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역설… 잠은 왜 애쓸수록 달아날까

[한승민의 삶과 마음 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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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밤 열두 시가 넘어도 식지 않는 여름밤. 뒤척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다. ‘지금 잠들면 다섯 시간은 잘 수 있다.’ 눈을 질끈 감는다. 다시 눈을 뜨니 세 시. ‘네 시간….’ 마음이 급해진다. ‘자야 해, 자야 해.’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 애를 쓰는 밤일수록, 잠은 오히려 더 멀리 달아난다.

잠을 ‘너무 자려고 하는’ 병
진료실에서 불면을 호소하는 분들을 만나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들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침대에 일찍 눕고, 조명을 바꾸고, 좋다는 차를 마시고, 수면 영상을 틀어놓는다. 그런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며 괴로워한다.

정신의학에는 ‘정신생리성 불면(psychophysiological insomnia)’이라는 진단명이 있다. 오늘도 잠들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 잠들려고 애쓰는 그 긴장 자체가 몸을 깨워버려 불면이 이어지는 악순환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름이 붙어 있을 만큼 흔하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잠을 ‘못 자는’ 병이라기보다, 잠을 ‘너무 자려고 하는’ 병에 가깝다.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의지가 너무 강해서 생기는 일인 셈이다.

잠은 스위치가 아니다
왜 이런 역설이 벌어질까. 잠은 마음먹는다고 켤 수 있는 스위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잠은 몸과 마음의 긴장이 충분히 가라앉았을 때, 조건이 무르익으면 저절로 찾아오는 상태다.

그런데 ‘오늘은 꼭 자야 해’라는 다짐은 뇌에 전혀 다른 신호로 전달된다.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지는 순간, 뇌는 시험 전날처럼 바짝 깨어난다. 의학에서는 이를 ‘과각성(hyperarousal)’이라고 부른다. 잠들려는 노력이, 뇌에는 깨어 있으라는 명령이 되는 것이다. 애쓰면 애쓸수록 잠이 달아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역설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사람은, 공교롭게도 같은 정신과 의사였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로 잘 알려진 빅터 프랭클은 잠을 손 가까이 내려앉은 비둘기에 비유했다. 비둘기는 신경 쓰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곁에 머문다. 그러나 잡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그는 불면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정반대의 처방을 내리기도 했다. 잠들려고 애쓰는 대신, 차라리 눈을 뜨고 깨어 있어 보라고. 잡으려는 손을 거두자, 역설적으로 비둘기가 다시 내려앉았다.

우리 삶에서 애쓸수록 달아나는 것들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삶에는 애쓸수록 달아나는 것들이 잠 말고도 더 있다.

행복이 그렇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를 자꾸 확인하고 행복해지려 조바심을 낼수록, 행복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사랑이 그렇고, 마음의 평온이 그렇다. ‘편안해져야 해’라고 다그치는 순간 마음은 더 굳어진다.

세상의 일에는 두 종류가 있는 듯하다. 애쓸수록 잘되는 일과, 애쓸수록 달아나는 일. 공부와 운동과 일은 대체로 앞의 것이다. 노력한 만큼 쌓이고, 붙잡은 만큼 손에 남는다. 그러나 잠과 행복과 사랑은 뒤의 것이다. 이것들은 성취의 대상이 아니라, 조건이 갖춰졌을 때 스스로 찾아오는 손님에 가깝다.

우리가 밤마다, 그리고 삶에서 자주 불행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이 둘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달아나는 종류의 일에, 붙잡는 방식의 노력을 들이미는 것이다. 성실한 사람일수록 이 함정에 더 깊이 빠진다. 살면서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없었기에, 잠 앞에서도 더 열심히 노력해버리는 것이다.

수면을 곁으로 부르기 위해, 내려놓는 연습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몇 가지 작은 연습을 권하고 싶다.

먼저, 침대에서 ‘자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것이다. 누운 지 20분이 넘도록 잠이 오지 않는다면, 억지로 버티는 대신 차라리 일어나라. 어두운 거실에서 지루한 책을 뒤적이다가, 졸음이 다시 찾아올 때 침대로 돌아가면 된다. 침대는 잠과 씨름하는 링이 아니라, 잠이 찾아왔을 때 맞이하는 자리여야 한다.

둘째, 시계를 침실에서 치우는 것이다. ‘이제 몇 시간 남았다’는 계산이야말로 각성의 가장 좋은 연료다. 셋째, 목표를 바꾸는 것이다. ‘자야 한다’에서 ‘쉬면 된다’로. 잠이 오지 않아도 어두운 방에 편히 누워 있는 것만으로 몸은 상당 부분 회복된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허락을 내어주고 나면, 이상하게도 그제야 잠이 슬며시 찾아오곤 한다.

결국 잠자리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력이 아니라, 노력을 내려놓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손을 뻗는 대신 손바닥을 펴고 가만히 기다리는 일. 어쩌면 잠은 매일 밤 우리에게 그 연습을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밤, 당신은 무엇을 붙잡으려 애쓰다 잠들지 못하고 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