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 박사 출신 웹툰 작가로 활동하던 이대양(41·경기도 수원시)씨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던 중 뜻밖의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작가로서 데뷔를 앞둔 시점, 혈액암이라는 벽에 부딪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좋아’라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치료에 임했고, 결국 암을 이겨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혈액암 4기를 극복한 이대양 작가./사진=김서희 기자
정식 연재 제안 뒤 받은 암 진단 이대양 작가가 처음 몸에 이상을 느낀 건 2019년 7월입니다. 몇 달간 피로와 몸살기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학교 계약직으로 일하고 밤에는 웹툰을 그리는 생활을 5개월간 지속했기에 단순한 번아웃 증후군으로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새벽, 구토와 설사 증세가 심각해져 응급실에 내원했습니다. 정밀 검사 결과, 혈액암 4기였습니다.
이대양 작가는 암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직 젊은 나이이기도 하며 암 가족력도 없어, 암이 생소하기만 했습니다. 무엇보다 만화가로 활동 중인 이 작가가 네이버 웹툰 정식 연재를 제안을 받아 새로운 커리어로 시작하려는 타이밍에 암 진단을 받아 억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작가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오진일거라며 현실을 부정했다가’ ‘왜 하필 나일까’라는 생각으로 울분에 찬 나날을 보냈었다”고 말했습니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던 이 작가를 잘 이끌어 준 건 역시나 가족이었습니다. 그 당시 다섯 살이던 어린 아들과 아내를 생각하며 치료에 임했습니다.
혈액암은 혈액을 구성하는 성분에 생긴 암을 말합니다. 명확한 발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방사선 노출 ▲화학제품 ▲흡연 ▲바이러스 감염 등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서울대 에너지시스템 공학 박사 출신인 이대양 작가는 웹툰 작가로 활동하기 전 에너지 자원 실험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마스크 착용을 하지만 몇 년간 약품과 같은 발암물질에 노출된 게 암 발병 위험을 높였을 것 같다고 이 작가는 말합니다. 치료는 대부분 항암화학치료로 이뤄집니다.
암 진단을 받은 지 한 달 뒤인 8월, 항암 치료를 6차례, 2년 6개월간 받았습니다. 치료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부작용보다 힘들었던 ‘불확실성’ 이대양 작가가 암 투병 과정에서 견디기 가장 힘들었던 건 치료로 인한 고통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던 불확실성이었습니다. 누구나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막상 자신의 일로 닥치면 전혀 다른 문제였다며 “특히 5년, 10년 생존율 같은 수치들을 직접 마주했을 때 느낀 막막함은 쉽게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정확한 혈액암 진단을 받기까지 몇 주가 걸리기도 하며 암 기수도 달라졌던 이 작가는 “병원에 갈 때마다 ‘이번엔 또 무슨 말을 들을까”라는 생각으로 매주 병원에 가는 게 무서웠다고 합니다. 치료가 시작된 후에도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한 3개월 후부터 치료 효과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치료 효과가 나오기 시작한 전환점부터 해 판정을 받으면서 조금씩 불안함이 사라지며 희망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불안정한 심리를 붙잡아준 것은 웹툰이었습니다. 이대양 작가는 암 진단 전까지 공학박사 아빠와 산부인과 의사인 엄마가 육아를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풀어낸 네이버 인기 웹툰 ‘닥터앤닥터 육아일기’의 저자였습니다. 암 진단 직전에 받은 웹툰 정식 연재를 포기하라는 주변의 권유가 있었지만 이 작가는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겠다 다짐하며 정식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이 작가는 “이걸 열심히 그리면 나중에 내가 떠나도 이 작품은 남지 않을까, 아들에게 나에 대한 기록을 남겨줄 수 있지 않겠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이 작가는 항암 치료를 받는 2년 6개월동안 지각, 펑크, 휴재 하나 없이 웹툰을 완결했습니다. 4주 또는 8주 간격으로 받는 항암 치료 후 1주일을 제외한 남은 요일에는 웹툰에 집중하며 오히려 암을 이겨내는 동력이 됐다고 이 작가는 말했습니다. 원활한 웹툰 연재를 위해 스트레스를 최소한으로 받으며 잘 챙겨 먹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암으로 깨우친 삶의 진정한 의미 이대양 작가는 암을 이겨내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흔히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 신용을 잃으면 많이 잃은 것,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말처럼, 건강의 의미를 몸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건강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그는 ‘건강하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실감했다고 합니다. 특히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없고, 아이가 아프지 않게 잘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 일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소아암 환아들과 인연을 맺게 된 그는 병원학교에서 만난 부모들을 통해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부모들의 바람은 단 하나, ‘아이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보며 이미 자신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며,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조건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작가는 “돌이켜보면, 암을 이겨내는 시간은 제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 계기였다”며 “잃은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2024년 7월, 혈액암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매년 1회씩 정기적인 추적검사를 받고 있으며 재발, 전이 없이 건강한 상태입니다.
<이대양 작가>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밥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매일 20~30분 산책을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마음가짐을 가지며 발레와 달리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더 풍요롭고 행복한 인생이 됐습니다.”
-암을 이겨내게 해준 원동력은? “암 환자로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전 암을 잊고 지내는 시간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을 나오는 즉시 암 관련 생각이나 걱정은 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암 환자가 아닌 일반인처럼 건강한 일상을 보내는 하루가 쌓여 1주일, 몇 달이 되고 결국엔 암 경험자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제 마음을 헤아려주고 신경 써준 제 아내도 암을 이겨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암 진단 직후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줄곧 제 곁에서 말동무가 돼줬습니다. 또 항암제 부작용으로 식욕이 떨어졌을 때 당기는 음식을 챙겨 줬습니다. 덕분에 암을 이겨내는 힘을 기르며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출 수 있게 됐습니다.”
-암 진단 전후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암을 극복하면서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암 진단 전에는 ‘젊음’을 위안 삼아 건강관리에 소홀했습니다. 웹툰 마감을 위해 밤을 꼬박 새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육아와 직장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가공식품으로 끼니를 간편하게 해결하고 운동에는 소홀했습니다. 이제는 매일 규칙적으로 밥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합니다. 최대한 12시 전에는 취침해 7시간의 수면시간을 지키려고 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게 된다는 걸 알기에, 건강한 하루를 보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암 진단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최대한 하지 않으며 ‘기본’에 충실 하고자 합니다. 주변에서 다양한 건강기능식품이나 약을 권유하곤 합니다. 마음은 고맙지만 부작용이 걱정돼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말에 현혹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확실한 기준을 갖고 검증된 정보와 주치의 말씀만 집중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만화로 보는 3분 과학’을 4월초에 출간했습니다. 과학의 힘을 믿는 공학 박사로서, 더 많은 사람들과 과학의 가치와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책 출간에 이어,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과 소통할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웹 소설과 토크쇼 등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를 통해 과학을 보다 친근하게 전달해보고자 합니다.
또한 봄을 맞아 집을 손보는 데에도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오래된 집이다 보니 고칠 곳이 많지만, 아내와 아들과 함께 하나씩 꾸며가는 과정 자체가 소중한 추억이 되고 있습니다. 그 시간들이 무엇보다 큰 즐거움으로 남습니다.”
-지금도 암과 싸우고 있는 분들께 한마디. “암 진단 직후에는 다양한 감정에 휘말리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도 절망도 하고 화도 내고 우울해하는 시간을 겪었습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인 겁니다. 잘 먹고 잘 자는 게 중요합니다. 의료진 말을 잘 따르고 열심히 치료를 받으세요. 조급해 하지 마세요. 자신을 믿으며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저처럼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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