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농장 항생제 82.4%가 ‘무처방’… 축산 유통망 방치 속 커지는 내성균 우려

입력 2026.05.18 10:36

한국돼지수의사회 "돼지농장 항생제 82.4% 처방 불일치"
수의사처방제 13년, 현장선 여전한 '진료 없는 투약'
형식적 유통 관리 의혹… 커지는 항생제 내성 확산 우려
"결국 국민 건강 위협… '원 헬스' 관점으로 접근해야"

돼지농장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사진=클립아트코리아
사람이 항생제 한 알을 사려면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 약국을 찾아야 한다. 항생제 오남용이 인류를 위협하는 '내성균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축산 현장은 다르다. 수의사처방제가 시행된 지 13년이 지났지만, 돼지 농장에서 사용되는 항생제의 80% 이상이 아무런 처방 없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동물용 항생제 관리 부실이 축산업 내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항생제 내성균은 동물과 환경, 사람 사이를 이동하며 확산할 수 있어 결국 국민 건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축산 현장의 항생제 오남용은 세균의 내성을 키워 결국 '치료 약이 듣지 않는' 인체 공중보건 위기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13년째 겉도는 수의사 처방제… '진료 없는 투약' 여전
정부는 2013년 동물용 의약품 오남용을 막기 위해 수의사 처방제를 도입했고, 2022년 11월부터는 모든 동물용 항생·항균제를 대상에 포함했다. 수의사가 동물을 직접 진료한 뒤 처방전을 발급해야만 약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그러나 현장 실효성을 둘러싼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한국돼지수의사회가 농림축산검역본부 의뢰로 수행한 '양돈 항생제 수의사 처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1월~6월까지 전국 돼지 농장 150개소에서 사용된 항생제 15만9465kg 중 수의사 처방이 확인된 물량은 17.6%(2만8162kg)에 그쳤다. 나머지 13만1303kg(82.4%)은 실제 처방 기록과 일치하지 않았다.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진료한 동물병원에서 곧장 항생제를 수급받는 농장 16곳을 제외한 134곳 가운데 102곳(76.1%)은 처방전을 받지 않거나, 받아도 판매업소에 제출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연구를 주도한 최종영 전 한국돼지수의사회 회장은 "기존에는 불법·가짜 처방이 문제라고 봤는데, 조사 결과 아예 처방전 자체가 확인되지 않는 사례가 예상보다 많았다"며 "유통 구조 전반에 대한 점검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농장주가 판매업소에 전화로 약품을 주문하면 약품이 먼저 공급되고, 처방전은 사후에 맞춰지거나 생략되는 사례가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수의사 처방제가 제도적으로는 존재하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관리 약사 있다지만… "형식적 운영 의혹"
이 같은 유통 관리 공백의 배경으로는 동물용 의약품 도매상의 관리 체계가 지목된다. 현행 약사법상 약사만 개설할 수 있고 소매 중심으로 운영되는 일반 동물약국과 달리, 동물용 의약품 도매상은 일반인도 개설할 수 있으며 도매와 소매를 모두 할 수 있다. 다만 반드시 관리 약사를 두고 의약품 보관·품질·유통 전반에 대한 실질적 관리 책임을 지도록 돼 있다.

그러나 업계 안팎에서는 실제 현장에서 약사가 상주하지 않고 면허만 등록된 채 운영되는, 이른바 '형식적 운영'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은퇴한 약사의 면허를 등록해 두고 실제 판매와 유통은 일반 직원이 맡거나, 약사가 월 1~2회만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지자체 점검 결과 지난해 관리약사를 두지 않은 업체는 없는 것으로 보고받았다"며 "모두 면허 등록은 확인됐다"고 말했다. 반면 최종영 전 회장은 "직접 현장을 가 봤을 때 약사가 없는 곳이 상당히 많았다"며 "서류상 등록과 실질적 관리 여부는 별개 문제"라고 했다.

기자가 무작위로 전국 동물용 의약품 도매업체 5곳에 전화해 '약사가 지금 있는지' 물었을 때, 2곳은 답변을 피했고 다른 2곳은 "지금은 없다"고 답했다. 1곳만 "있다"고 했다.

◇항생제 넘어선 유통 공백… 마약 통로 될까 우려
문제는 도매상이 관리하는 품목이 항생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호르몬제, 마취제, 진정제 등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전문의약품 상당수도 같은 유통망을 통해 공급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관리 공백이 항생제 오남용뿐 아니라 다른 고위험 약물 관리에도 사각지대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일부 동물용 진정제는 해외에서 오남용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바 있다. 국내에서는 합법적인 수의 임상 목적으로 사용되지만,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은 일부 품목의 경우 유통 관리가 허술할 경우 외부 유출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특정 성분 규제 여부를 넘어, 동물용 의약품 전반의 유통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관리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처방 확인과 판매 이력 관리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항생제 오남용뿐 아니라 다른 고위험 약물 관리에서도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항생제 내성, 결국 사람에게 돌아온다"… '원 헬스' 관리 시급
전문가들은 동물용 항생제 오남용이 결국 인체 공중보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감염내과 장희창 전문의는 "항생제 내성은 사람·동물·환경이 연결된 '원 헬스(One Health)'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동물에 사용된 항생제가 내성균과 내성 유전자를 만들어내고, 이들이 배설물과 토양·수계를 통해 확산한 뒤 식품 섭취나 접촉 등을 통해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먹는 항생제로 치료됐던 폐렴이나 요로감염 환자들이 이제는 내성 때문에 입원해 주사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치료 가능한 항생제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을 의료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우리나라는 항생제 사용량과 내성률 모두 주요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청의 '국가 항생제 사용량 및 내성률 다부문 통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체 항생제 사용량은 OECD 평균의 약 1.6배로 세계 최상위권 수준이다. 축산 분야 역시 심각하다. 국내 축산 항생제 판매량은 유럽 17개국 평균치를 크게 웃돌며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돼지 유래 대장균의 암피실린 내성률은 약 70%에 달해 주요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항생제 내성 문제는 한국만의 과제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항생제 내성을 세계 10대 공중보건 위협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고, 인체·동물·환경을 함께 관리하는 통합 감시체계 구축을 각국에 권고하고 있다.

◇"제도보다 감시"… 실질적 감독 체계 구축을
현재 동물용 의약품은 별도 독립법 없이 약사법 체계 안에서 관리된다. 업계에서는 산업 현실과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별도 법 제정이나 관리 체계 개편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최종영 전 회장은 "덴마크처럼 일정 규모 이상의 농장이 수의사와 의무 자문 계약을 맺고 항생제 사용을 책임 관리하는 모델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정부는 '제3차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을 수립하고, 동물용 항생제의 처방 관리 강화와 사용 기준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이번 조사 결과를 계기로 축산 현장의 항생제 적정 사용 연구와 모니터링을 강화할 계획"이라며 "판매·유통 실태 점검을 지속 추진하고 위반 사항이 확인될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엄정 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최근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협회, 수의사회에 처방 대상 동물용 의약품 관리 강화 조치를 통보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제도 개편보다 실질적인 감독 체계의 투명화가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자체에 분산된 단속 권한을 중앙 정부로 집중하고, 모든 유통 과정을 전산화하여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수의계 관계자는 "제도가 존재해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국민 건강 보호라는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며 "항생제 내성이라는 거대한 부메랑이 결국 사람에게 돌아오기 전에 관리 책임 구조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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