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먹지 말아야 하나? 모호한 단속 기준에 운전대 잡기 불안하다

입력 2026.04.09 14:54
운전하기 전 약 먹는 모습
4월 2일부터 약물을 복용한 상태에서 운전하는 이른바 ‘약물 운전’에 대한 처벌이 한층 강화됐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4월 2일부터 약물을 복용한 상태에서 운전하는 이른바 ‘약물 운전’에 대한 처벌이 한층 강화됐다. 기존에도 도로교통법은 과로·질병·약물 등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어려운 상태에서는 운전을 금지해 왔다. 다만 이번 개정으로 처벌 수위가 강화돼, 약물 운전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모든 약물이 단속 대상은 아니다.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된 약물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마약·향정신성의약품 및 대마 ▲화학물질관리법상 환각물질 등 490종이다. 이들 물질은 환각이나 인지 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어 원칙적으로 운전이 금지된다.

종합감기약이나 알레르기약에 포함된 항히스타민제는 이 같은 490종 약물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약물 종류와 별개로 ‘운전 가능 상태’ 자체가 판단 기준이 된다. 도로교통법 제45조는 과로·질병·약물뿐 아니라 ‘그 밖의 사유로 정상적인 운전을 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운전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항히스타민제를 포함한 감기약이나 알레르기약을 복용한 뒤 졸음·어지럼증·집중력 저하 등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어려운 상태였다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계속되는 약물 운전 증가세… 간이검사·행동평가로 단속
이러한 처벌 강화는 약물 운전 증가세에 대응한 조치로 풀이된다. 도로교통공단과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약물 운전 사고는 최근 몇 년 사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19년 2건에 불과하던 사고는 2024년 20건대로 증가했고, 약물운전 사고는 50건을 넘어서며 사망자와 부상자도 발생했다. 면허 취소 건수 역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윤호 교수는 “약물 운전으로 사고가 발생했다면 당연히 처벌이 필요하다”며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도 처벌 근거를 마련하려는 취지는 이해된다”고 말했다.

약물 복용 자체가 곧바로 처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어려운 상태에서’ 운전한 경우에만 단속 대상이 된다”며 “약물 복용 자체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의 운전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단속은 운전 능력 저하 여부를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이뤄진다. 경찰은 지그재그 운전 등 이상 징후가 있는 차량을 정지시킨 뒤 운전자의 외관과 언행을 확인하고, 필요할 경우 직선 보행이나 한 발 서기 등 현장 평가를 실시해 운전 능력을 점검한다. 이후 약물 복용이 의심되면 간이시약 검사를 진행하고, 양성 반응이 나오면 소변이나 혈액 검사를 통해 정확한 성분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단속 한계·기준 불명확… 치료 중단 우려도
이처럼 단속 절차가 마련됐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여러 한계가 지적된다. 문제는 단속의 어려움, 기준의 불명확성, 운전자 인식 부족이다. 약물 운전은 음주 운전과 달리 특정 시간이나 장소를 중심으로 단속하기 어려워 현실적으로 적발이 쉽지 않다.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어 단속 자체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고, 이로 인해 현장에서는 운전자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김동욱 회장은 “운전자의 행동·말투·보행·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데, 이는 평가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며 “오판이나 과잉 판단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항히스타민제 등이 운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에 대해, 이윤호 교수는 “사고가 발생한 경우 과실 책임으로 처벌할 수는 있지만, 약물 복용 자체를 가중 처벌 사유로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단속에 대한 부담 탓에 꼭 필요한 약물을 임의로 끊을 우려도 있다. 김 회장은 “단속이나 처벌을 걱정한 나머지, 운전이 업인 사람은 아예 약을 먹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며 “이 경우 불안, 우울, 수면장애 악화, 집중력 저하, 충동성 증가 등으로 이어져 오히려 실제 운전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설명 의무·기준 정비 필요… 개인은 복용 후 일정 시간 뒤 운전해야
전문가들은 약물 운전에 대한 대응이 처벌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사전 예방 중심의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의료 현장에서 의사와 약사가 약물 복용 후 운전 위험성과 운전 제한 시간 등을 구체적으로 안내하고, 환자가 이를 충분히 인지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윤호 교수는 “단순한 주의 문구를 넘어 실제 이해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제약사 역시 약물 개발 단계부터 판단력이나 반응 속도 저하 등 운전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 약병이나 설명서에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혈중 약물 농도나 복용 후 경과 시간 등 객관적인 기준 마련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 교수는 “객관적 기준이 마련되면 현장에서의 혼선을 줄이고 판단의 일관성을 높일 수 있다”면서도 “약물 종류가 다양하고 개인별 반응 차이가 커 음주운전처럼 단일 수치로 구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의료진 설명 의무와 제약사의 정보 제공, 명확한 기준 정비를 포함한 예방 중심의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개인 차원에서도 주의가 필요하다. ▲감기·비염약(클로르페니라민 등) ▲항우울제 ▲수면제·진정제(졸피뎀, 디아제팜 등) ▲근이완제·항경련제 ▲일부 혈압약과 당뇨약 ▲마약성 진통제 등은 졸음이나 어지럼증, 반응 속도 저하를 유발한다.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허연 교수는 “약물의 영향은 반감기(약물 농도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복용 후 일정 시간 경과를 확인해야 한다”며 “졸음을 유발하는 약물은 최소 4~8시간 운전을 피하고, 수면제 등 반감기가 긴 약물은 다음 날까지 영향이 이어질 수 있어 주의하라”고 말했다. 반복 복용 시에는 약물이 체내에 축적돼 다음 날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더욱 위험하다.

체크리스트
약물 복용 후 아래 항목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운전을 피해야 한다.​/그래픽=김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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