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크리에이터’ 정새얀, “조금 낮지만 넓은 세상 보여줄 것”

입력 2026.06.03 20:00

[이슈人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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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순간이 오면 가장 먼저 스스로를 믿으려 한다는 정새얀 씨. /사진=정새얀 씨 제공
희귀질환인 지방척수수막류를 가지고 태어나 세 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았던 정새얀(27·충남 천안시)씨는 10대 후반 무렵부터 휠체어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지방척수수막류란 태어날 때 허리뼈 사이로 지방이 튀어나와 척수와 붙어 있어, 성장하는 동안 다리 힘이나 배뇨·배변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선천성 질환이다. 이러한 조건에서도 그는 세상의 둑을 허물고 자신만의 길을 트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삼성물산 패션부문에서 콘텐츠 마케팅 직무로 2년간 근무했으며, 스무 살에 처음 만난 남자친구와 8년째 연애를 이어가는 등 일하고 사랑하며 미래를 고민하는 평범한 청년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현재는 이직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하루를 충실히 채우며 누구보다 진득하게 삶을 채워나가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계기는?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예전부터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연하게 미루기만 했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하게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 경험이 콘텐츠 제작에 대한 흥미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일상에서 겪는 경험이나 생각에 공감해주는 분들이 있다는 게 신기했고, 그때부터 꾸준히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패션과 메이크업에도 일가견이 있던데.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특히 어머니의 영향이 컸는데, 이와 함께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한 몫을 했다. 예전에는 장애인을 보면 안쓰럽게 여기거나 동정하는 시선이 많았고, 길을 가다 보면 ‘어쩌다 다쳤어?’ 같은 말을 듣는 일도 흔했다. 사춘기 시절엔 그런 시선들이 불편했고, 만만해 보이거나 불쌍해 보이고 싶지 않아 외모에 공을 들였다.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표현하려는 의도였다. 이렇듯 처음엔 자기 방어가 목적이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꾸미는 것을 넘어,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바디프로필 촬영도 했다. 준비 과정에서 얻은 건 무엇이었나?
“원래 운동을 정말 싫어했다. 운동치료도 빼먹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일주일에 한 번 치료를 받는 것보다 집 근처 헬스장에서 꾸준히 운동하는 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운동치료 선생님의 조언에 헬스장에서 PT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바디프로필에도 도전해보라는 주변 권유를 받았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큰 도전을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에 바디프로필 촬영을 결심했다.

바디프로필을 준비하며 느낀 건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목표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새로운 도전에 뛰어든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준비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힘들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결과물 역시 만족스러웠고, 운동을 통해 체력뿐만 아니라 자존감도 많이 높아졌다.”

-청년 세대의 관심사 중 하나인 취업에서 느끼는 장벽이 있다면?
“사실 예전에는 장애가 취업에 있어 큰 영향을 준다고 깊게 체감하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나 일상에서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진 역량과 경험으로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취업을 준비하면서 현실적인 장벽을 느끼는 순간들이 늘었다. 관심 있는 분야에 장애인 전형 자체가 많지 않아 요즘엔 지원 과정에서부터 고민이 앞선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장애인 전형이 있는 곳만 선택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고 싶은 분야를 계속 도전해야 하는 걸까. 요즘엔 이 고민을 하는 중이다. 지금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중이다. 잠재가능성보다 장애가 판단 기준에서 우선순위에 놓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대중으로부터 받은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건?
“장애인이라고 하면 아직도 ‘못하는 것이 많다’, ‘우울하고 병약할 것 같다’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저를 만난 분들에게서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대중이 장애를 조금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편견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던 적도 있었을 텐데.
“누군가의 시선이나 편견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은 지금도 자주 있다. 최근 겪었던 면접 취소 경험, 길에서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장애인을 놀리듯 이야기하는 순간들,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로 출입이 어렵다고 말하는 식당이나 운동이 어렵다며 이용을 거절하는 헬스장, 승차를 거부하는 택시 등을 마주할 때마다 매번 상처 받는다.

이런 일들은 겪을수록 무조건 단단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똑같이 속상하고, 때로는 자존감이 무너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낀 것도 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무조건 참고 넘어가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점이다. 위축되기보다는 최대한 차분하게 의견을 말하며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살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자주 해준 말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잘하고 있다’였다. 살아가면서 장애에 대한 시선이나 편견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질 때도 있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는 순간들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그래도 잘 버티고 있고, 잘 해내고 있다’라고 말하려 노력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계속 도전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을 것이다. 한 걸음씩 움직일 때면, 생각하지 못했던 기회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오기도 했고 그 기회들을 붙잡으며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지금도 힘든 순간이 오면 가장 먼저 스스로를 믿으려 한다.”

-앞으로의 도전 계획은?
“장애인의 입장으로 일상 속에서 직접 겪는 일들과 사회 이슈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고 싶다. 특히 휠체어 사용자로 생활하며 느끼는 이동 환경과 접근성에 관심이 많다. 장애인 콜택시나 저상버스처럼 장애인을 위한 제도들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이용자 입장에서 느끼는 현실적인 부분들을 직접 경험하고 콘텐츠로 담고 싶다. 또한 장애인 보디빌딩 대회에 참여한다는 목표도 있다. 바디프로필 촬영으로 큰 도전을 한 번 경험해 봤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한계에 도전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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