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는 '의료기기'와 '의료기술', 무엇이 다를까

입력 2026.04.15 17:43
의료기기와 의료기술 비교표
그래픽=김경아
의료기기 시장에 뛰어든 창업자나 연구자에게 보건당국의 인허가 절차는 거대한 미로와 같다. 특히 이름이 비슷한 여러 제도와 주관 부처도 제각각이라 현장에서 혼선을 빚기 마련이다. 의료기기가 개발 성공을 넘어 실제 시장 안착까지 이어지려면 제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의료기기와 의료기술의 개념 차이부터 수가와 직결되는 신의료기술평가제도 흐름을 짚어본다.

의료기기는 사람이나 동물에게 사용하는 기구·장치·소프트웨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의료기기법은 질병의 진단·치료·예방 또는 신체 구조와 기능 검사에 사용되는 물건을 의료기기로 규정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체 위해도에 따라 이를 1~4등급으로 분류하고 안전성과 성능을 검증해 판매를 허가한다.

기술 발전과 함께 ‘혁신의료기기’ 개념도 도입됐다. 식약처는 2020년 5월 제도 시행 이후 기존 의료기기 대비 안전성과 유효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거나 개선 가능성이 높은 의료기기를 별도로 지정하고 있다.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되면 단계별 심사, 우선 심사 등 인허가 과정에서 특례를 적용받는다. 첨단기술군, 의료혁신군, 기술혁신군, 공익의료군 등 4개 범주로 나뉘며 2026년 4월 기준 혁신의료기기는 총 127개다.

의료기기 허가는 어디까지나 물건에 대한 승인일 뿐, 실제 의료현장에서 사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의료기술’이다. 쉽게 말해 의료기기가 ‘도구’라면 의료기술은 의사가 이 도구를 활용해 환자를 치료하는 ‘행위’다. 아무리 우수한 의료기기라도 이를 사용해 제공하는 기술이 건강보험 체계에서 급여(수가) 항목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임상 현장 확산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의료기기는 공급할 수 있어도 의사가 행위료를 청구할 수 없다면 비급여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행위 가치 검증하는 핵심 관문 ‘신의료기술평가’
의료기기가 물건에 대한 검증(안전성·성능)이라면 의료기술은 행위 검증(임상적 유효성)에 무게를 둔다. 의료행위 가치를 검증하는 핵심 관문인 ‘신의료기술평가’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주관하는 이 평가에서는 특정 의료기기를 활용한 행위가 실제 환자 치료 결과를 개선하는지를 문헌 근거를 중심으로 평가한다.

현재 신의료기술평가는 기술 특성에 따라 네 가지 트랙으로 운영된다. ▲첫째, 일반 신의료기술평가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으로 충분한 문헌 근거를 바탕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면 신의료기술로 인정된다. ▲둘째, 혁신의료기술평가는 잠재 가치가 높지만 근거가 부족한 기술에 적용된다. 조건부로 조기 도입을 허용하고 3~5년간 임상 데이터를 축적한 뒤 재평가한다. ▲셋째, 제한적 의료기술은 연구 단계 기술로 분류되지만 대체 수단이 없거나 시급성이 인정될 경우 특정 기관에서 한시적 사용을 허용한다. ▲넷째,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제도는 식약처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 중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평가 기간 비급여로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경로다.

과거에는 의료기기 지정부터 기술 평가까지 최대 490일이 소요됐지만 정부가 통합심사와 즉시진입 제도 도입으로 기간이 크게 단축됐다. 특히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는 식약처, 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동시에 심사를 진행해 시장 진입 기간을 80일 이내로 줄인다. 2026년 1월 26일부터 시행된 시장 즉시진입 의료기술 제도는 문턱을 한층 더 낮췄다. 식약처 허가 단계에서 강화된 임상평가를 통과하면 별도 신의료기술평가 없이도 최대 3년간 비급여 사용이 가능하다. 동시에 건강보험 등재 절차를 병행할 수 있어 현장 적용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다만 진입이 빨라진 만큼 사후 책임은 더 무거워졌다. 기업은 비급여 사용 기간 실제 임상 데이터(RWE)를 축적해 기술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환자 부담이 과도하거나 안전성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정부는 직권으로 평가를 재개하거나 시장 퇴출 조치를 내릴 수 있다. 결국 시장 진입의 문은 넓어졌지만 실사용 데이터를 통한 엄격한 검증을 통과해야만 진정한 시장 안착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