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 니코틴’이라더니… 청소년 노리는 ‘가짜’ 안전과 마약의 덫

[전자담배에 빠진 아이들] 中
무니코틴 액상 제품서 니코틴·유사 니코틴 검출
대마·에토미데이트 등 마약류 흡입 경로로 악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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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니코틴을 표방하는 전자담배 일부에서 니코틴과 유사 니코틴이 검출된 바 있다. 여기에, 전자담배 기기가 마약류 흡입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까지 잇달아 발생하며 청소년의 불법 약물 접근성을 높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챗GPT 생성 이미지
‘무니코틴’을 내세운 액상형 전자담배가 청소년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 일부 제품은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롭다’거나 ‘금연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홍보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서는 무니코틴을 표방한 제품에서 니코틴과 신종 유사 니코틴이 잇따라 검출됐다. 전문가들은 이름만 보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거나 중독 위험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無 니코틴’이라더니… 니코틴·유사 니코틴 무더기 검출
지난달 25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온라인상에서 판매되는 ‘무니코틴 액상형 흡입 제품’ 105종을 검사했다. 그 결과, 13개 제품에서 니코틴이 검출됐고 12개 제품에서는 신종 유사 니코틴인 ‘6-메틸니코틴’이 나왔다. 니코틴은 담뱃잎에서 추출하거나 합성한 전통적인 중독성 물질인 반면, 유사 니코틴은 니코틴의 화학구조를 일부 변형해 만든 인공 화합물이다. 분자 구조는 조금 다르지만 뇌의 니코틴성 아세틸콜린 수용체에 작용해 니코틴과 유사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유사 니코틴의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천대 길병원 가정의학과 최수정 교수는 “6-메틸니코틴이 법적으로 니코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규제 대상이 아닌 것처럼 판매되고 있지만 임상 데이터가 부족해 예측하지 못한 급성 독성이 나타날 위험은 더 크다”고 말했다.

◇니코틴 아니라서 괜찮다는 착각… 뇌·폐 모두 위험
니코틴은 혈압과 심박수를 높이고 혈관을 수축하는 대표적인 중독성 물질이다. 특히 청소년은 뇌가 발달하는 시기인 만큼 니코틴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 청소년의 뇌는 약 20대 중반까지 발달이 이어진다. 감정 조절과 충동 억제를 담당하는 전두엽이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상태여서 니코틴에 더 취약하다. 니코틴은 집중력과 기억력, 계획·의사결정 등 전두엽 기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도파민 분비를 인위적으로 자극해 일시적인 각성 효과를 준다. 그러나 체내 니코틴 농도가 떨어지면 불안과 짜증 등 금단 증상이 나타나 반복적인 사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유사 니코틴도 니코틴과 비슷한 수용체에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장기적인 인체 대상 연구는 부족하지만 전문가들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성분을 반복적으로 흡입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전자담배에는 니코틴 외에도 향료, 프로필렌글리콜(PG), 식물성 글리세린(VG) 등 여러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 이들 성분은 식품으로 섭취했을 때는 안전성이 인정된 경우가 많지만, 가열해서 폐로 흡입했을 때의 장기적인 안전성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최수정 교수는 “일부 향료 성분은 폐를 자극하고 염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성장기 청소년이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폐 발달을 저해해 향후 만성 호흡기 질환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자담배에 마약류 넣기도… “오남용 심각”
전문가들은 유사니코틴의 잠재적인 독성과 함께 중독 위험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니코틴이라는 문구를 믿고 사용했다가 실제로는 니코틴이나 유사 니코틴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수 있다. 청소년은 성인보다 니코틴 의존이 더 빠르게 형성된다. 청소년기 전자담배 사용은 이후 일반 담배, 나아가 다른 건강 위험 행동으로도 이어진다. 이를 ‘게이트웨이 효과(Gateway Effect)’라고 한다. 질병관리청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담배를 사용하는 청소년 가운데 두 종류 이상의 담배 제품을 함께 사용하는 다중 제품 사용률은 61.4%에 달했다.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노성원 교수는 “전자담배는 냄새가 적고 사용을 숨기기 쉬우며 다양한 맛과 디자인으로 청소년의 심리적 장벽을 낮춘다”며 “이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새 니코틴에 중독된 이후, 담배 사용뿐 아니라 마약 사용 등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자담배 액상에 마약류를 섞어 사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025년 7월에는 에토미데이트와 코카인을 액상형 전자담배에 섞어 국내로 밀반입하려던 국제 마약 조직이 적발되기도 했으며,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한 불법 유통도 문제로 지적된다. 미국에서는 THC가 포함된 불법 전자담배 액상을 사용한 뒤 급성 폐손상이 온 사례가 집단 발생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를 ‘전자담배 또는 베이핑 연관 폐손상’으로 명명했다.

기존에는 대마 등 불법 약물을 사용하려면 전용 기구를 준비하거나 특유의 냄새와 연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이 컸다. 그러나 전자담배 기기를 이용하면 불법 약물을 보다 손쉽게 흡입할 수 있어 접근성이 크게 높아진다.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하민경 연구원은 “전자담배 기기를 이용하면 청소년이 이를 일반 전자담배와 비슷한 수준의 위험으로 오인할 수 있다”며 “이러한 인식 변화는 불법 약물에 대한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접근성과 사용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고 경고했다.

◇규제는 여전히 사각지대
전문가들은 무니코틴·유사 니코틴 제품이 빠르게 확산하는 반면 제도는 이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행 제도에서는 일부 유사 니코틴 제품이 담배 규제를 피해 판매되거나 관리 사각지대에 놓이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성분이 무니코틴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만큼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노성원 교수는 “청소년 중독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처음부터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새로운 제품과 판매 방식이 계속 등장하는 만큼 규제의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