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 큐리어스’ 술 없이도 취하는 시대

입력 2026.04.10 09:30

[이용재의 음식시론]

사람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삼십여 년 전, 그러니까 내가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만 해도 부모들은 자식들 술 단속하느라 바빴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와 밤새 토하며 온 가족의 수면을 방해하는 일도 허다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확연히 달라졌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소위 ‘갓생(부지런하고 계획적으로, 생산적인 일상을 사는 것)’의 일환으로 술을 안 마시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이 흐름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바로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다.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sober)’와 ‘궁금한(curious)’을 결합한 신조어로, 건강한 삶을 위해 의도적으로 음주를 줄이거나 피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전 세계적인 경향이니, 이를테면 독일에서 2024년 맥주 연간 소비량은 83억L로 2014년 96억L에 비해 13리터 감소했다. 한편 디아지오나 페르노리카 같은 다국적 주류기업들 또한 추세를 반영, 브랜드를 정리해 수익구조를 개편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무알코올 음료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대표 제품군인 무알코올(0.00%) 및 논알코올(1% 미만 알코올) 맥주 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겪고 있다. 2024년 704억원에서 2027년에는 946억원 규모로 우상향이 예측된다(유로모니터). 논알코올 맥주는 진공상태에서 가열해 알코올을 날려 만들었으나 역삼투압 필터로 알코올을 걸러내 맛이 한결 더 좋은 제품도 등장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태도의 변화다. 이제 논알코올 음료는 단순히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을 위한 배려’가 아니다. ‘내일의 성취를 위해 술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의 적극적인 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취하지 않고도 비슷한 경험을 제공하는 기능성 음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술 특유의 바디감과 타격감을 재현하는 것이다. 홉이나 쑥, 용담 같은 ‘보태니컬’ 성분을 활용해 혀끝에 쌉쌀한 여운을 남기고, 이를 통해 뇌가 단순한 음료가 아닌 ‘술과 유사한 경험’으로 인식하도록 만든다. 이 쓴맛은 기름진 음식의 느끼함을 덜어내며 식사 중 반주 역할까지 수행한다. 여기에 생강이나 캡사이신을 미세하게 배합해 목을 타고 넘어갈 때의 알싸한 자극을 구현한 제품도 등장하고 있다.

둘째로는 술이 주는 심리적 효과, 즉 이완과 나른함, ‘취한 듯한 기분’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어뎁토젠과 노오트로픽 두 가지 성분이 동원되는데 전자는 신체가 스트레스에 적응하도록 돕는다. 인도 전통 의학에서 쓰이는 적응형 허브 ‘아슈와간다’나 한약재료도 쓰이는 영지버섯이 대표적인 원료로 술을 마셨을 때 근육이 이완되고 긴장이 풀리는 느낌을 유도한다.

한편 노오트로픽은 인지 기능이나 기분을 개선하는 성분이다. ‘뇌 기능 보조제’로 불리기도 하는데 녹차에 함유된 L-테아닌 등으로 취해서 판단력이 프려지는 게 아니라, 정신은 맑으면서도 기분만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상태를 지향한다. 카페인에 의존하지 않고도 집중력이나 인지기능, 뇌 건강 향상을 돕는 ‘스마트 드링크’ 제품으로도 출시되어 있다.

1만3000년 역사의 술이 곧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자 술을 선택하는 문화는 앞으로도 계속 위력을 잃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알코올을 섭취하지 않고도 술이 줄 수 있는 이점만 뽑아 제공할 수 있는 음료가 늘어나고 있으니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레드오션 일색의 음식과 음료 시장에서 얼마 남지 않은 블루오션으로서 발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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