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귀찮고 엄마는 편하다”… Z세대 ‘엄미새’ 열풍, 왜?

불안한 세상 속 ‘안전한 기지’ 지키려는 심리
자율성 뒷받침돼야… 건강한 독립을 위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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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NS에서 Z세대를 중심으로 '엄미새'라는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최근 SNS에서 Z세대를 중심으로 '엄미새'라는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엄마에 미친 새X(사람)'을 줄여 부르는 말로, 엄마와 여행을 가거나 쇼핑을 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을 친근하게 표현할 때 쓰인다. 온라인에는 '엄미새 테스트', 모녀 브이로그, 엄마와 함께한 데이트 인증 글 등이 잇따른다. 비슷하게 언니·동생과 각별한 관계를 뜻하는 '언미새', '동미새'라는 표현도 자연스럽게 쓰인다.

한때 부모와 지나치게 가까운 자녀를 '마마보이'나 '마마걸'이라고 부르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부모와 친하다는 사실이 숨겨야 할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거리가 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시기 청년층의 비연애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애를 하지 않는 청년은 늘고 있지만, 정서적 교류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대상이 연인에서 가족으로 이동했다.

◇친밀감, 연인에서 가족으로 이동
과거 연애는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통과의례처럼 여겨졌다. 최근 청년들에게는 연애는 필수가 아닌 선택에 가깝다. 지난 2022년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청년의 연애·결혼·출산 인식 조사'에 따르면 만 19~34세 비혼 청년의 65.5%는 현재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들 가운데 70%는 스스로 원해서 연애를 하지 않는 '자발적 비연애' 상태라고 응답했다. 데이터 컨설팅 기업 피앰아이(PMI)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도 만 20~49세 미혼남녀의 71.7%가 현재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연애하지 않는 이유로는 '연애에 대한 관심이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가 가장 많았다.

다만 청년들이 친밀한 관계 자체를 멀리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리서치의 '인간관계 인식조사'에 따르면 18~29세 응답자의 94%는 '다수와 깊지 않은 관계'보다 '소수와 깊은 관계'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46%는 소수와의 깊은 관계를 '매우 선호한다'고 했다. 직장인 여성 김모(27)씨는 "퇴근하고 가장 먼저 연락하는 사람도 엄마고, 주말에 쇼핑이나 카페를 함께 가는 사람도 엄마"라며 "친구보다 엄마와 있는 게 더 편하고 스트레스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굳이 에너지를 써가며 새로운 사람을 맞추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크다"고 했다.

과거 연인이 담당했던 정서적 지지와 공감, 일상 공유의 기능을 가족이 대신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친밀감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익숙하고 안전한 관계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관계 피로와 불안 속 '안전한 관계' 찾아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의 배경으로 관계 피로, 사회적 불안, 경제적 부담을 꼽는다. 오늘날 연애는 감정뿐 아니라 시간과 비용, 생활 리듬까지 조율해야 하는 관계가 됐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조사에서도 '연애도 효율성을 따지는 시대'라는 데 74.9%가 동의했다. 행복한성문화센터 배정원 대표는 "요즘 청년들은 매우 실용적"이라며 "연애를 하려면 시간과 감정, 경제적 비용까지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만, 그에 비해 얻는 것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불확실성도 영향을 미친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서은 교수는 청년들이 취업과 주거, 대인관계, 미래 불확실성 등 복합적인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돼 있다고 봤다. 노력하면 보상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약해지고 미래를 통제하기 어렵다고 느낄수록 우울과 불안, 번아웃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은 가장 안전한 관계가 된다.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임명호 교수는 "젊은 층은 집 밖에서 낯선 사람에 대한 불안감을 크게 느낀다"며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가족 중심의 이동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족은 안정 애착의 출발 지점이자 사회생활에서 지친 청년들이 상처받지 않고 돌아올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기지"라고 했다.

◇독립 늦어진 시대, 가족과 보내는 시간 늘어
청년들의 가족 친밀성이 정서적 이유만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주거와 경제 현실도 중요한 배경이다. 국무조정실의 '2024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9~34세 청년의 54.4%는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 가운데 구체적인 독립 계획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38.0%에 그쳤다. OECD 통계에서도 한국 20대의 부모 동거 비율은 2022년 기준 약 81%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배정원 대표는 "경제력이 있는 청년조차 자발적으로 부모 집에 머물며 자산을 모으는 선택을 한다"며 "이는 미국·유럽의 '부메랑 세대'와도 일치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부모 세대 태도도 영향을 미친다. 배정원 대표는 "자녀만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부모도 자녀를 곁에 두고 싶어 한다"며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건강한 가족 관계의 기준은 '자율성'
'엄미새' 트렌드,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 상황'인 걸까. 전문가들은 가족 안에서 쉼을 얻고 재충전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보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가족이 청년의 유일한 정서적 통로가 되거나, 새로운 관계 형성을 가로막을 때는 문제가 된다. 배정원 대표는 "성인이 돼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원가족과의 적절한 분리가 매우 중요하다"며 "부모와의 관계가 지나치게 밀착돼 있으면 새로운 파트너와의 결속이 상대적으로 약해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기준은 '자율성'이었다. 가족과 가까운지보다, 그 관계 안에서 청년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임명호 교수는 "결국 자녀 세대의 자율성이 있는지가 중요한 구분점이 된다"고 말했다.

부모의 역할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성인이 된 자녀를 계속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기보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배정원 대표는 "부모는 결국 자녀를 놓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세상이 불안하더라도 자녀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경험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무관심하게 방치하라는 뜻은 아니다. 부모가 자녀의 선택을 대신 결정하기보다, 선택의 결과를 함께 돌아볼 수 있는 대화 상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