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회원 오자 ‘점자기’ 산 트레이너… “이건 내가 해야 할 일”

입력 2026.05.03 20:30

[이슈人터뷰]

정지우
정지우씨는 사비로 휴대용 점자기를 구매해 점자스티커를 헬스장에 부착했다.​/사진=최수연 기자
최근 SNS상에서 헬스장 기구마다 직접 만든 점자 스티커를 붙이는 한 트레이너의 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영상의 주인공은 서울특별시 구로구의 한 헬스장에서 근무하는 정지우(28)씨다. 그는 시각장애인 회원 A씨가 헬스장에 등록하자 사비로 휴대용 점자기 ‘볼로기’를 구매해 직접 점자 스티커를 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해 보였을 이 행동은 사실 정씨가 현장에서 매일 실천해 온 일상의 한 단면일 뿐이다. 그는 올해로 2년째 농아노인센터에 출강해 어르신들에게 운동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농인들과 더 깊게 소통하기 위해 직접 수어까지 배워 지도한다는 정씨. 단순히 운동 동작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 모든 이들의 운동 문턱을 낮추고 있는 그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 처음 점자기를 사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은 언제였나?
“시각장애인 회원 A씨가 내가 일하는 헬스장에 등록한 것을 봤을 때다. 문득 ‘사설 헬스장에는 보통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구비돼 있지 않다 보니 이용할 때 위험성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시설에는 법적으로 점자 블록이 있지만 헬스장에는 그런 것도 없고, 센터를 한 바퀴 둘러보니 기구들이 워낙 크고 사이 공간이 좁아 다치기 수쉬운 환경이었다. 최소한 점자라도 있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곧장 인터넷 쇼핑몰에 관련 상품을 검색했고, ‘볼로기’라는 휴대용 점자 인쇄기를 발견했다. 제품 설명을 보니 처음 하는 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비로 바로 구매했다.”

- 작업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일반적인 수동 점자기는 종이 뒷면을 눌러서 앞면으로 점이 튀어나오게 만드는 방식이라 오른쪽에서 왼쪽, 즉 역순으로 나열하는 방식이라 까다롭다. 내가 산 제품은 위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도구를 활용하기 때문에 역순으로 고민하는 번거로움은 덜었다. 사실 사용법보다, 점자 규칙 자체가 워낙 생소해 이를 익히는 과정이 큰 도전이었다. 자음과 받침의 표기가 다르고, 모음의 발성에 ‘ㅇ’이 들어가기에 자음 ‘ㅇ’은 사용하지 않는 등 규칙이 다양했다. 처음에는 직접 공부하고 여러 번 버려가며 만들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지금은 숙달돼서 2분도 안 걸린다. 일과 병행하며 틈틈이 작업을 이어온 결과, 현재 헬스장에 있는 머신 대부분의 점자 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작업을 하다 보면 보완할 점들이 계속 생각나는데, 앞으로는 덤벨마다 무게(kg)를 숫자로 표시하는 작업도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다.”

- 점자를 붙인 후, A씨의 반응은 어땠나?
“어떻게 만들었냐고 신기해하며 정말 좋아하셨다. 직접 사비로 제작했다고 하니 본인도 이런 휴대용 인쇄기가 있는 줄 몰랐다며 너무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다. 지금도 기구에 점자를 새로 붙일 때마다 A씨에게 매번 확인받으며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사설 헬스장에서 이런 배려를 받아본 게 처음이라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 나도 보람을 느낀다.” 

점자 스티커
헬스장 곳곳에 부착된 점자 스티커/사진=최수연 기자
-농아노인복지센터에서도 강사로 활동 중이라고 들었다. 직접 수어까지 배운 이유는?
“운동을 하다 문득 ‘왜 사설 헬스장에는 농인 회원들이 없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신체적으로는 충분히 운동을 즐길 수 있지만, 결국 의사소통 문제로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내가 직접 농인의 언어인 ‘수어’를 배워서 문턱을 낮춰보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지자체 특수 교육원에 다니고, 재능 교환도 하면서 배우다 보니 농인들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게 됐다. 사실 농아노인복지센터라고 하면 흔히 우리가 무조건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지켜본 어르신들은 매사에 의지가 넘치고 무엇이든 스스로 해내려 노력한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그분들을 단순히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봤던 내 시선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깨닫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

