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300번 넘게 가면 90% 본인 부담”… ‘의료 쇼핑’ 잡힐까

입력 2026.04.10 11:00

내년부터 외래 이용 300회 넘으면 본인 부담 90%
기존에는 연 365회 기준
극단적 이용 줄였지만 '넓은 고빈도층' 여전
전문가들 "횟수 규제만으로는 한계, 구조 개편 필요"

환자들
한 대학병원이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023년, 평소 관절 통증을 앓던 70대 여성 A씨는 1년 동안 1216회의 물리치료를 받았다. 하루 평균 네 곳 이상의 병원을 찾은 셈이다. 관절염을 앓는 50대 남성 B씨 역시 1년 중 363일 병원을 방문해 해열진통소염제 주사를 2249번 맞았다. 하루 평균 8곳 넘는 의료기관을 이용했다.

이처럼 하루에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의료 쇼핑'은 일부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이러한 과잉 의료 이용을 줄이기 위해 2024년 7월부터 연간 365회를 초과해 외래 진료를 받는 환자에 대해 본인부담률을 90%로 높였다. 여기에 더해 내년부터는 기준을 '연 300회'로 낮추기로 했다. 제도 시행으로 극단적인 이용은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외래 이용과 건강보험 재정 부담은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과연 '300회'라는 기준이 실질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을까.

◇OECD 평균 3배 '외래 공화국'… 건보 재정은 '경고등'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4년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한의사 포함·치과 제외)는 17.9회로, 전년보다 소폭(0.6%) 감소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5회)의 약 3배에 달한다.

이 같은 '외래 공화국' 현상의 배경에는 높은 의료 접근성과 낮은 본인 부담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동아대 경제학과 김대환 교수(보건경제학)는 "한국의 높은 외래 이용 횟수는 환자의 과잉 수요, 의사의 과잉 공급, 높은 의료 접근성이 맞물린 결과"라며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 공급 유인이 존재하고, 주치의 중심의 이용 조정 장치가 약하다 보니 경증 질환까지 병원 방문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보험금(의료비)에 대한 명확한 심사 체계가 없는 실손의료보험 역시 과잉 수요와 공급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문제는 이러한 이용 구조가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5년 연속 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흑자 폭은 빠르게 줄고 있다. 흑자 규모는 2023년 4조1000억 원에서 2024년 1조7000억 원으로 감소했고, 지난해에는 약 5000억 원 수준까지 급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기석 이사장은 올해 초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해마다 급여비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고 있다"며 "가파르게 감소하는 당기수지 흑자와 계속 증가하는 지출의 간극을 메우지 않으면 재정 고갈 상황은 오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실제로 연 150회를 초과하는 고빈도 이용자 20만 명에게 들어가는 공단 부담금만 연간 2조3415억 원에 달한다. 결국 소수의 과다 이용과 전반적인 외래 이용 증가가 맞물리며 재정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극단'은 줄었지만… 남은 '넓은 고빈도층'
정부가 2024년 7월 도입한 '연 365회 초과' 기준은 일정 부분 효과를 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365회 초과 이용자는 2024년 2285명에서 지난해 102명으로 급감했다. 극단적인 다빈도 이용은 상당 부분 억제된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아래 구간이다. 2024년 기준 연 300회 초과 이용자는 8400여 명, 200회 초과는 6만 명, 150회 초과는 20만 명을 넘는다. 즉, '극단적 이용'은 줄었지만 여전히 넓게 분포한 고빈도 이용층이 남아 있는 구조다.

정부가 최근 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해 기준을 300회로 낮추는 것도 이 같은 '넓은 고빈도층'을 겨냥한 조치다. 개정안에 따르면 연 300회를 넘겨 병원을 방문할 경우 301회차부터 진료비의 9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다만 아동, 임산부, 장애인, 희귀난치성질환자, 중증질환자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관리 방식도 바뀐다. 기존에는 진료비 청구 이후 사후 정산 방식이었지만, 앞으로는 '실시간 요양급여내역 확인 시스템'을 통해 과잉 이용을 즉시 파악하고 관리하는 체계로 전환된다.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365회에서 300회로 기준을 조정한 것은 주말이나 공휴일 등 병원이 쉬는 날을 고려한 것"이라며 "이번 개정으로 약 59억6200만 원의 재정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300회는 행정적 기준… 숫자 규제만으로는 한계"
전문가들은 정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김대환 교수는 "이미 365회 기준 도입 이후 초고빈도 이용자는 상당 부분 감소했다"며 "300회로 낮추더라도 영향을 받는 집단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한계적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이런 방식은 기준선 바로 아래로 이용을 맞추는 '임계값 회피 행동'을 강하게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300회라는 기준 자체가 의학적 근거보다는 관리가 용이한 행정적 기준에 가깝고, 단일 횟수 기준만으로 정상 이용과 과잉 이용을 구분하는 것은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장에서는 의료 이용의 복합적 원인을 함께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신현영 교수는 "300회라고 해도 평일 기준으로는 거의 매일 병원을 방문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빈도 이용 사례를 보면 악의적 이용보다 건강 불안 때문에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료기관과의 신뢰 부족이나 적절한 안내 부족이 원인일 수 있다"며 "노인 환자의 경우 여러 질환으로 병원을 나눠 다니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한다"고 했다.

◇"근본적인 해법은 구조 개편"
결국 이번 정책은 과잉 이용에 '경고'를 주는 효과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현영 교수는 "방만했던 의료 이용 행태에 경종을 울린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의료 이용의 구조적 문제까지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대환 교수 역시 "횟수 기준은 관리가 쉽지만 의료 필요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필요한 진료까지 위축시키거나 이용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특히 만성질환자나 고령층처럼 의료 이용이 불가피한 환자에 대한 형평성 문제도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횟수 제한보다 의료 이용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대환 교수는 "경증 질환은 1차 의료 중심으로 유도하고, 만성질환자는 주치의 중심으로 관리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현영 교수 역시 "환자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주치의를 중심으로 관리받는 구조가 정착돼야 건보 재정도 지속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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