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피임법 사용률 38.3% 그쳐
질외사정·생리주기법 여전히 흔해
"피임약 먹으면 난임" 왜곡된 정보 확산
관계 속 신체 자율권 교육 필요성 제기
"피임은 늘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생리 날짜도 앱으로 계산했고, 질외사정도 철저히 했거든요. 그런데 덜컥 임신이 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최근 원치 않는 임신을 한 20대 여성 A씨의 고백은 청년들의 피임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여전히 ‘질외사정’이나 ‘생리주기 계산’을 사실상 피임법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임 필요성 자체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실패 위험이 큰 방식에 의존하거나 경구피임약에 대한 막연한 불안 때문에 의학적으로 효과가 검증된 현대적 피임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개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왜곡된 피임 상식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성교육 구조가 복합적으로 만든 결과라고 지적한다.
◇"피임은 한다"지만… 생리주기·질외사정 의존 여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정부 용역을 받아 지난해 진행한 '한국 여성의 생애주기별 성·생식건강조사(2차)'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 내 성관계 경험이 있는 19~39세 여성 중 성관계 시 피임을 '항상 한다'고 답한 비율은 62%였다. 나머지 38%는 '전혀 하지 않는다'(20.9%)거나 '가끔 한다'(17.1%)고 답했다. 2022년 1차 조사(47.8%)보다는 개선됐지만, 여전히 상당수가 안정적인 피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피임 방식'이었다. 최근 1년간 성관계 경험이 있고 폐경·임신·출산 상태가 아닌 여성 중 콘돔·경구피임약 등 '현대적 피임법'만 사용한 비율은 38.3%에 그쳤다. 반면 가장 많이 사용한 피임법(중복 응답·비피임 제외)은 생리주기법(33.6%)이었다. 파트너가 사용한 피임법으로는 콘돔 다음으로 질외사정(42.2%) 비율이 높았다. 보사연 연구진은 "피임을 항상 수행하는 것과 효과적인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 사이에 여전히 간극이 크다"고 분석했다.
피임을 항상 하지 않는 이유로는 '임신이 쉽게 될 것 같지 않아서'(42.1%·중복 응답)가 가장 많았다. '피임 도구 사용이 불편해서'(36.5%)라는 응답도 뒤를 이었다. 젊은 층 사이에 만연한 '설마 괜찮겠지'라는 낙관적 인식이 실제 피임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비혼기 및 임신 준비기 성·재생산 건강권 보장 정책의 방향과 과제' 보고서 역시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최근 3년 내 성관계 경험이 있고 '피임을 가끔·자주·항상 한다'고 답한 20~39세 남녀 조사에서, 남성용 콘돔(91.6%) 다음으로 많이 사용된 방식은 질외사정법(37.7%), 경구피임약(19.6%), 월경주기법(17.6%)이었다.
특히 질외사정법 사용 비율은 여성(42.1%)이 남성(34.7%)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났다. 월경주기법 역시 여성(20.4%)이 남성(15.7%)보다 높았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피임의 책임과 판단이 여성에게 더 많이 전가돼 온 구조와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높은 비용 장벽과 '시술'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청년층이 콘돔 외 현대적 피임법을 주저하는 배경에는 비용 부담과 심리적 진입장벽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서 피임 비용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한 여성은 31.0%로 남성(16.7%)의 약 두 배였다. 비용 부담 때문에 피임을 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전체의 29.8%에 달했다.
경구피임약이나 자궁내장치(IUD), 응급피임약 등은 여성 본인이 직접 비용을 부담하고 의료기관을 방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질외사정법이나 월경주기법은 별도 비용이나 병원 방문 없이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접근 장벽이 낮다. 대학생 B씨는 "경구피임약을 매달 사거나 주기적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하는 비용이 자취생에게는 꽤 큰 부담"이라며 "질외사정이나 생리주기 계산은 비용이 들지 않으니 쉽게 의존하게 된다"고 했다.
