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막는다”… 정신과 교수 4인이 말하는 ‘퇴근 후 루틴’

[의사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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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퇴근 후 꼭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물었다. /클립아트코리아
번아웃 예방을 위해서는 퇴근 후 습관부터 점검해야 한다. 일과 휴식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면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고, 기진맥진하거나 무기력해질 수 있다. 실제로 국가데이터처가 발간한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 3명 중 1명이 ‘최근 1년 동안 번아웃을 느꼈다’고 답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퇴근 후 ‘잘 쉬는 법’을 모른다는 점이다. 업무를 마친 뒤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게 일상이라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조언을 참고해 보자. 네 명의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퇴근 후 꼭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물었다.

◇퇴근 이후 시간은 ‘회복 시간’
고려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지훈 교수는 “진료 현장 특성상 업무와 완전히 분리되기는 어렵지만, 퇴근 이후에는 업무 관련 연락이나 메신저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피한다”고 답했다. 늦은 시간에 카페인을 섭취하거나 의미 없이 SNS를 보는 행동도 하지 않는다. 업무를 끝낸 이후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행동을 하면 뇌가 계속 각성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몸이 퇴근했더라도 정신은 계속 일하는 상태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박지훈 교수는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피로가 누적돼 수면의 질을 저해하고, 집중력, 정서 조절 능력에도 영향을 준다”고 했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대신 수면, 운동, 식사 같은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지속 가능한 수준에서 유지한다. 숨이 찰 정도의 운동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는 등 단순하지만 규칙적인 생활 루틴을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 식후에는 디카페인 차를 마시면서 신체의 긴장을 완화한다. 박지훈 교수는 “정신건강은 신체 상태와 분리해 보기 어렵다”며 “퇴근 후의 시간을 ‘무언가를 해내는 시간’이 아니라 ‘회복을 위해 확보해야 하는 시간’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이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시간 가져야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장윤영 교수는 “일과 휴식 사이에 적절한 경계가 없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번아웃 상태에 이르게 될 수 있다”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라고 해서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퇴근 후에는 업무 관련 연락이나 기록을 불필요하게 확인하는 건 피한다”고 했다. 자극적인 콘텐츠에 몰두하는 것도 자제한다. 불필요한 비교와 불안을 유발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게 하고,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는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하루 일과 등 여러 주제에 대해 대화한다. 이런 시간이 익숙하지 않으면 처음에는 낯설거나 민망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정서적인 환기가 이뤄져 마음에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 장윤영 교수의 설명이다. 타인으로부터 공감과 지지를 받으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고, 정서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장윤영 교수는 “정신 건강 관리의 핵심은 스트레스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 쌓인 긴장과 피로를 자신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방식대로 회복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꾸지 못하는 일, 계속 생각하지 말아야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상규 교수는 “퇴근 후 필요하다면 강의 자료를 만들거나 응급 전화를 받는 등 업무를 하지만, 낮에 있었던 고민과 걱정은 가능하면 연구실에 두고 나오려고 한다”고 했다. 퇴근 후에 자꾸 걱정거리가 생각날 때는 마음이 가는 대로 집 근처를 30분간 산책한다. 거리 풍경이 어제와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펴보거나, 때로는 맥주를 마시면서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한다. 이상규 교수는 “중독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지만, 술을 죄악처럼 여기진 않는다”며 “중요한 건 지금 그 행동이 주도권이 나에게 있는지 살피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했는데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는 스스로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최선을 다하면 결과가 달라질 일인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하나라도 “아니다”라는 답이 나온다면 결과에 연연하거나 후회하는 등 깊이 생각하는 것을 멈춘다.

◇평일에 음주하지 말고, 땀 날 정도로 운동해야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낙영 교수는 스트레스 해소나 수면을 목적으로 평일에 음주하는 것, 쉴 때 계속해서 일 생각을 하는 것, 과도하게 숏폼 콘텐츠를 보는 것을 피한다. 그는 “음주로 인해 수면의 질이 떨어질 뿐 아니라, 숙취로 인해 다음날 업무 효율이 떨어지면 ‘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자기 효능감이 떨어지고, 이는 번아웃과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준다”고 했다. 일할 때는 치열하게 일하고, 쉴 때는 확실하게 쉬는 경계선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경계선 설정이 어렵다면 자신만의 퇴근 의식을 만드는 것도 좋다. 컴퓨터를 끄고 신발을 갈아 신으면서 ‘오늘 업무는 끝났다’고 스스로에게 신호를 주면 도움이 된다.

김낙영 교수는 퇴근 후 주 2~3회 땀이 날 정도로 탁구를 친다. 그는 “퇴근 후 라켓을 쥐고 공의 움직임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 스트레스와 잡념이 사라진다”고 했다. 실제로 신체 활동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정신건강 관리법이다. 운동을 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 우울감을 해소하고 뇌 기능을 개선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