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법 개정으로 임신·출산한 전공의의 근무시간을 줄이고 야간·휴일 근무를 제한하는 ‘모성 보호’ 조항이 강화된 가운데, 현장에서는 수련 결손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임신·출산에 따른 전공의들의 수련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관련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임신·출산 時 야간 근무 제한
지난 2월부터 시행된 전공의법 개정안에 따라 전공의 연속 근무시간은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주당 수련시간은 최대 80시간에서 72시간으로 단축됐다. 장시간 근무로 인한 건강권 침해와 의료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모성 보호 조항도 대폭 강화됐다. 임신·출산한 전공의는 90일 출산휴가 외에도 하루 2시간 단축 근무와 근무시간 조정이 가능하며, 야간·휴일 근무가 제한된다. 임신 중이거나 산후 1년 이내 전공의에 대해서는 심야 근무도 제한된다.
현장에서는 제도 시행 이후 일정 부분 변화가 감지된다. 서울의 한 수련병원 3년차 레지던트 A씨는 “과거에는 근로기준법상 보장된 권리도 제대로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며 “개정안 적용 이후 병원들이 모성 보호 규정을 이전보다 지키려는 분위기는 분명히 생겼다”고 말했다.
◇임상 경험 부족 우려… “전문성 담보 방안 필요”
문제는 줄어든 수련 시간을 보완할 방법이다. 대한외과여자의사회가 개정안을 적용해 여성 전공의가 수련 기간 중 임신·출산을 겪는 상황을 가정해 계산한 결과, 최대 4000시간(약 50주)에 가까운 수련 결손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신·출산을 경험한 전공의는 3년제 과목(외과·내과·소아청소년과)에서 약 32%, 4년제 과목은 약 24% 수준의 수련 시간이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개정안은 이처럼 출산 휴가와 단축 근무 등으로 발생하는 공백에 대해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기준을 정하도록 했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규정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수련 현장을 책임지는 교수들은 실질적인 수련 시간 감소가 의료 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B 교수는 “외과 분야는 이론적 지식만큼이나 임상 경험과 케이스 접촉 횟수가 전문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며 “출산 휴가와 단축 근무로 발생하는 공백에 대해 별다른 보완 없이 수련 기간으로 인정하는 것은 전문의 자격의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의료 선진국의 사례처럼 일정 기준 이상의 휴직 기간을 ‘추가 수련’으로 보충하는 방안이 해법으로 거론된다. 예를 들어 영국은 연가와 학회 참석을 제외한 14일 이상의 결석을 ‘수련 외 시간(TOOT)’으로 집계하고, 임신·출산 휴가로 생긴 공백만큼 수련 기간을 연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본 역시 일정 기간까지는 수련 연장 없이 휴직이 가능하지만, 필수 증례 수를 채우지 못할 경우 수련 기간을 연장하는 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전공의들 “물리적 시간보다 교육 효율이 본질”
반면 전공의들은 수련의 질이 단순히 ‘근무 시간’에 비례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 환경이 변화했음에도 여전히 당직 횟수나 근무시간을 전문성의 척도로 삼는 인식이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정정일 공보이사는 “단순히 수련 시간을 늘리는 것보다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는 ‘보호수련 시간(Protected Time)’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본질이다”고 말했다.
보호수련 시간은 전공의가 진료와 행정 업무에서 벗어나 교육·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장된 시간을 의미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 3월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공의의 보호수련 시간은 평균 주 4.1시간에 불과했으며, 응답자의 28%는 해당 시간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이는 전공의들이 여전히 ‘교육’보다 ‘노동’에 치우친 환경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전공의 측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역량 중심 평가의 표준화’를 제시한다. 전문의가 갖춰야 할 의학적 지식과 임상 술기, 태도 등을 구체적인 지표로 설정하고 이를 모든 수련기관에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이사는 “전문 학회별로 최소 환자 수나 검사 건수 기준이 존재하지만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며 “역량 평가 기준을 명확히 하고 병원 간 편차를 줄일 수 있는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모성 보호 제도가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동료 전공의에게 업무가 전가되는 구조 개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 이사는 “모성 보호로 인한 공백이 남은 인원에게 부담으로 전가되는 구조는 갈등의 원인이 된다”며 “대체 인력 확보를 위한 재정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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