-SNS에 ‘수어 사전’ 릴스 영상도 올리고 있는데. 어떤 내용인가?
”농인 회원들을 위한 내용이라기보다 헬스장 직원이 익히면 좋을 만한 표현을 담고 있다. 바닥이 미끄러울 때 주의를 부탁드리는 법이나, 상담 시 ‘예약하셨나요?’ 같은 쉬운 말들이다. 완벽히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인사라도 수어로 건넬 수 있다면 농인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은 훨씬 줄어든다. 접근성을 좀 더 높이기 위해서 시작된 영상이었다. 실제로 복지센터에서 수어로 인사하니 어르신들이 ‘체육 강사 중에 수어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정말 기뻐하셨다. 통역사가 옆에서 도와준다고 해서 내가 직접 수어로 마음을 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강사 본인이 직접 소통하려는 노력이 접근성을 높이는 핵심이다.”

-농인 회원을 가르칠 때 특히 신경 쓰는 포인트가 있다면?
”이전에 관련 자료를 찾아봤을 때는 그렇지 않다고 들었으나, 실제로 강의하고 주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신체 균형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이 약화돼 밸런스 잡기를 힘들어하는 농인이 많았다. 비장애인을 포함해 고령층에게 가장 위험한 부상이 낙상이다. 그래서 낙상 방지를 위해 하체 위주의 균형 운동을 최우선 순위에 둔다.

또 정서적으로는 부족한 실력일지라도 최대한 수어로 대화하며 교감하려 노력한다. 감각의 예민함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근육이 성장하는 원리 자체는 인간이라는 전제 아래 동일하기에 지도 방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소통 방식에 차이가 하나 있다. 청인과는 운동 중간에 입으로 말하며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지만, 농인과는 운동 중에 수어를 사용하며 소통하기에 무리가 있다. 그래서 자세 시범을 평소보다 더 반복하고, 운동 후에는 사진이나 영상에 선을 그어가며 보완점을 시각적으로 설명한다.”

-현장에서 보기에 장애인 회원들이 헬스장 문턱을 넘기까지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사설 헬스장은 장애인 편의 시설이 부족해 다칠 위험이 크고, 시각장애인의 경우 운동 중 지팡이나 몸으로 다른 회원을 쳐 의도치 않은 불편을 주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눈치를 보게 된다. 운영자 입장에서도 현실적인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장애인 회원이 방문하면 안전을 위해 트레이너가 일대일로 전담 케어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기존에 처리해야 할 센터의 다른 업무들을 아예 수행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용 중 부상이 발생했을 때 따르는 법적 책임과 문제들을 운영자 입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결국 이런 물리적, 심리적 부담들이 장애인이 사설 헬스장을 이용하는 데 큰 장벽이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동료 트레이너나 운영자들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배려는?
“‘내가 상대의 입장에서 이용한다면 무엇이 필요할까’라고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는 것이 가장 쉬운 배려의 시작이다. 점자 하나로 모든 불편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실천해야 한다. 수어로 인사 한마디 건네는 작은 노력만으로도 심리적 압박은 훨씬 줄어든다.”

-궁극적으로 꿈꾸는 ‘배리어 프리’ 운동 공간의 모습은?
“만약 나의 센터를 창업한다면, 궁극적으로 누구나 편하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불편함 없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수어를 열심히 배우는 이유도 나중에 농인들을 위한 교육 출강을 나가거나, 직접 통역을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 트레이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시각장애인 회원이 오셨을 때 천천히 응대하고, 농인 회원과 수어로 소통하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노력이 결국 체육 업계의 가치를 높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운동을 망설이고 있는 예비 회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주식에 ‘복리의 마법’이 있듯 운동도 마찬가지다. 당장 변화가 보이지 않아도 꾸준함이 쌓여 미래의 결과물을 완성한다. 특히 장애인 예비 회원들에게는 너무 큰 부담 갖지 말고 한 번만 용기 내어 찾아와 달라고 전하고 싶다. 항상 고민하고 노력하는 누군가가 분명히 현장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올해로 2년째 농아노인복지센터에 출강하고 있는데, 최근 장애인 복지 예산이 줄어들며 운동 프로그램이 중단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설 시설 이용이 어려운 고령 장애인들에게 공공기관은 거의 유일한 운동 통로인데, 이마저도 기회가 줄어드는 현실이 안타깝다. 예산 삭감의 피해는 복지 센터 근무자들에게, 또 결국 장애인들에게 돌아간다. 이들이 ‘건강할 권리’를 잃지 않도록 사회적인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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