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은 옛말… 백혈병, 이젠 ‘무치료 관해’ 시대”

입력 2026.06.08 08:00

'헬스조선 명의 톡톡' 인터뷰
'만성골수성백혈병 명의' 의정부을지대병원 혈액내과 김동욱 교수

김동욱 교수
김동욱 교수는 "백혈병은 더 이상 과거처럼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질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사진=의정부을지대병원
백혈병은 혈액을 만드는 조혈모세포에 유전자 이상이 생겨 비정상적인 백혈구가 과도하게 증식하는 질환이다. 과거에는 독한 항암치료를 견뎌내거나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받는 치료 외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유전자 분석 기술 발전과 표적항암제 등장으로 치료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현재는 장기 생존을 넘어 약을 중단한 뒤에도 재발하지 않는 '무치료 관해'를 목표로 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국내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를 이끌어온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 혈액내과 김동욱 교수를 만나 백혈병의 원인과 증상부터 표적항암제 시대의 치료 변화, 그리고 환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생활수칙까지 들어봤다.

- 백혈병은 어떤 질병인가?
"백혈병은 혈액을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암으로 변한 질환이다. 골수 안에서 비정상적인 백혈구가 과도하게 증식하면서 정상 혈액 세포 생성을 방해하게 된다. 쉽게 혈액 세포를 만드는 골수라는 공장에 불량 설계도가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쉽다. 정상 세포는 몸에 필요한 만큼만 만들어지고 성장을 멈춰야 한다. 그런데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세포를 계속 만들라는 잘못된 명령이 내려진다. 특정 염색체가 서로 잘라지고 자리를 바꾸는 과정에서 암 단백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골수 공장이 비정상 세포로 가득 차면서 정상 혈액 세포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적혈구, 정상 백혈구, 혈소판 생성이 줄어들면서 빈혈, 잦은 감염과 발열, 멍이나 출혈 등이 대표적인 증상으로 나타난다. 다만 초기에는 감기나 단순 피로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특히 병의 진행 속도와 증상이 크게 다르다. 급성 백혈병은 진행이 매우 빨라 증상이 나타난 뒤 빠르게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고열이 나고 식은땀이 흐르며 코피가 멈추지 않거나 쉽게 멍이 드는 증상이 나타난다. 반면 만성 백혈병은 서서히 진행된다. 초기에는 피로감이나 체중 감소 정도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후 식은땀이 늘어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나며, 상당수 환자는 건강검진 혈액검사에서 백혈구 수치 이상이 발견되면서 진단받는다."

- 진단과 치료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과거에는 백혈병 세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해 '상상의 세포'라고 부를 만큼 비과학적인 영역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1990년대 PCR(유전자증폭) 검사법이 도입되면서 유전자 이상이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은 어떤 유전자에 이상이 생겼는지에 따라 급성과 만성을 포함해 150여 종으로 세분화해 진단하고 있다. 기본적인 혈액검사만으로도 어느 정도 백혈병을 의심할 수 있다. 이후 골수검사와 함께 염색체 및 유전자 분석을 시행한다. 최근에는 NGS(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기술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예전에는 유전자 분석에만 수주가 걸렸지만 지금은 정보기술과 인공지능(AI) 발전으로 훨씬 빠르고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수많은 유전자 가운데 암을 유발하는 핵심 변이를 찾아내 진단과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 특히 유전자 이상에 따라 맞춤형 치료를 시행한다. 급성 백혈병은 항암화학요법과 조혈모세포이식이 표준 치료다. 반면 만성골수성백혈병은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신호를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표적항암제가 치료의 중심이다. 현재는 1세대부터 4세대까지 다양한 표적항암제가 개발돼 환자의 상태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최근에는 CAR-T 세포치료제와 이중항체 같은 면역치료도 치료 선택지로 활용되고 있다."

- 완치가 가능한가?
"과거에는 치명적인 질환으로 인식됐지만 표적항암제가 등장하면서 치료 성적이 크게 향상됐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장기 생존이 가능해졌고 최근에는 약을 중단한 뒤에도 재발하지 않는 무치료 관해를 목표로 치료하고 있다. 실제로 일정 기준을 충족한 환자 가운데 일부는 약을 끊은 뒤에도 장기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환자가 임의로 약을 끊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유전자 검사 결과와 치료 경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현재는 최소 5년 이상 약을 복용하고 깊은 분자학적 반응이 수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된 경우에 한해 약 중단을 검토한다. 최근에는 어떤 환자가 약 중단 후에도 재발하지 않을지를 예측하는 바이오마커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 국책 사업으로 진행 중인 연구는 어떤 내용인가?
"서양과 비교하면 국내 백혈병 환자는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층에서 많이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 지원을 받아 국내 대학병원 환자 데이터와 한국인 유전체 데이터를 분석하며 한국인 환자 특성에 맞는 진단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보다 정확하면서 비용 부담이 적은 한국형 진단 패널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또 의료진과 환자가 검사 결과와 치료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도 구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치료 반응을 보다 정밀하게 평가하고 재발 가능성을 조기에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환자가 일상생활에서 꼭 지켜야 할 수칙은 무엇인가?
"과거 백혈병 치료는 의사의 골수이식 수술 실력이 성패를 좌우했지만 지금은 알약을 먹는 표적치료가 중심이기 때문에 치료 주도권의 절반은 환자에게 넘어왔다. 의사가 아무리 좋은 치료를 해도 환자가 정확하게 복약하지 않으면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약을 복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표적항암제는 간에서 대사되기 때문에 다른 약물과 함께 복용할 경우 혈중 농도가 변할 수 있다. 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부작용 위험이 커지고, 반대로 낮아지면 약효가 떨어질 수 있다. 항생제, 소염진통제, 심장약, 부정맥 치료제, 신경정신과 약물 등은 상호작용 가능성이 있어 반드시 주치의와 상의해야 한다. 증상이 좋아졌다고 임의로 약을 중단하거나 복용을 거르는 행동도 피해야 한다."

-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백혈병은 더 이상 과거처럼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질환이 아니다. 하루 한 알의 약으로도 일상을 유지하는 환자가 많아졌고 무치료 관해를 목표로 하는 치료도 가능해지고 있다. 주치의를 믿고 정확하게 치료를 이어간다면 충분히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치료는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많은 환자가 건강한 삶으로 돌아가고 있다."

김동욱 교수는…
대한민국 혈액암 분야를 대표하는 만성골수성백혈병 권위자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장을 거쳐 현재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 혈액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1년 국내 도입된 1세대 표적항암제 글리벡부터 최근 개발된 4세대 표적항암제 애시미닙에 이르기까지 주요 국내외 임상시험에 참여하며 만성골수성백혈병 표적치료 발전에 기여해왔다. 아시아 최초로 유럽백혈병네트워크(ELN) 만성골수성백혈병 국제 표준 치료지침 개정 작업에 참여했으며,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지원 '멀티오믹스 디지털 통합 분석 사업' 총괄책임자를 맡아 한국형 정밀 진단 패널 개발과 디지털 기반 백혈병 정밀의료 플랫폼 구축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