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마지막 선택이 또 다른 삶으로"… 장기기증자 기리는 ‘생명의 숲’

입력 2026/06/1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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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병원에 조성된 독립 추모 공원 '생명의 숲'은 숲을 밝히는 빛 하나하나가 새로운 삶으로 이어진다는 상징을 담고 있다/사진=명지병원 제공
지난 17일 명지병원 로비와 원내 공원에서 장기기증자들의 숭고한 선택을 기리고 생명 나눔의 가치를 되새기는 ‘생명의 벽·생명의 숲’ 제막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장기기증자 유가족과 장기이식 수혜자, 의료진, 병원 관계자,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생명의 벽은 명지병원에서 뇌사 장기기증을 실천한 98명을 모두 꽃으로 형상화해 그 뜻을 오래 기억하고 추모하도록 조성한 공간이다. 생명의 숲은 장기기증자 추모를 위해 병원 내 조성한 독립형 공원으로, 국내 첫 사례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이삼열 원장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아픔 속에서도 생명 나눔이라는 귀한 결정을 내려준 유가족들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며 “생명의 벽과 생명의 숲이 기증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는 공간이자, 숭고한 나눔이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지는 상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명지병원 장기이식센터장 이정훈 교수는 명지병원이 2008년 첫 뇌사 장기기증 사례를 발굴한 이후 체계적인 기증자 관리와 생명나눔 문화 확산에 힘써왔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슬픔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는 결정을 내려준 기증자 가족들의 용기와 헌신 덕분에 많은 환자들이 새 삶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폐이식 수혜자 대표 김관곤 씨는 1년 반 전 명지병원에서 양측 폐이식을 받았다. 그는 폐섬유화와 반복되는 기흉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생사의 경계를 오갔다. 김 씨는 “이식 수술을 마치고 첫 몇 주는 집밖을 나서기가 겁나 거실만 빙글빙글 돌다가 지금은 쉬지 않고 5km를 뛸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직장생활도 다시 시작했다”며 “숨을 쉴 때마다 지금의 삶이 기증자의 숭고한 나눔 덕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으며 기증자와 유가족에게 평생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고 말했다.

유가족 대표 이정순씨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이정순씨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후 슬픔을 안고 살아왔지만 아들의 이름과 뜻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위로가 된다”고 했다.

명지의료재단 이왕준 이사장은 “장기기증이 국내 도입된 이후 생명나눔 문화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지만 여전히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에 비해 기증은 부족한 상황이다”며 “장기기증 가족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함께 기증자의 뜻을 기억하고 생명의 소중함과 나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으며 장기기증에 대한 공감과 참여가 더욱 확산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명지병원 장기이식센터 외과 이석구 교수는 “30년 넘게 간이식 외과 의사로 활동하며 수술실에서 만난 기증자들의 생명이 단순한 장기가 아닌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자 생명의 의미 자체였다”며 “이식된 장기에 혈류가 다시 흐르고 환자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기증자들의 고귀한 나눔이 만들어낸 기적을 실감하며 기증자들의 숭고한 희생이 오래도록 빛나는 가치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제막식 이후에는 생명의 숲에서 추모공연이 이어졌다. CBS 김용신 아나운서, 소프라노 송강이, 첼리스트 이호찬, 키보디스트 김선미 등이 장기기증자들을 추모했다. 이날 공연은 출연진 전원이 재능기부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