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실려간 자살 시도자 40%는 ‘재시도자’… 퇴원 후 끊기는 연결고리

입력 2026.06.05 05:00

응급실 이후 치료 체계 여전히 취약
병상 부족·입원 기준·인력 이탈 겹쳐
전문가들 "양적 확대보다 질적 연결 필요"

응급실
최근 대한의학회지(JKMS)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2015~2022년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서울 소재 한 병원 응급실을 찾은 24세 이하 자살 시도·자해 환자 1445명 가운데 7.1%는 60일 이내 같은 이유로 응급실을 다시 찾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극단적 선택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돌아온 이들이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사실상 '마지막 안전망'은 병원 응급실이다. 정부가 자살 예방 예산을 확대하고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 사업'을 꾸준히 늘려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살 시도 후 응급실을 찾은 환자 상당수가 정신건강 치료 체계와 충분히 연결되지 못한 채 퇴원하고, 일부는 다시 응급실로 돌아온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인식 개선 중심의 예방 정책을 넘어,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집중 개입과 치료 연계 강화에 정책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응급실 방문, 놓쳐선 안 될 '골든타임'
자살 시도나 자해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에게 ‘첫 내원’은 반복 시도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개입 시점이다. 현재 시스템은 이들을 충분히 붙잡지 못하고 있다. 최근 대한의학회지(JKMS)에 게재된 김태한 서울시보라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팀의 논문에 따르면, 2015~2022년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서울 소재 한 병원 응급실을 찾은 24세 이하 자살 시도·자해 환자 1445명 가운데 7.1%는 60일 이내 같은 이유로 응급실을 다시 찾았다. 청소년·청년 환자 14명 중 1명꼴이다. 이는 25~40세(5.8%), 41~60세(4.8%), 61세 이상(2.3%)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 청소년·청년층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재방문 위험이 1.93배 높았고, 1인 가구는 1.57배, 도움 요청 표현이 있었던 경우는 1.68배, 정신과 치료 이력이 있는 경우는 2.41배 높았다. 계획된 자해·자살 시도는 수술이나 중환자실 입원 등 중증 의학적 결과로 이어질 위험이 1.92배 높았다. 연구진은 "효과적인 개입이 없으면 반복적인 비치명적 시도로 인해 궁극적인 자살 또는 장기 장애 위험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며 지속적인 정신과 진료와 추적 관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 반복 시도 문제는 전국 단위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2024년 전국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를 방문한 자살 시도자 2만3247명 가운데 43.6%(1만141명)는 재시도자다. 응급실 이후의 관리 체계가 자살 예방의 핵심 과제임을 보여주는 수치다.

◇응급실 이후 끊기는 연결
정부는 응급실을 찾은 자살 시도자를 대상으로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의료기관 내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가 응급실 내원 자살 시도자를 발굴해 최소 4회의 단기 상담을 제공하고, 이후 지역 자살예방센터나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으로 연계하는 방식이다. 2013년 21개 병원에서 시작된 사업은 현재 전국 95개 병원으로 확대됐으며, 관련 예산도 2021년 126억3600만 원에서 지난해 146억8400만 원으로 늘었다.

보건복지부의 '자살 시도자 응급의료 체계 모형 개발 연구(2019)'에 따르면 응급실 기반 사후관리 서비스를 받은 집단의 자살 사망률은 4.6%로, 서비스를 받지 않은 집단(12.5%)보다 낮았다.

문제는 상당수 환자가 실제 관리 체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 내원자 가운데 사후관리 서비스에 동의한 비율은 67.3%였고, 실제 지역사회 기관으로 연계된 비율은 전체 내원자 기준 약 44%였다.

응급실 단계에서부터 사각지대도 존재한다. 가천대 길병원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 채현아 사례관리자는 "주취 상태 환자는 상담 안내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고, 미성년자는 보호자가 거부하면 접촉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응급실 내원 직후에는 상담에 동의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위기감이 낮아지면 서비스를 중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거부하면 방법 없다" 병상 부족·입원 기준도 걸림돌
응급실 이후 치료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는 점 역시 반복 시도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성준 교수는 "어떤 이유로든 치료 연계가 지속되지 않으면 환자들은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돌아가게 된다"며 "적절한 개입 없이 퇴원하면 증상이 악화돼 다시 응급실을 찾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환자가 치료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조 교수는 "응급실에서 자살 시도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하지 않거나 신체적 처치만 요구하는 환자들도 많다"며 "현재 제도에서는 환자 의사가 중요한 만큼 치료 연계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설령 의료진이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더라도 현실의 벽은 높다. 조 교수는 "과거보다 입원 요건이 엄격해지면서 현재는 치료 필요성과 자·타해 위험성을 모두 요구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자살 위험성이 명백해 보여도 본인이 완강히 거부하면 돌려보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신과 병상 부족과 병상 정보 공유 부재도 문제로 꼽힌다. 조 교수는 "어느 병원에 빈 병상이 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급성기·만성기 등 기능별 병상 현황을 전국 단위에서 공유하고 중앙 차원의 연계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업은 커졌는데 인력은 이탈
사후관리 사업의 핵심은 ‘사례관리자’다. 응급실에서 자살 시도자를 만나 상담하고 퇴원 이후에도 치료와 지역사회 서비스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지난해 전국 93개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 사례관리자 243명 가운데 200명(82%)이 비정규직으로 집계됐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국고보조사업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상당수 수행기관에서 비정규직 고용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며 "고용 안정성 확보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며 사업 운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채현아 사례관리자는 "현재 최대 2년 계약직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인력이 지속적으로 교체되고, 신규 인력이 현장에 적응하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 규모는 크게 확대됐지만 장기근속 인력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현장에서는 자살 재시도자가 과거 자신을 상담했던 사례관리자를 다시 찾는 경우도 많다. 상담 기술뿐 아니라 신뢰 관계 자체가 중요한 만큼 잦은 인력 교체는 서비스의 연속성과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성준 교수도 "사례관리는 결국 사람의 일"이라며 "환자를 설득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치료를 이어가도록 돕는 작업인 만큼 경험과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늘어난 예산, 이제는 '확대'보다 '연결'
정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올해부터 사업 지침을 개편해 기존의 '4회 상담 후 지역사회 연계' 방식에서 벗어나 응급실 단계에서 사례관리와 지역사회 연계 동의를 함께 받아 즉시 연계하도록 했다. 사후관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탈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응급실 내원 자살 시도자의 정보를 지역 자살예방센터 등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자살예방법 개정안도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재단은 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퇴원 이후 지역사회 개입이 보다 신속하고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제도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조성준 교수는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례관리 사업은 효과가 입증된 모델이지만 지역사회 정신건강 서비스 기반이 취약하면 효과를 지속하기 어렵다"며 "숙련된 인력이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응급실 이후의 치료 연계 강화와 함께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정신질환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회복될 수 있다는 점을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한다"며 "일회성 캠페인보다 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정신건강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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