래전 잘린 손가락도 발가락을 이어 붙여 그 기능과 모양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고대구로병원 수부센터를 찾았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고 6개월째 외래를 다니고 있는 이씨는 “평생 없이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손가락이 다시 생긴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case 2 서울 구로구에 사는 38세 김모씨는 사고를 당해 오른쪽 다리에 큰 결손이 생겼다. 뼈와 힘줄이 보일 정도로 큰 사고였다. 바로 고대구로병원 수부센터에 와서 유리피판수술을 받았다. 왼쪽 허벅지살을 떼어다 오른쪽 사고 난 부위를 재건하는 수술이었다. 김씨는 “사고 당시에는 인생이 끝난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아물어 가는 피부를 보면서 당시 충격도 잊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검지와 중지가 잘린 환자가 손가락접합수술을 받고 손가락 기능을 회복했다. 사진은 손가락이 절단된 상태에서 찍은 엑스레이(사진1)과 수술후 사진(사진2)다.
검지와 중지가 잘린 환자가 손가락접합수술을 받고 손가락 기능을 회복했다. 사진은 손가락이 절단된 상태에서 찍은 엑스레이(사진1)과 수술후 사진(사진2)다. (사진=조은선·임성필 St.HELLo)

‘발가락으로 손가락 만들기’ 국내 최고 수준

고대구로병원 수(手)부센터는 이름과 달리 손만 보지 않는다. 손과 관련된 외상, 질환, 기형은 기본이고 팔과 다리, 발 등에 생긴 외상도 담당한다. ‘미세재건수술’이라는 한 영역을 뿌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세재건수술 중, 다른 부위에서 그만큼의 살과 조직을 떼어다가 메우는 수술을 ‘유리피판술’이라고 한다. 채취할 부위의 정맥과 동맥, 근육의 조직을 떼어 결손 부위에 신경과 혈관을 잇는 작업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의료진의 실력이 발휘된다. 지름1~2mm 정도의 혈관과 신경 등을 머리카락의 10분의 1 굵기 실로 꿰매는 미세한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한번 수술에 들어가면 24시간을 넘기는 일도 많다.

최근에는 유리피판술 중 발가락으로 절단된 손가락을 다시 만들어 주는 ‘발가락 이전술’도 성공하고 있다. 미세재건수술 중 가장 어려운 수술로 알려져 있는 분야다.

센터는 현재 2000례 정도의 수부재접합 수술을 시행했는데, 성공률이 95% 이상에 달한다. 이는 국내 최다 및 최고 성공률로 보고되고 있다. 최근에는 0.5mm 미만의 미세혈관을 잇는 ‘천공지피판술’도 성공하고 있다. 채취한 부위의 근육 등의 손상을 감수해야 하는 유리피판술과 달리 천공지피판술은 혈관을 채취할 때 원래 부위의 근육은 훼손시키지 않은 채 혈관만 따다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천공지피판술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고난도의 미세재건수술이지만 수술 후에도 채취 부위의 외형 손상이 없어 만족도가 높다.

발가락이 손가락으로 바뀌는 기적이 이곳에서는 자주 일어난다. 모앙만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능도 정상인과 똑같아진다.
발가락이 손가락으로 바뀌는 기적이 이곳에서는 자주 일어난다. 모앙만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능도 정상인과 똑같아진다.(사진=조은선·임성필 St.HELLo)

24시간 환자 지키는 수부센터 수술팀의 저력

센터에는 정성호 교수(성형외과)를 비롯해 총 4명의 수부외과 세부 전문의와 8명의 전공의가 근무하고 있다. 교수 1명과 전공의 3명이 한 수술팀이고, 총 4개팀이 돌아가면서 24시간 당직 근무를 한다. 20년 넘게 이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에는 응급상황 발생 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서였다면, 지금은 시간이 오래 걸릴 때 합리적으로 팀을 교대하기 위해서다. 접합 부위가 커지면서 최근에는 미세재건수술의 시간이 더 길어졌다. 24시간은 물론 36시간씩 수술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는 한 팀이 12시간 수술하고, 다음 팀으로 교체한다.

