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영상 돌려보며 독학… 11년 ‘철봉 인생’의 시작

입력 2026.05.17 20:02

[이슈人터뷰]

대회에서의 이준명
이준명씨는 국내 맨몸운동 신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사진=로드오브더바 제공
한국 맨몸운동 크루 ‘저스트펀 크루’ 소속 이준명(29)씨는 국내 맨몸운동 신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고등학생 시절 해외 영상을 돌려보며 독학으로 기술을 익혔고, 현재는 국내 최초 맨몸운동 체육관 ‘프롬더스트릿’의 헤드 코치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맨몸운동 문화를 알리고 있다. 정보도, 훈련 환경도 부족했던 시절부터 11년째 철봉 위를 지켜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보도, 무대도 없던 시절
-처음 맨몸운동에 매료된 결정적 순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운동장 철봉에서 묘기를 부리는 아저씨를 봤다. 그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나도 저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중학교에 들어가고 바빠지며 자연스럽게 잊고 지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맨몸운동 영상을 보게 됐다. 그때 초등학생 시절 가슴 뛰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어느덧 11년째 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정보가 전무하던 초창기, 독학으로 원리를 깨친 과정은?
“지금이야 유튜브에 강의 영상이 넘쳐나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에는 맨몸운동 정보 자체가 거의 없었다. 센터도 없었고, 책이나 영상도 찾기 어려웠다. 결국 구글로 해외 자료를 찾아 번역기를 돌려가며 공부했다. 당시 내가 참고할 수 있었던 건 화면 속 사람의 움직임뿐이었다. 그때는 해부학적 지식도 없었기 때문에 어떤 근육을 쓰는지, 어떤 느낌으로 동작을 수행하는지 감으로 습득하고, 직접 따라 하며 익혔다. 막히는 구간이 있어도 물어볼 곳이 없으니 답답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계속 연습하다 보니 얼떨결에 기술이 성공하기도 했고, 그렇게 하나씩 익혀갔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동작을 혼자 성공시켰을 때의 성취감이 컸다. 지금 생각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고, 정체기에 포기할 수도 있었는데 운도 많이 따라줬던 것 같다.”

-무대조차 없어 사비로 대회를 열었다. 당시 심경은?
“2017년 열린 첫 대회 ‘로드 오브 더 바’는 맨몸운동을 알릴 무대조차 부족했던 시절, 직접 판을 만들어보자는 크루원들의 생각에서 출발했다. 당시에는 운영비를 지원해 줄 스폰서도 없어 멤버들이 사비를 모아 트로피와 메달까지 직접 제작했다. 사실 조금 건방진 말일 수 있지만, 그때는 내가 우승할 줄 알았다. ‘우리가 만든 트로피를 내가 다시 받는다’는 생각으로 출전했고 실제로 우승했다. 물론 1등을 하는 것도 좋지만, 사실 가장 즐거운 건 대회 그 순간 자체다. 메달보다 준비한 동작을 실수 없이 끝냈을 때의 성취감이나, 내 모든 걸 쏟아부을 때 터져 나오던 사람들의 환호가 좋아 지금까지 운동을 이어온 것 같다.”

-맨몸운동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내가 맨몸운동 대중화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철봉 공원을 조성하거나 대회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은 정한별 리더를 비롯한 저스트펀 크루 멤버들의 역할이 훨씬 컸다. 대신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SNS를 활용해 맨몸운동을 알리는 일이었다. 원래 페이스북과 유튜브는 취미처럼 운영하고 있었는데, 운동 영상을 하나씩 올리다 보니 알고리즘을 타면서 큰 반응을 얻었다. 그렇게 생긴 인지도와 영향력을 사람들이 맨몸운동이라는 문화를 접하게 만드는 창구로 활용했다. 근본적인 인프라는 멤버들이 만들고, 나는 내가 가진 이미지를 통해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내 몸을 완벽히 다루는 운동
-오랜 시간 맨몸운동을 해오며 느낀 이 운동만의 가장 큰 장점은?
“맨몸운동의 가장 큰 장점은 내 몸을 스스로 컨트롤하는 능력이 생긴다는 점이다. 단순히 근육의 크기를 키우는 것을 넘어 몸 전체의 협응 능력과 신체 인식 능력을 높여줄 수 있다. 운동할 때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몸이 좀 더 깨어있는 느낌이 들고, 이렇게 몸을 잘 다루게 되면 부상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몸을 움직이는 감각 자체가 좋아지다 보니 다른 운동을 배울 때도 동작 이해가 훨씬 빠르다. 실제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처음 집중적으로 했을 때도 처음 써보는 기구였지만 자극이 들어가는 지점을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맨몸운동은 ‘젊고 힘 좋은 사람들의 운동’이라는 인식이 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필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관절이 굳고 몸이 뻣뻣해지는데, 맨몸운동은 몸의 움직임을 계속 만들어주기 때문에 관절과 근육을 보다 유연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성들에게도 부족하기 쉬운 상체 근력을 효율적으로 기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난이도 조절이 자유로운 운동이라 꼭 운동을 잘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운동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수준에서 시작할 수 있다.”

-턱걸이는커녕 푸쉬업 한 개도 어려운 초보자라면, 어떤 동작부터 시작해야 하나?
▷높은 책상에서 하는 푸쉬업=
“푸쉬업을 못하는 사람에게 맨바닥에서, 무릎을 땅바닥에 대고 시작하라고 하지만, 사실 그것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높은 책상이나 의자 등을 짚고 상체를 비스듬하게 세운 상태에서 푸쉬업을 하면 몸에 들어가는 부하를 훨씬 줄일 수 있다. 자신의 수준에 맞게 높낮이를 조절하면서 천천히 난이도를 높여가면 된다.”

