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마주친 적 없는데… 대문 꽁꽁 닫아도, 감염병 ‘여기’로 퍼진다

입력 2026.05.14 23:40
환풍구
연구팀은 집단 감염의 가장 유력한 경로로 화장실 수직 환기통을 지목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이웃집 감염자와 마주치지 않아도 건물 내 공용 환기구를 통해 홍역, 인플루엔자, 코로나19 등 공기 매개 질환이 전파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문을 닫고 실내에 머물더라도 건물 환기 시스템 구조에 따라 감염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콜로라도대 볼더캠퍼스 기계공학과 셸리 밀러 명예교수팀은 스페인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 사례를 분석했다. 해당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최근 게재됐다.

연구팀은 2020년 6월 스페인 산탄데르의 7층 건물에서 발생한 사례에 주목했다. 당시 3층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후, 수직으로 위치한 4개 가구에서 15명이 연달아 감염됐다. 주민들은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를 준수했음에도 감염을 피하지 못했다.

연구팀이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의 이산화탄소 수치를 측정한 결과, 거주자가 없음에도 높은 수치가 검출됐다. 이웃집에서 내뱉은 공기가 환기구를 타고 집 안으로 흘러 들어온 것이다. 별도의 팬 없이 자연 대류를 이용하는 환기 시스템은 날씨나 기온 차이에 따라 공기를 외부로 내보내지 못하고 실내로 역류시킬 수 있다. 특히 주방에서 환기 후드를 사용하면 집 안 기압이 낮아지면서, 화장실 환기구를 통해 오염된 공기를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집단 감염의 가장 유력한 경로로 화장실 수직 환기통을 지목했다. 셸리 밀러 교수는 "내 집 문을 닫는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며, 환기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면 멀리 떨어진 이웃으로부터도 병이 옮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위험은 아파트뿐 아니라 호텔, 사무실, 크루즈선 등 환기 시설을 공유하는 다양한 건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다.

셸리 밀러 교수는 "오래된 건물의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건축 표준을 개선하고 실내 공기 질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