여기에 '시술'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존재한다. 고려대 안산병원 산부인과 이경욱 교수는 "피하 이식형 피임제나 자궁 내 장치는 한 번 시술로 장기적이고 높은 피임 효과를 유지하지만, 시술에 대한 두려움과 통증 우려, 향후 임신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외국에 비해 국내 사용률은 다소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질외사정, 안전한 피임법 아냐"
전문가들은 질외사정과 생리주기법을 안전한 피임법처럼 인식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이경욱 교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실패율이 높은 주기 조절법이나 질외사정에 의존하고 있다"며 "질외사정은 실패율이 매우 높은 방식"이라고 말했다.
질외사정은 '완벽하게 사용했을 경우'에도 실패율이 약 4% 수준이며, 실제 사용 환경에서는 20~30% 이상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 전 분비되는 쿠퍼액에도 정자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고, 실제 상황에서 정확한 조절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쿠퍼액에 정자가 포함돼 있을 수 있고, 성관계 중 사정 전에 질외사정을 정확히 조절하는 것도 어렵다"며 "질외사정의 실패율은 임상적으로 최대 40%까지도 보고되는 만큼, 안전한 피임방법으로 권고되지 않는다"고 했다.
에비뉴여성의원 조병구 원장 역시 "의학적으로는 거의 피임 효과를 인정하지 않는 수준"이라며 "환자들이 이를 선호하는 이유는 비용이 들지 않고 간편하며, 약물 복용이나 시술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생리주기법에 대해서도 그는 "질외사정보다 피임 실패율이 훨씬 더 높다"며 "배란일은 스트레스, 피로, 환경 변화에 따라 쉽게 변동될 수 있는데 이를 고정된 수치로 계산해 안전하다고 믿는 것이 가장 큰 위험"이라고 했다.
◇피임약 오래 먹으면 난임? "의학적 근거 없어"
반면 가장 대표적인 현대적 피임법인 경구피임약은 과장된 공포에 직면해 있다. 장기 복용 시 난임을 유발하거나 호르몬 체계를 망가뜨린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30대 직장인 C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피임약을 오래 먹으면 임신이 어려워진다'는 글을 보고 복용을 중단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식이 완전한 오해라고 선을 긋는다. 이경욱 교수는 "경구피임약은 장기 복용하더라도 영구적인 호르몬 이상이나 난임을 유발하지 않는다"며 "임신을 원할 때 복용을 중단하면 가임 기능도 회복된다"고 말했다. 조병구 원장 역시 "장기 복용이 난소 기능을 저하시킨다거나 불임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잘못된 통념"이라며 "오히려 자궁내막증이나 난소 낭종 같은 가임력을 저해할 수 있는 질환 관리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했다.
SNS를 통한 잘못된 정보 확산도 문제로 꼽힌다. 중앙약국 이준 약사는 현장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으로 피임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꼽으며, 온라인을 통해 잘못된 상식이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현실을 우려했다. 그는 "최근 온라인에서는 피임약 부작용이 과장되거나 왜곡된 형태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며 "정확한 복용법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쉬쉬하는 성교육, 관계 속 주도권 공백으로 이어져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불안전한 피임이 단순한 정보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학교 성교육과 경직된 사회 분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한성문화센터 배정원 대표는 "20~30대 청년들의 절반 이상이 학창 시절 성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하지만, 대부분 일회성 특강이나 몇 차례 수업에 그친다"며 "정보가 반복적으로 전달되지 않다 보니 실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어지지 못한다"고 말했다.