▷웅크린 할로우 바디=
“집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동작이다. 바닥에 누운 상태에서 등과 다리를 살짝 띄운 채 몸을 웅크리고 버티면 된다. 팔을 만세 자세로, 다리는 쭉 펴는 ‘정석’ 할로우 바디보다 쉬운 자세지만, 이 자세만 유지해도 복근에 상당한 자극이 오며 맨몸운동의 기초 코어 힘을 기를 수 있다. 운동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비교적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기초 동작이다.”

턱걸이하는 이준명
턱걸이를 하는 이준명씨/사진=최수연 기자
-단 하나의 맨몸운동만 해야 한다면 무엇을 추천하나?
“완벽한 자세를 전제로 한다면 턱걸이를 추천한다. 근력 향상은 물론 몸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데도 가장 효과적인 운동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초보자에게는 쉬운 동작이 아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해부학적으로는 상당히 복잡한 움직임이 들어간다. 그래서 바로 턱걸이를 하기보다는 먼저 매달리기부터 익히며 몸을 적응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턱걸이 하나만 제대로 할 수 있어도 몸을 다루는 능력치가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진다.”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위험한 실수는 무엇인가?
“단기간에 동작을 성공시키려고 단계를 건너뛰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코치로서 실제로 부상을 입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잘못된 자세로 무리하게 운동을 반복한 경우가 많았다. 신체 단련과 자세 숙지가 부족한 상태에서 난이도만 높이면 어깨나 손목, 팔꿈치 부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초창기에는 지식 없이 하루에 턱걸이와 푸쉬업을 각각 400개씩 채우는 무모한 훈련을 했었다. 당시에는 운 좋게 몸이 버텨줘서 기초를 다질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권하지 않는다. 성공을 서두르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성공에 집착하기보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횟수와 난이도를 찾고, 한 단계에 충분히 오래 머물며 자세를 몸에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본인도 실제로 큰 부상을 겪은 적 있다고 들었다. 재활과 복귀 과정에서 철저히 지킨 원칙이 있다면?
“과거 평행봉에서 ‘프론트 플립(제자리 앞덤블링)’ 기술 연습을 하다가 손등뼈가 부러진 적이 있다. 운동이 끝난 뒤 몸이 많이 지쳐 있었는데도 ‘왠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동작을 시도했다가 다쳤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도 컸지만, 결국 중요한 건 부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빨리 받아들이고, 그동안 운동에만 몰두하느라 놓쳤던 일상을 즐겼다. 많은 사람이 조금 괜찮아졌다고 느끼면 다시 무리하게 운동하다 같은 부상을 반복하고, 치료 기간도 더 길어지는 실수를 한다. 부상은 처음이었지만 그런 사례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주관적인 느낌으로 복귀 여부를 판단하지 않으려 했다. 100% 회복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충분히 휴식을 취했고, 엑스레이를 통해 뼈가 완전히 아물었는지 확인한 뒤 의료진의 말을 듣고 나서야 훈련을 재개했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지키는 루틴은?
“준비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우선 동적 스트레칭으로 관절과 근육을 충분히 열을 낸 뒤, 가벼운 턱걸이나 물구나무서기 같은 동작으로 그날의 몸 상태를 세밀하게 체크한다. 특정 부위가 뻐근하거나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본 운동에서 무리하지 않는다. 자신의 가동 범위와 유연성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체적 한계를 벗어난 동작은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바닥에서 푸쉬업이나 물구나무를 할 경우 손목이 과하게 꺾여 부담이 커질 수 있어, 푸쉬업 바나 보호대 같은 장비를 활용해 물리적으로 관절 부담을 줄이기도 한다.”

◇철봉이 일상이 되는 대한민국을 꿈꾸며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목표 동작이 있나?
“지금은 예전만큼 새로운 기술을 성공시키겠다는 욕심은 많이 내려놓은 상태다. 물론 여전히 맨몸운동을 좋아하고 즐기지만, 10년 전처럼 기술 정복 자체에 대한 열정이나 의지는 뜨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새로운 동작을 성공시키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목표가 생겼다. 그동안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쌓아온 경험과 정보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유튜브와 SNS, 코칭을 통해 올바른 운동 지식과 재미있는 콘텐츠를 꾸준히 공유하고 싶다.”

-꿈꾸고 있는 미래의 한국 맨몸운동 문화는 어떤 모습인가?
“몇 년 전 저스트펀 크루 멤버들과 스페인을 방문했을 때 본 풍경이 기억에 남는다. 길거리 한복판 철봉 공원에서 남자들은 상의를 탈의하고, 여자들은 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자연스럽게 머슬업이나 물구나무 같은 맨몸운동 동작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도 신기하게 쳐다보지 않았다. 그들에게 철봉 운동은 그저 공원의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철봉에서 묘기를 부리면 신기해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학교나 공원 철봉에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맨몸운동을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입문을 주저하거나 포기를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조언한다면?
“내가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정보를 얻을 곳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맨몸운동을 접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유튜브나 전문 센터, 서적을 통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 너무 무거운 마음가짐보다는 가볍고 편한 취미생활 하나를 더한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해 보길 권하고 싶다.

이미 시작했지만, 벽에 부딪혀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내가 처음에 왜 이 운동을 시작했는지를 다시 떠올려봤으면 좋겠다. 특정 기술을 성공시키고 싶었든, 단순히 재미있어서 시작했든 그 마음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잘 안 풀리는 순간도 사실은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과정의 일부다. 자신의 속도대로 꾸준히 즐기다 보면 어느 순간 목표했던 동작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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