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월 걸리던 희귀질환 진단, 5일 만에… 신생아 유전체 검사 효과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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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장윤실 교수./사진=오상훈 기자
“낳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인데 원인 질환까지 파악되지 않는다면 가족들은 정말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장윤실 교수의 말이다. 중증 신생아의 생명을 좌우하는 ‘신속 전장유전체 분석(Rapid Whole Genome Sequencing)’ 기술이 국내에서도 임상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평균 5일 만에 희귀 유전질환 여부를 확인해 치료 방향을 결정하고 불필요한 검사와 입원을 줄일 수 있지만,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일부 연구사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기술적 준비는 이미 끝난 만큼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수개월 걸리던 희귀질환 진단, 5일로 단축
지난 24일 열린 한국과학기자협회·국립보건연구원 공동 심포지엄에서는 ‘중증 신생아 신속 유전진단’ 연구 성과가 공개됐다. 국립보건연구원에 따르면 신생아 중환자실(NICU)에 입원하는 중증 신생아 가운데 상당수는 희귀 유전질환이 원인이다. 하지만 기존 유전자 검사는 결과 확인까지 4~6주 이상이 소요돼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는 신생아에게는 사실상 활용에 한계가 있었다.

장윤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원인을 모른 채 상태가 나빠지는 신생아를 보며 의료진과 보호자 모두 큰 고통을 겪는다”며 “희귀질환 환자는 평균 5년 이상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진단 방랑’을 겪는데, 신생아에게는 그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속 전장유전체 분석은 환아와 부모의 유전체를 동시에 분석해 유전질환 여부를 일주일 이내에 확인하는 기술이다. 국립보건연구원은 삼성서울병원과 함께 구축한 시스템을 통해 평균 5.5일 만에 진단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연구팀이 지금까지 중증 신생아 135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진단율은 약 40%에 달했다. 원인을 알 수 없던 중증 신생아 10명 가운데 4명은 유전적 원인을 확인한 셈이다. 진단 결과는 단순한 질병 확인에 그치지 않고 치료 방향 변경, 불필요한 검사 및 시술 감소, 전문 진료 연계 등 실제 임상 의사결정으로 이어졌다.

보호자들의 심리적 부담 감소 효과도 확인됐다. 연구팀 설문조사 결과 보호자 만족도는 90% 이상이었으며, 진단 여부와 관계없이 향후 치료 방향과 예후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서 불안감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효과도 적지 않았다. 연구팀은 불필요한 검사와 시술을 줄이고 입원 기간을 단축하면서 연구 대상자들에서만 약 434일의 입원 기간 감소 효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약 2억원 규모다. 장 교수는 “전국적으로 확대 적용될 경우 수십억 원 이상의 의료비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단 방랑’ 끝내고 가족 치료 방향까지 결정
현장에서 신속 유전진단이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례도 소개됐다. 양미선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생후 6일 만에 갑작스러운 경련과 호흡곤란, 치명적인 부정맥 증상을 보인 남아 사례를 소개했다. 의료진은 선천성 대사질환인 ‘오르니틴 트랜스카바밀레이스(OTC) 결핍증’을 의심했지만 기존 유전자 패널 검사에서는 원인 변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속 전장유전체 분석 결과 5일 만에 OTC 결핍증을 확진할 수 있었다. 기존 검사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유전자 비암호화 영역(인트론)의 변이가 발견된 것이다. 양 교수는 “진단에 대한 확신을 갖고 치료를 이어갈 수 있었고, 희귀질환 산정특례 등록과 향후 임신 계획을 위한 가족 유전상담까지 연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수십 명 정도만 보고된 초희귀질환이 생후 10일 만에 진단됐다. 출생 직후 근긴장 저하와 구개열, 안면 기형 등을 보인 미숙아였지만 증상이 비특이적이어서 기존 방식으로는 수년간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진단 방랑’을 겪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신속 유전진단을 통해 원인을 조기에 확인하면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녹내장, 경련 등 합병증에 대한 예방 계획까지 세울 수 있었다.

양 교수는 “이외에 폐포 모세혈관이 생성되지 않는 치명적 희귀질환으로 확인된 한 신생아는 신속 진단을 통해 예후를 정확히 설명받고 가족이 연명치료 대신 완화의료를 선택했던 사례도 있었다”라며 “신속 유전진단은 단순히 병명을 찾는 것을 넘어 치료와 관리 계획을 앞당기고 가족의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국내에서는 일부 유전자 패널 검사만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으며 전장유전체 분석은 대부분 연구사업이나 비급여 형태로 시행되고 있다. 이날 소개된 사례들 역시 연구비 지원을 통해 검사가 이뤄졌다. 반면, 미국과 영국, 호주 등에서는 신생아 중환자실 신속 유전체 분석에 보험 적용 또는 국가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장윤실 교수는 “검사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검사 결과를 해석하고 상담하며 치료로 연결하는 시스템”이라며 “국내에서도 다기관 연구를 통해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 효과성이 확인된 만큼 건강보험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증 신생아에게는 하루하루가 골든타임”이라며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 일이 없도록 국가 차원의 정밀의료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