교육 내용 역시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다. 배 대표는 "학교 성교육은 생물학적 구조나 성폭력 예방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정작 실제 관계에서 필요한 현실적인 피임법, 성적 동의, 경계를 지키고 존중하는 법 같은 '관계 교육'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 같은 공백은 학교 현장의 제도적 한계와 민원 부담과도 맞닿아 있다. 배 대표는 "성교육이 정식 교과목이 아니다 보니 수업 비중 자체가 적고, 현장 교사들도 학부모 민원을 의식해 피임 관련 내용을 적극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했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는 콘돔 교육조차 민원 대상이 되면서 다양한 피임법이나 실질적 의사소통 교육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교육 공백이 실제 관계 속 주도권의 불균형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여전히 성에 대한 이중적 인식이 남아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이 파트너에게 피임을 요구하거나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데 심리적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20대 여성 D씨는 "남자 친구가 콘돔 착용을 싫어해도 분위기를 망칠까 봐 강하게 말하지 못한 적이 있다"며 "이후 혼자 임신 가능성을 걱정하며 불안해했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피임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자신의 몸을 지키는 문제"라며 "상대에게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신체 자율권과 의사소통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개인 책임만으로 해결 못 해… 포괄적 성교육 필요"
전문가들은 피임 문제를 개인의 책임이나 도덕성 차원으로만 접근해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현대적 피임 수단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의료 접근성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한, 실패 위험이 큰 비현대적 피임법에 대한 의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진 역시 보고서에서 "콘돔 외 현대적 피임 수단에 대한 정보 제공과 접근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비용 부담과 의료 접근 장벽 속에서 비현대적 피임법 의존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국내 성교육이 여전히 '하지 말라'는 경고 중심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한다. 피임을 단순히 임신 예방 기술로만 다루기보다,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몸과 건강을 스스로 보호하는 실질적 교육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배정원 대표는 "해외 여러 국가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피임 방법과 의사소통, 동의와 거절의 표현 등을 구체적으로 교육한다"며 "우리 역시 단순히 사고를 예방하는 수준을 넘어, 자기 몸을 돌보고 관계 속에서 안전하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포괄적 성교육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물학적 지식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감정·관계·존중·경계·의사소통까지 포함하는 교육이 정규 과정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전문가 상담 접근성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이경욱 교수는 "경구피임약을 의료진 상담 없이 임의로 복용하거나 복용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 부정 자궁출혈이나 피임 실패 위험이 커질 수 있다"며 "개인의 건강 상태와 생활 습관에 따라 적절한 피임 방법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전문의 상담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피임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청년층의 피임 현실을 단순한 개인 부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접근성, 비용 부담, 교육 공백, 관계 내 권력 불균형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회 구조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확한 정보와 현실적인 성교육, 의료 접근성이 함께 개선되지 않는 한 청년층의 불안전한 피임 현실 역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원치 않는 임신을 한 20대 여성 A씨의 고백은 청년들의 피임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여전히 ‘질외사정’이나 ‘생리주기 계산’을 사실상 피임법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임 필요성 자체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실패 위험이 큰 방식에 의존하거나 경구피임약에 대한 막연한 불안 때문에 의학적으로 효과가 검증된 현대적 피임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개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왜곡된 피임 상식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성교육 구조가 복합적으로 만든 결과라고 지적한다.
◇"피임은 한다"지만… 생리주기·질외사정 의존 여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정부 용역을 받아 지난해 진행한 '한국 여성의 생애주기별 성·생식건강조사(2차)'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 내 성관계 경험이 있는 19~39세 여성 중 성관계 시 피임을 '항상 한다'고 답한 비율은 62%였다. 나머지 38%는 '전혀 하지 않는다'(20.9%)거나 '가끔 한다'(17.1%)고 답했다. 2022년 1차 조사(47.8%)보다는 개선됐지만, 여전히 상당수가 안정적인 피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피임 방식'이었다. 최근 1년간 성관계 경험이 있고 폐경·임신·출산 상태가 아닌 여성 중 콘돔·경구피임약 등 '현대적 피임법'만 사용한 비율은 38.3%에 그쳤다. 반면 가장 많이 사용한 피임법(중복 응답·비피임 제외)은 생리주기법(33.6%)이었다. 파트너가 사용한 피임법으로는 콘돔 다음으로 질외사정(42.2%) 비율이 높았다. 보사연 연구진은 "피임을 항상 수행하는 것과 효과적인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 사이에 여전히 간극이 크다"고 분석했다.
