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연명치료 원치 않아도 병원행·콧줄 사용… “문서 중심 행정 절차가 원인”

입력 2026.05.14 18:00
환자 앞에서 문서를 작성하는 의료진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사진=클립아트코리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건수가 300만건을 넘었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선 환자의 뜻보다 ‘법적 안전’과 ‘병원 시스템’이 우선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된 지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환자들은 원치 않는 중환자실 치료와 강제적 연명치료를 경험하고 있었다.

14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와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삶의 마지막 단계, 자기결정과 최선의 의료’를 주제로 제5회 미디어포럼을 공동 개최했다. 전문가들은 말기 환자가 연명의료 전체 혹은 일부를 거부하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통합돌봄 시행에 맞춰 연명의료 결정 이후 살던 곳에서 임종을 지원하는 지역사회 중심의 연속적 돌봄이 가능하도록 현행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연명치료 거부해도 가족이 요구해 콧줄 사용
첫 발제에 나선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김장한 교수는 지난해 유가족 인터뷰 50여 건을 바탕으로 연명의료 결정 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장의 갈등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사람은 매년 늘고 있지만 실제로 환자 의사가 지켜지는 비율은 매우 낮다”며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상당수 환자가 자신의 뜻과 다른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갈등은 인공호흡기 착용과 중단 과정에서 발생했다. 김장한 교수에 따르면 말기 환자가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 이송됐을 때 의료진은 인공호흡기 착용을 ‘의무적 치료’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환자나 가족은 이를 원치 않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실제 소개된 사례 중에는 ‘기도삽관을 하지 않으면 입원을 받아줄 수 없다’는 설명을 듣고 결국 원치 않는 치료를 선택한 경우도 있었다. 또 다른 병원에서는 삽관 대신 산소치료와 항생제만으로 치료를 진행해 환자가 비교적 편안한 상태로 시간을 보낸 상반된 사례도 있었다. 김 교수는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의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치료 방식이 달라지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강제 급식 문제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현재 법은 영양 공급을 중단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콧줄(비위관)을 통한 강제 급식 여부를 두고 환자·가족·의료진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환자가 콧줄 삽입을 거부했는데도 가족 동의로 시행되는 경우가 있다”며 “환자가 이를 빼려고 하면 손발을 묶거나 진정제를 사용하는 사례까지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어 “입으로 음식을 먹는 돌봄과 인공적 영양 공급을 같은 개념으로 볼 수는 없다”며 “돌봄과 연명의료를 구분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현행 제도가 ‘말기’와 ‘임종 과정’을 지나치게 경직되게 구분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현재 법은 임종 과정 환자에게만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해석되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말기 환자 단계부터 환자의 고통과 의사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는 것이다. 김장한 교수는 “말기 환자는 원칙적으로 치료를 시행하되 예외적으로 중단을 인정하고, 임종기 환자는 원칙적으로 중단하되 예외적으로 시행하는 방식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책임 회피하려 응급실 이송하기도
이어 발제를 맡은 인천성모병원 김대균 권역호스피스센터장은 재택의료 현장에서 겪는 현실적 한계를 짚었다. 김 교수가 소개한 사례 속 83세 여성 환자는 반복된 폐렴과 중환자실 치료 끝에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죽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재택의료팀은 법적 책임과 임종기 판단의 어려움 때문에 결국 응급실 이송을 권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
인천성모병원 김대균 권역호스피스센터장​./사진=오상훈 기자
김대균 센터장은 “재택의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조차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다”며 “집에서 환자가 사망하면 ‘왜 병원에 보내지 않았느냐’는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 중심 의료와 재택 돌봄의 관점 차이도 강조했다. 병원은 원인 규명과 치료 가능성을 우선하지만, 재택의료는 환자의 삶의 질과 생애 말기 의사를 더 중요하게 본다는 설명이다. 김 센터장은 “지금 제도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보다 문서 작성과 행정 절차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대부분의 의료기관에서 연명의료 관련 서류는 임종 직전 5~10분 만에 작성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연명의료 중단은 돌봄의 중단이 아니라 돌봄 강화의 전환점이어야 한다”며 “통증 조절과 호흡곤란 완화, 가족 교육 같은 완화의료 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환자 의사를 반영한 ‘사전돌봄계획’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단순히 심폐소생술 여부를 선택하는 수준을 넘어, 환자가 어떤 치료와 돌봄을 원하는지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환자마다 원하는 삶의 마지막은 모두 다르다”며 “누군가는 끝까지 적극적 영양 공급을 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검사조차 거부한다. 법으로 일괄 규정하기보다 의료진이 환자의 가치와 삶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말기·임종 과정
말기 환자는 수개월 내 사망이 예상되지만 치료와 회복 가능성이 일부 남아 있는 상태인 반면, 임종 과정 환자는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고 죽음이 임박한 상태다. 다만 의료 현장에서 말기와 임종기 판단은 의사나 병원에 따라 달라지고, 환자가 말기 단계부터 연명치료 중단을 원해도 실제로는 적용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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