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아닌 ‘마약 흡입기’로의 진화… 낡은 교육이 키웠다”

[전자담배에 빠진 아이들] 下
실제 청소년 흡연율은 통계(3~4%)보다 훨씬 높아
손 꽉 쥔 아이들 유심히 봐야… 실정 맞는 교육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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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현장에서 학생·교사들을 만나며 국내 담배규제정책 강화, 흡연예방·금연지원사업 전략 개발을 위해 힘쓰고 있다./사진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 제공
전자담배가 학교와 가정을 파고들며 청소년들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시계나 펜 모양으로 위장한 제품까지 나오면서, 아이들의 전자담배 사용을 적발하기도 어렵다. 현행법의 사각지대를 노린 신종 유사 니코틴과 마약 오남용 우려까지 겹치며 방어선이 무너지고 있다. 일선에서 아이들, 선생님들과 만나며 담배 규제 및 교육에 힘쓰고 있는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 이성규 센터장을 만나 이야기 나눠봤다.

-청소년 타깃 전자담배, 실제로 심각한가?
“질병관리청 통계를 보면 청소년 흡연율은 늘 3~4% 안팎으로 나온다. 그러나 실제 교육현장에 가보면 고등학생의 절반 가까이가 담배를 피운다고 고백한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설문조사에 아이들이 솔직하게 답할 수 없는 환경이다.

최근 나오는 장난감처럼 생긴 변형 전자담배들은 애초에 10대를 타깃으로 디자인된 제품이다. 4050 세대는 시계나 게임기 모양의 담배를 찾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사용 행태다. 연초 담배는 한 개비를 피우면 끝이 나지만, 전자담배는 액상이 닳을 때까지 시도 때도 없이 물고 있어 자신이 하루에 얼마나 피우는지 인식조차 못 한다. 이 아이들이 20~30년 뒤 어떤 건강 문제를 겪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가장 두렵다.”

-무인 자판기에서 신분증을 제대로 거르지 못하는 등 유통망 관리도 부실하던데?
“지난 4월 담배사업법이 개정되면서 합성니코틴도 담배로 인정돼 관리를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가 된 자판기들은 대부분 법 개정 전에 들어선 규제 사각지대의 잔재다. 그래서 성인인증 시스템도 부실한 것이다. 원래 담배는 ‘1+1 프로모션’ 같은 판촉 행위를 할 수 없다. 지금 청소년의 손에 들어가는 변형 전자담배들은 규제망이 헐거웠던 법 개정 전에 수입해 둔 재고 물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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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차례대로 시계형, 게임기형, 무선 이어폰 모양의 액상형 전자담배. 기존 연초 담배와 달리 외형이 다양하고 정교해 부모와 교사가 육안으로 구별하기 어렵다. /사진=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 제공
-유사 니코틴 제품이 온라인에서 무분별하게 판매되고 있다. 법적 대안이 있을지?
“합성니코틴 규제 움직임이 보이자 업계는 재고를 쌓아두거나 ‘유사 니코틴’이라는 꼼수를 찾아냈다. 분자 구조를 미세하게 바꾼 유사 니코틴은 현행법상 담배가 아니라 규제할 길이 없다. 6-메틸니코틴이 끝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 또 다른 신종 물질이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최근 담배사업법을 개정하면서 국회에서도 유사 니코틴 위해성 평가 등의 대안을 모색하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안다.”

-전자담배 기기가 마약류 흡입 경로로 악용되는 사례도 는다던데?
“강력한 규제가 시급하다. 예전 담배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어떤 물질이든 호흡기로 흡입할 수 있게 만드는 기기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이를 ‘전자식 니코틴 전달 시스템’라 부른다. 기기 구조상 니코틴 대신 펜타닐, 합성 대마, 에토미데이트 등 마약 성분을 넣으면 그대로 마약 흡입기가 된다. 실제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청소년 마약 사범이 급증하는 추세다. 적발되지 않은 암수범죄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액상을 담는 기기에 대한 허가제나 강력한 유통 규제가 동반돼야 한다.”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가 있나?
“한국은 전세계에서 신제품 담배가 가장 먼저 출시되고 유행하는 ‘흡연 테스트베드(testbed)’ 국가다. 해외 사례를 적용하려 하면 한 발 늦는다. 우리가 먼저 제도를 만들어 세계 표준을 이끌어야 한다. 물론 싱가포르처럼 소지 자체를 금지하거나, 호주처럼 의사 처방이 있어야 살 수 있게 하는 강한 규제도 있다. 다만 액상형 전자담배를 아예 금지하면 흡연자들이 연초로 회귀하는 부작용이 생긴다. 특정 제품군만 막기보다는 담배 가격을 인상하는 등 전반적인 담배 규제를 동시에 강화하는 방향이 실효성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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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전자담배 매장에서 판매 중인 하트모양 일회용 전자담배 제품. 전면에 거울과 LED 디스플레이가 달려 있어 최근 SNS상에서 청소년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서울시 강남구 전자담배샵 현장사진
-아이들을 위해 어른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맞다. 아이들 담배 사용을 막기 위해서는 어른의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어른들이 담배를 너무 모른다. 특히나 비흡연자 성인은 ‘담배’라고 하면 역한 냄새를 풍기는 연초만 떠올린다. 딸기·포도 향이 나고 USB처럼 생긴 요즘 담배는 관심이 없으면 알아채지 못한다. 담배가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데, 학교에서는 여전히 ‘담배 피우면 폐암 걸린다’는 식의 낡은 교육만 반복한다. 아이들이 ‘연초 안 피우고 전자담배 피우니까 괜찮다’고 비웃는 이유다. 실정에 맞는 교육 개편이 시급하다.”

-당장 학교와 가정에서 실천할 가이드라인은?
“우선 아이들의 물건과 냄새에 예민해져라. 아이 방이나 옷에서 포도 향, 딸기 향 같은 달콤한 향이 난다면 의심해 봐야 한다. 또 요즘 전자담배는 크기가 아주 작아 손바닥 안에 완전히 가려진다. 손을 꽉 쥐고 다니는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아이가 피우는 걸 적발했을 때는 원리를 쉽고 자세하게 설명해 줘야 한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향료는 물에 녹지 않는 지용성 기름이다. 이를 기화해 흡입하면 폐포에 기름이 끼고 쌓여 심각한 호흡 곤란을 유발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 때문에 수많은 청소년 사망자·중환자가 발생했던 사례가 있다. ‘이발리(EVALI) 사태’를 아이에게 짚어주며 유해성을 경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학부모, 교육 당국, 입법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담배는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알던 과거의 담배가 아니다. 마약 노출 통로로까지 전락한 끔찍한 상황에 대해 엄중한 무게감을 가져야 한다.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아이들의 건강이 무너지고 있다. 학부모, 교사, 입법가 모두가 진화하는 담배에 맞서 더 깊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