피임을 항상 하지 않는 이유로는 '임신이 쉽게 될 것 같지 않아서'(42.1%·중복 응답)가 가장 많았다. '피임 도구 사용이 불편해서'(36.5%)라는 응답도 뒤를 이었다. 젊은 층 사이에 만연한 '설마 괜찮겠지'라는 낙관적 인식이 실제 피임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비혼기 및 임신 준비기 성·재생산 건강권 보장 정책의 방향과 과제' 보고서 역시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최근 3년 내 성관계 경험이 있고 '피임을 가끔·자주·항상 한다'고 답한 20~39세 남녀 조사에서, 남성용 콘돔(91.6%) 다음으로 많이 사용된 방식은 질외사정법(37.7%), 경구피임약(19.6%), 월경주기법(17.6%)이었다.
특히 질외사정법 사용 비율은 여성(42.1%)이 남성(34.7%)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났다. 월경주기법 역시 여성(20.4%)이 남성(15.7%)보다 높았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피임의 책임과 판단이 여성에게 더 많이 전가돼 온 구조와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높은 비용 장벽과 '시술'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청년층이 콘돔 외 현대적 피임법을 주저하는 배경에는 비용 부담과 심리적 진입장벽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서 피임 비용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한 여성은 31.0%로 남성(16.7%)의 약 두 배였다. 비용 부담 때문에 피임을 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전체의 29.8%에 달했다.
경구피임약이나 자궁내장치(IUD), 응급피임약 등은 여성 본인이 직접 비용을 부담하고 의료기관을 방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질외사정법이나 월경주기법은 별도 비용이나 병원 방문 없이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접근 장벽이 낮다. 대학생 B씨는 "경구피임약을 매달 사거나 주기적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하는 비용이 자취생에게는 꽤 큰 부담"이라며 "질외사정이나 생리주기 계산은 비용이 들지 않으니 쉽게 의존하게 된다"고 했다.
여기에 '시술'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존재한다. 고려대 안산병원 산부인과 이경욱 교수는 "피하 이식형 피임제나 자궁 내 장치는 한 번 시술로 장기적이고 높은 피임 효과를 유지하지만, 시술에 대한 두려움과 통증 우려, 향후 임신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외국에 비해 국내 사용률은 다소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질외사정, 안전한 피임법 아냐"
전문가들은 질외사정과 생리주기법을 안전한 피임법처럼 인식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이경욱 교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실패율이 높은 주기 조절법이나 질외사정에 의존하고 있다"며 "질외사정은 실패율이 매우 높은 방식"이라고 말했다.
질외사정은 '완벽하게 사용했을 경우'에도 실패율이 약 4% 수준이며, 실제 사용 환경에서는 20~30% 이상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 전 분비되는 쿠퍼액에도 정자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고, 실제 상황에서 정확한 조절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쿠퍼액에 정자가 포함돼 있을 수 있고, 성관계 중 사정 전에 질외사정을 정확히 조절하는 것도 어렵다"며 "질외사정의 실패율은 임상적으로 최대 40%까지도 보고되는 만큼, 안전한 피임방법으로 권고되지 않는다"고 했다.
에비뉴여성의원 조병구 원장 역시 "의학적으로는 거의 피임 효과를 인정하지 않는 수준"이라며 "환자들이 이를 선호하는 이유는 비용이 들지 않고 간편하며, 약물 복용이나 시술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생리주기법에 대해서도 그는 "질외사정보다 피임 실패율이 훨씬 더 높다"며 "배란일은 스트레스, 피로, 환경 변화에 따라 쉽게 변동될 수 있는데 이를 고정된 수치로 계산해 안전하다고 믿는 것이 가장 큰 위험"이라고 했다.
◇피임약 오래 먹으면 난임? "의학적 근거 없어"
반면 가장 대표적인 현대적 피임법인 경구피임약은 과장된 공포에 직면해 있다. 장기 복용 시 난임을 유발하거나 호르몬 체계를 망가뜨린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30대 직장인 C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피임약을 오래 먹으면 임신이 어려워진다'는 글을 보고 복용을 중단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식이 완전한 오해라고 선을 긋는다. 이경욱 교수는 "경구피임약은 장기 복용하더라도 영구적인 호르몬 이상이나 난임을 유발하지 않는다"며 "임신을 원할 때 복용을 중단하면 가임 기능도 회복된다"고 말했다. 조병구 원장 역시 "장기 복용이 난소 기능을 저하시킨다거나 불임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잘못된 통념"이라며 "오히려 자궁내막증이나 난소 낭종 같은 가임력을 저해할 수 있는 질환 관리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했다.