정 교수는 “미세재건수술은 고도의 집중력과 미세한 손놀림이 요구되는 수술이기 때문에 장시간 수술이 어렵다”며 “수술의 완성도를 높이고, 의료진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팀제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고대구로병원 수부센터는 본관 2층에 있다.
고대구로병원 수부센터는 본관 2층에 있다.(사진=조은선·임성필 St.HELLo)

최근에는 수술 후 보통 1~2주 이내 퇴원하지만, 수부센터에서는 3주 정도 입원을 시킨다. 병상회전율을 빠르게 하는 다른 병원과는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정 교수는 “신경과 혈관 등을 잇는 수술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어긋날 경우 제 기능을 못 할 수 있어 추후 관찰을 꼼꼼하게 한다”고 말했다. 퇴원 후에도 정기 진찰을 받아야 한다. 보통 1년은 지나야수술이 제대로 됐다고 안심할 수 있다.

손가락 접합수술 후 1년 정도는 외래에 와서 진찰을 받아야 한다.
손가락 접합수술 후 1년 정도는 외래에 와서 진찰을 받아야 한다.(사진=조은선·임성필 St.HELLo)
신경재건에 도전해 팔 이식까지 성공시킬 터

미세재건수술 실력을 바탕으로 센터는 신경재건 분야에도 도전장을 냈다. 신경재건은 혈관재건과 달리 팔에 마비가 와서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에게 시행한다. 교통사고나 뇌졸중 등으로 사지가 마비된 환자의 신경을이어 기능을 회복시키는 수술인데, 국내에서는 아직 미개척 분야다.

물론 신경 재건에 성공한다고 해서 사지가 완전히 마비된 환자의 팔과 다리가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연구 성과에 따르면, 굽혀지지 않던 팔을 굽힐 수 있을 정도까지는 회복시킬 수 있다.

정성호 교수가 유리피판술로 하지재건수술을 받은 환자의 다리가 제대로 잘 아물고 있는지 살피고 있다.
정성호 교수가 유리피판술로 하지재건수술을 받은 환자의 다리가 제대로 잘 아물고 있는지 살피고 있다.(사진=조은선·임성필 St.HELLo)
미세혈관과 신경을 재건하는 수술노하우를 발판 삼아 팔을 이식하는 분야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우선, 상지(上肢) 신경 마비 재건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정 교수는 “장기이식법상 팔은 아직 이식이 가능한 장기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뇌사자의 팔이 큰 의미가 없지만, 언젠가는 가능해질 그날을 위해 실력을 쌓고 있다”며 “신경과 힘줄, 근육 등을 성공적으로 이전시켜 원래 팔의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수부센터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근심과 걱정에 휩싸여 있다. 의사와 상담을 하고 수술을 한 후 돌아가는 발걸음에는 희망이 보인다."


[MORE TIP]

유리피판술이란

유리피판술은 단순한 피부 이식과 달리 피부조직과 함께 혈관, 신경 등을 같이 떼어내 필요한 부분에 이식하는 수술이다. 수부센터에서는 손가락 피부가 훼손됐거나 잘렸을때, 힘줄이 노출되는 등 결손부위가 생겼을 때 팔이나 다리 등 다른 부위에서 조직을 떼어내 혈관, 신경을 연결하는 수술이다. 손가락뿐 아니라 유방, 다리 등 몸에 결손이 생겼을 때도 사용한다. 수술 방법에 따라 근피판술, 근육피부피판술, 천공지피판술로 나뉜다.

유리피판술이란
유리피판술이란(일러스트=유사라)

근피판술

결손 부위에 덮을 조직을 채취할 때, 근육만 채취하는 방법이다. 골수염이 있는 뼈를 덮어 주거나 발뒤꿈치 재건에 많이 사용되며 피부이식이 추가로 필요하다.

근육피부피판술 결손 부위에 덮을 조직을 채취할 때, 근육과 피부를 함께 채취하는 방법이다. 큰 부피가 필요한 부위에 많이 사용되며, 유방재건이나 회음부 재건 등에 주로 사용된다.

천공지피판술 조직을 채취할 때 근육 안에 지나가는 혈관을 일일이 찾아내고 분리해서 근육은 남기고 피부만 채취하는 수술법이다. 근육 안에 있는 혈관과 신경을 떼어 내는 미세수술에 숙련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최신 수술법이다.


월간헬스조선 11월호(54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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