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에 김 붙었다”는 말 듣고 항문외과를?

입력 2008.03.28 10:53

37세의 회사원 K씨. 쭈뼛거리며 진료실에 들어선 그는 “제가 입술에 난 점을 여러 번 뺐거든요. 그런데 그 때마다 재발되더라고요. 이번에는 성형외과에서 대장항문 병원으로 한 번 가보래서 오긴 왔는데 여기 오는 게 맞는지 아직도 헷갈리네요”라며 말을 꺼냈다.

그는 이어서 “입술에 파란 점이 있어서 어릴 적부터 ‘김 붙었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며“신경이 쓰여서 대학을 졸업한 후부터 점 제거수술을 받았지만 그 때마다 재발해서 고민”이라고 증상을 설명했다. 또, “아이들 입술에도 똑같은 점이 나타나는 걸 보면 피는 못 속이는 것 같다”며 살짝 웃었다.

점 외에 다른 이상증상은 없었는지 물으니까 잦은 복통과 장막힘 증상으로 응급실 신세를 진 적은 있지만, 병원에서 1~2일 치료하면 좋아졌고 정밀검사 결과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환자의 증상에서 장 기능 이상이 의심되어 위와 대장내시경, 캡슐내시경 검사를 실시해 보았더니 대장을 제외한 위, 십이지장, 소장에서 크고 작은 용종이 36개나 발견되었다.

K씨의 증상은 ‘포이츠 예거 증후군’. 피부와 점막에 색소가 침착되면서 위장관에 수많은 용종이 생기는 희귀병이었다. 이 병은 장폐색, 장출혈, 빈혈, 복통 등의 증상이 주로 나타나며, 아주 드물게 암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포이츠 예거 증후군은 우성 유전으로 부모 중 한 명이 환자면 자녀도 환자일 가능성이 많다. 때문에 부모가 이 병을 앓는 경우엔 반드시 자녀들의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소화기 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또 재발이 잘 되는 편이어서 평생 여러 번의 수술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경제적인 사정이나 귀찮음을 이유로 방치하면 뱃속에서 자란 용종이 장을 모두 틀어막아서 목숨까지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이츠 예거 증후군 환자는 입술, 손가락, 발가락에 색소 침착으로 인한 주근깨 같은 반점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K씨처럼 입술에 파란 점이 보이면서 배가 자주 아프면 병원을 찾아 소화기 내시경 검사를 받고 용종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포이츠 예거 증후군으로 확인되면, 출혈이나 장폐색이 있는 경우에 한해 용종 제거수술을 한다. 과거에는 개복하여 장을 절개한 다음 내시경을 이용해 장 속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용종을 찾아가며 수술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캡슐내시경을 이용해 용종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낸 다음, 복강경과 내시경을 동시에 시행하는 시술법이 사용되고 있다. 복강경과 내시경을 동시에 시행하면 최소한의 부위만 절개해서 흉터가 작고, 원하는 용종만 정확히 제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K씨의 경우는 후자의 방법으로 소장을 절제하지 않고도 36개 용종 모두를 제거할 수 있었다.


/이동근 한솔병원 대장항문외과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