SNS를 통한 잘못된 정보 확산도 문제로 꼽힌다. 중앙약국 이준 약사는 현장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으로 피임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꼽으며, 온라인을 통해 잘못된 상식이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현실을 우려했다. 그는 "최근 온라인에서는 피임약 부작용이 과장되거나 왜곡된 형태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며 "정확한 복용법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쉬쉬하는 성교육, 관계 속 주도권 공백으로 이어져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불안전한 피임이 단순한 정보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학교 성교육과 경직된 사회 분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한성문화센터 배정원 대표는 "20~30대 청년들의 절반 이상이 학창 시절 성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하지만, 대부분 일회성 특강이나 몇 차례 수업에 그친다"며 "정보가 반복적으로 전달되지 않다 보니 실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어지지 못한다"고 말했다.
교육 내용 역시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다. 배 대표는 "학교 성교육은 생물학적 구조나 성폭력 예방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정작 실제 관계에서 필요한 현실적인 피임법, 성적 동의, 경계를 지키고 존중하는 법 같은 '관계 교육'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 같은 공백은 학교 현장의 제도적 한계와 민원 부담과도 맞닿아 있다. 배 대표는 "성교육이 정식 교과목이 아니다 보니 수업 비중 자체가 적고, 현장 교사들도 학부모 민원을 의식해 피임 관련 내용을 적극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했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는 콘돔 교육조차 민원 대상이 되면서 다양한 피임법이나 실질적 의사소통 교육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교육 공백이 실제 관계 속 주도권의 불균형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여전히 성에 대한 이중적 인식이 남아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이 파트너에게 피임을 요구하거나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데 심리적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20대 여성 D씨는 "남자 친구가 콘돔 착용을 싫어해도 분위기를 망칠까 봐 강하게 말하지 못한 적이 있다"며 "이후 혼자 임신 가능성을 걱정하며 불안해했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피임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자신의 몸을 지키는 문제"라며 "상대에게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신체 자율권과 의사소통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개인 책임만으로 해결 못 해… 포괄적 성교육 필요"
전문가들은 피임 문제를 개인의 책임이나 도덕성 차원으로만 접근해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현대적 피임 수단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의료 접근성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한, 실패 위험이 큰 비현대적 피임법에 대한 의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진 역시 보고서에서 "콘돔 외 현대적 피임 수단에 대한 정보 제공과 접근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비용 부담과 의료 접근 장벽 속에서 비현대적 피임법 의존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국내 성교육이 여전히 '하지 말라'는 경고 중심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한다. 피임을 단순히 임신 예방 기술로만 다루기보다,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몸과 건강을 스스로 보호하는 실질적 교육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배정원 대표는 "해외 여러 국가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피임 방법과 의사소통, 동의와 거절의 표현 등을 구체적으로 교육한다"며 "우리 역시 단순히 사고를 예방하는 수준을 넘어, 자기 몸을 돌보고 관계 속에서 안전하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포괄적 성교육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물학적 지식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감정·관계·존중·경계·의사소통까지 포함하는 교육이 정규 과정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전문가 상담 접근성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이경욱 교수는 "경구피임약을 의료진 상담 없이 임의로 복용하거나 복용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 부정 자궁출혈이나 피임 실패 위험이 커질 수 있다"며 "개인의 건강 상태와 생활 습관에 따라 적절한 피임 방법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전문의 상담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피임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청년층의 피임 현실을 단순한 개인 부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접근성, 비용 부담, 교육 공백, 관계 내 권력 불균형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회 구조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확한 정보와 현실적인 성교육, 의료 접근성이 함께 개선되지 않는 한 청년층의 불안전한 피임 현실 역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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