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전자제품 쌓아두다 노숙까지 한 70세 남성… '이 병' 때문이었다

[해외토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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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윈터(왼쪽)와 물건으로 가득 찬 그의 집(오른쪽)/사진=BBC
책과 음반, 전자제품을 버리지 못하고 집 안에 쌓아두다 결국 노숙 생활까지 하게 된 한 남성의 사연이 전해졌다.

최근 영국 BBC에 따르면, 영국 옥스퍼드셔에 사는 레슬리 미드윈터(70)는 자신에게 쓸모가 있다고 생각한 책과 음반, 전자제품 등을 오랫동안 모아왔다. 물건을 모으는 행동은 1991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실직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는 "쓰레기나 상한 음식을 모은 것이 아니라 사용할 수 있고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점점 통제하기 어려워졌고, 매일 대형 쓰레기통이나 폐기물 수거함에서 물건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물건은 점차 집 안 모든 방을 채웠고, 일부 공간은 사람이 움직이기조차 어려워졌다. 그가 살던 주택은 임대주택이었는데, 집 안에 지나치게 많은 물건을 쌓아둔 상태가 임대 조건과 안전 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되면서 결국 집을 잃었다. 이후 옥스퍼드와 보틀리 일대에서 장기간 노숙 생활을 했다.

이후 미드윈터의 사연이 지역신문 1면에 소개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개입했고, 저장장애 환자를 지원하는 정신건강 자선단체 '리스폰스(Response)'에 연결됐다. 다시 주거 생활을 시작한 그는 리스폰스의 도움을 받아 생활공간에 쌓인 물건을 정리했다. 침대만 남기고 대부분의 가구를 치웠으며, 방을 드나드는 데 방해가 되던 책장도 없앴다. 미드윈터는 "이제 물건을 가져오기 전에 정말 필요한지 생각하려고 한다"며 "물건은 내가 갖고 싶은 것과 실제로 필요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장장애, 물건 버리면 '무언가 잃는다'고 느껴
리스폰스의 프로젝트 담당자 마이클 아모아벵은 16년 넘게 미드윈터를 지원해 왔다. 그는 "저장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실제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라디오가 두 대라면 한 대를 정리할 수 있지만, 이들은 물건을 포기하면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저장장애는 물건의 실제 가치와 관계없이 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데 지속적인 어려움을 느끼는 정신건강 질환이다. 물건을 버리려고 하면 심한 불안이나 상실감을 느껴 계속 보관하게 되고, 쌓인 물건 때문에 생활공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2018년 공개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에 저장장애를 별도의 정신건강 질환으로 포함했다. 저장장애는 강박장애와 관련된 질환군으로 분류되지만, 강박장애의 단순한 한 증상과는 구분된다. 치료 방법과 증상의 특징도 서로 다를 수 있다.

휴대전화를 산 뒤 다시 사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포장 상자도 버리지 못할 수 있다. 물건이 하나둘 늘어 생활공간을 차지해도 당사자는 상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주변 사람이 물건을 치우려 하면 강한 불안과 분노를 보이기도 한다. 저장장애는 단순히 정리를 잘하지 못하거나 물건이 많은 상태와 다르다. 물건이 통로와 출입구를 막으면 넘어질 위험이 커지고, 화재가 발생했을 때 대피나 구조가 어려워질 수 있다. 먼지와 곰팡이, 해충 등으로 위생 문제가 생기고 주거 기준을 위반해 퇴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강제로 버리기보다 판단·정리 능력 길러야
리스폰스는 미드윈터의 물건을 한꺼번에 강제로 버리는 대신, 신뢰 관계를 쌓으며 행동을 조금씩 바꾸는 방법을 택했다. 미드윈터와 담당자는 매주 만나 물건을 모으는 이유와 그로 인한 위험을 이야기했다. 중복된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는 등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다음 만남에서 실천 여부도 확인했다.

다른 돌봄 기관은 2주마다 집을 청소하고, 물건이 다시 지나치게 늘어나면 추가 정리를 돕고 있다. 미드윈터는 지원을 받은 뒤 집으로 가져오는 물건의 양을 크게 줄였다. 물건을 쌓는 행동이 화재나 건강 문제를 일으키고, 다시 주거를 잃게 할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하게 됐다. 아모아벵은 "변화는 서서히 나타나며 신뢰와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당사자가 치료와 지원에 계속 참여하는 것이 상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장장애 치료에는 주로 인지행동치료가 활용된다. 치료 과정에서는 물건을 보관해야 한다는 생각과 버릴 때 생기는 불안을 살펴보고, 물건을 분류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기른다. 불필요한 물건을 단계적으로 정리하고, 새로운 물건을 가져오려는 충동을 조절하는 연습도 한다. 다만 치료에는 시간이 걸리며, 물건만 한꺼번에 치우면 다시 쌓일 가능성이 있어 당사자의 동의와 지속적인 지원이 중요하다. 미드윈터는 "내가 왜 물건에 집착하는지, 물건을 버릴 때 느끼는 불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게 됐다"며 "감정적으로 연결된 물건을 포기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지원 덕분에 집을 지키며 이전보다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