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직전, 뇌는 이미 모든 계산을 끝낸다”… 언어 처리 과정 규명

이미지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사람은 말을 내뱉기 전 어떤 과정을 거칠까. 보통 생각이 떠오른 뒤 곧바로 입으로 표현한다고 여기지만, 실제 뇌에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한 작업이 먼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연구에서 인간의 말하기 과정이 세포 수준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추적했다. 분석 결과 말하기 직전 나타나는 뇌세포 활동만으로도 이후 발화의 의미, 문장 구조, 맥락을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는 간질 치료 과정에서 뇌에 미세 전극이 이식된 환자 8명이 참여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과 다양한 주제로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눈 뒤 대화 내용과 뇌세포 활동을 시간대별로 비교 분석했다. 특히 언어 생성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전두측두엽 피질의 신경세포 수백 개를 집중적으로 관찰했다.

참가자가 말을 시작하기 직전에 나타난 신경 활동에는 예상보다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연구진이 개발한 인공지능 모델은 해당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후 발화의 여러 특징을 예측했다. 어떤 단어가 사용될지뿐 아니라 문장의 구조, 의미, 대화가 오가는 맥락까지 일정 부분 반영돼 있었다.

신경세포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언어 생성에 관여했다. 일부는 단어의 의미나 문법적 기능 같은 기초 정보를 처리했고, 일부는 여러 단어를 연결해 문장을 구성하는 과정과 관련돼 있었다. 연구진은 이 같은 역할 분담 덕분에 인간이 자연스럽게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인공지능 모델은 비슷한 단어와 구절도 구별해냈다. 같은 표현이라도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데, 신경세포 활동에 그 차이를 반영하는 정보가 포함돼 있었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연구원인 징 차이 박사는 "이번 연구를 통해 음성 생성 과정을 세포 수준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됐다"며 "언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생각을 읽는 기술과는 거리가 있다. 다만 개별 신경세포가 언어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담아내는지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지식이 축적되면 향후 신경 활동을 음성으로 변환하는 차세대 의사소통 기술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농아·의사소통장애연구소(NIDCD) 소장 데바라 투치 박사는 "이처럼 세밀한 분석은 뇌가 어떻게 언어를 생성하는지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의사소통 장애 환자의 언어 능력을 회복시키는 기술 개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