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 금지’ 붙였지만… 알고도 못 막는 환자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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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대학병원 외래 진료실 앞 부착된 녹음 금지 안내문.​/사진=구교윤 기자
'녹음 금지', '녹취 금지'.

2일 서울 한 대학병원 외래 진료실 앞에는 녹음을 금지하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안내문에는 "일반적인 녹음 및 녹취는 거부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또 다른 종합병원 외래 진료실 앞에도 "의료진 진료 중 동의 없는 녹취·동영상 촬영은 금지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 차원에서 부착한 것은 아니며 해당 진료과에서 자체적으로 게시한 안내문"이라며 "교수마다 입장이 달라 일괄적으로 운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기록 원하는 환자들… 의료진은 "알지만 제지 못해"
환자와 보호자의 진료실 녹음은 이제 일상이 됐다. 환자들은 진료 내용을 기억하고 보호자와 공유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의사들은 진료 과정에 부담을 준다고 말한다. 한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녹음을 해도 되냐고 묻는 환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한다"며 "몰래 하는 경우도 눈치로는 안다. 다만 녹음하는 걸 알게 됐다고 해서 제지하기는 쉽지 않아 모른 척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환자들의 입장도 있다.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전달되는 의사의 설명을 모두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복잡한 의학 용어를 다시 확인하거나 가족들과 공유하기 위해 녹음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장에서 만난 한 환자는 "중요한 검사 결과를 듣거나 치료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경우에는 양해를 구한 적이 있다"며 "집에 가면 설명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가족과 내용을 공유하거나 다시 확인하려는 목적"이라고 했다.

◇CCTV 이어 인공지능 확산… 커지는 기록 수요
의료행위를 기록하려는 문화는 이미 확산하는 분위기다. 지난 2023년 9월부터 전신마취나 수면마취 상태에서 진행되는 수술에 대해 수술실 CCTV 설치가 의무화됐다. 환자나 보호자가 요청하면 수술 과정을 영상으로 남길 수 있다. 당시 의료계는 환자와 의사 간 신뢰 훼손, 의료진 인권 침해, 필수의료 위축 우려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지만 제도는 시행 3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진료 현장에서는 수술실 CCTV 의무화를 비롯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기록·요약 서비스 확산 등이 맞물리면서 환자들의 기록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 다른 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면서 진료 내용을 정리하고 요약해주는 서비스가 늘어나 환자들도 이를 활용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사람인지라 내 목소리가 녹음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평소보다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녹음도 상황 따라 달라… 무턱대고 했다간 처벌
현행법상 진료실 내 녹음은 상황에 따라 법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법무법인 반우 정혜승 대표변호사는 "대화 당사자끼리 녹음하는 것은 상대방 동의가 없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면서도 "병원이 녹취를 명시적으로 거부한 상황이라면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대화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다른 사람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거나 도청하는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된다. 특히 진료실과 달리 수술실에서 녹음은 형사처벌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대법원은 지난달 24일 전신마취 상태에서 수술을 받던 환자가 수술실 대화를 녹음한 사건에서 유죄를 확정했다. 환자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환자 측 변호인은 징역 1년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해당 사건은 2021년 서울 한 성형외과에서 코 성형 재수술을 받은 환자가 대리수술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녹음기를 켜둔 채 수술을 받은 데서 비롯됐다. 법원은 마취 상태의 환자는 대화 내용을 듣거나 참여할 수 없어 의료진 대화를 녹음한 제3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대리수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었더라도 위법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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