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이가 들면 종종걸음을 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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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가 시작될 때 가장 먼저 변하는 보행 요소는 걷는 속도가 아니라 보폭​이다. /클립아트코리아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건널목에서 신호가 바뀔까 서둘러 종종걸음을 걷는 노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부분 “나이가 들어 다리 힘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노인의학은 종종걸음이 단순히 다리 근육의 문제가 아니라 뇌와 신경계가 보내는 경고 신호일 수 있다고 말한다.

노화는 속도가 아니라 보폭에서 시작된다
국제 노인의학 학술지 ‘Journal of Gerontology:Medical Sciences’ 등에 발표된 연구 등을 살펴보면 노화가 시작될 때 가장 먼저 변하는 보행 요소는 걷는 속도가 아니라 보폭(stride length)이다. 처음엔 걷는 속도가 거의 그대로지만, 한 걸음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발을 자주 옮기는 종종걸음이 나타나고, 이후 걸음 속도도 점차 느려진다.

보폭이 줄어드는 것은 단순히 다리 근력이 약해져서가 아니다. 몸을 앞으로 밀어주는 엉덩이 근육과 균형 감각, 몸의 중심을 조절하는 뇌 기능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몸이 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뇌가 선택하는 적응 반응이다.

보폭이 줄면 낙상 위험도 커진다
최근 노인의학과 재활의학 분야에서는 ‘감속 능력(Deceleration)’을 낙상 위험을 예측하는 새로운 지표로 주목한다. 많은 사람이 앞으로 걷는 능력에 주목하지만, 실제로는 멈추기·방향 바꾸기·계단 내려오기 같은 제동 동작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동작에는 몸의 중심을 순간적으로 잡고, 속도를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능력이 떨어지면 낙상 위험도 커진다. 실제로 고령자의 낙상은 멈추거나 몸을 돌리거나 장애물을 피하는 순간 많이 일어난다.

이런 변화를 몸이 스스로 감지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보폭을 줄이고 종종걸음을 선택한다.

다리가 아니라 뇌가 걸음을 만들어낸다
미국 비영리 학술의료 센터인 메이요클리닉(Mayo Clinic)은 보행을 단순한 다리 근력의 문제가 아니라 ‘뇌와 신경계, 균형감각, 근육이 함께 만드는 복합 기능’으로 설명한다.

대부분 걷기는 다리 운동이라고 생각해 열심히 다리 근육을 키운다. 하지만 실제로 걸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뇌다. 전두엽이 “걸어라”는 명령을 내리면, 뇌 깊숙한 곳의 신경회로인 기저핵이 걸음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며, 소뇌가 균형을 잡는다. 또 눈은 장애물을 확인하고, 귀 속 전정기관은 몸의 기울기를 감지한다. 발바닥 감각신경은 지면 상태를 실시간으로 뇌에 전달한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걸음걸이가 달라진다.

그래서 신경과 전문의들은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걸음 속도와 보폭, 몸의 흔들림, 방향 전환 때 안정성 등을 유심히 살핀다. 뇌와 신경계에 이상이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매나 파킨슨병에서도 기억력 저하보다 걸음의 변화가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잘 걷는 80대, 뇌도 젊었다
미국신경학회 공식 학술지인 ‘뉴롤로지(Neurology)’에 2026년 7월 발표된 연구에서도 걸음과 뇌 건강의 밀접한 관계가 확인됐다. 80세가 넘었음에도 젊은이들처럼 활기차게 걷는 노인들의 인지기능 저하 위험이 또래보다 약 50% 낮았다. 더 주목할 것은 이들 중 일부는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뇌 변화가 있었음에도 기억력과 판단력을 정상적으로 유지했다.

이 연구가 ‘빨리 걸으면 치매를 예방한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걸음걸이가 뇌 건강을 보여주는 중요한 생체지표(Biomarker)’라는 점은 분명하다.

종종걸음을 늦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느긋하게 오래 산책하듯 걷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짧게 걷더라도 숨이 약간 찰 정도의 속도로, 평소보다 보폭을 조금 넓게 걷는 습관이 도움이 된다. WHO(세계보건기구)도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빠르게 걷는 유산소 운동과 함께 주 2회 이상의 근력 운동, 균형운동을 병행할 것을 권고한다. 여기에 스쿼트와 의자에서 앉았다 일어서기, 계단 오르기처럼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함께 하면 보행 능력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 하루 1분 정도 한 발로 서는 균형운동이나 걷다가 제자리에서 멈추기, 방향 바꾸기 같은 운동을 반복하면 감속 능력과 균형 감각을 함께 키워 낙상 예방에 도움이 된다.

▶체크 리스트 : 내 걸음, 괜찮을까
다음 항목 중 2개 이상에 해당되면 자신의 보행 기능을 한 번 점검해 보자
ㆍ예전보다 종종걸음을 걷는다는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듣는다.
ㆍ횡단보도를 건널 때 초록불 신호가 짧게 느껴진다.
ㆍ계단을 내려갈 때 무의식적으로 난간을 잡게 된다.
ㆍ걸어가다 방향을 갑자기 바꾸면 몸이 흔들린다.
ㆍ눈을 뜨고 한 발로 10초 이상 서 있기 어렵다.
ㆍ의자에서 일어날 때 손을 짚거나 몸의 반동을 크게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