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정표]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중동 사태 현장
전쟁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깊은 상처를 남긴다./사진=연합뉴스
얼마 전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로 한 노인이 찾아왔다. 젊은 시절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월남참전용사였다. 수십 년간 큰 문제없이 지내왔지만 최근 들어 밤마다 악몽을 꾸고 잠에서 깨며 갑자기 심장이 뛰고 불안해진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렇게 말했다.

“요즘 뉴스에서 전쟁 장면이 자주 나오는 것과 연관된 것 같습니다. 폭격 장면을 보니까 예전에 들었던 포탄 소리가 다시 떠오르고 내 곁에서 죽어간 전우가 생각나 그 때로 돌아간 것처럼 두렵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끝난 전쟁이었지만 그의 마음속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었다. 이렇게 전쟁을 비롯해 생사를 오가는 극단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 중 일부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겪는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침습적인 기억이다. 전쟁이나 사고 장면 등 원치 않는 기억이 반복해서 떠오르고 악몽으로 되살아난다. 둘째는 회피 행동이다. 외상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나 사람, 대화를 피하며 점점 세상과 거리를 두게 된다. 셋째는 과각성 증상이다. 사소한 소리에도 쉽게 놀라고 늘 긴장한 채로 살아가게 된다. 넷째는 부정적인 감정 변화다. 세상이 위험하다고 느끼거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무기력해지는 경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회복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수십 년이 지나도 기억이 지워지지 않고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한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전쟁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지역에서의 충돌 등 폭격과 파괴의 장면이 실시간 영상으로 전 세계에 전달된다. 과거에는 전쟁이 먼 나라의 일이었지만 지금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쟁 장면을 목격할 수 있기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진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이러한 장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을 수 있다. 이를 ‘간접 외상’이라고 한다. 참혹한 장면을 계속 접하다 보면 불안, 분노, 무력감이 커지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위험하다는 느낌이 강해질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은 전쟁 뉴스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분단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도 아직 많고 북한 핵 위협과 긴장 상황이 이어지면서 전쟁이라는 단어 자체에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와 먼 나라의 전쟁 소식도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잠재된 기억이나 공포를 자극할 수 있다.

물론 전쟁 뉴스를 본다고 해서 모두가 정신질환을 겪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안과 스트레스가 커진다면 잠시 전쟁 뉴스나 자극적인 영상과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취침 전에는 충격적인 영상을 피하는 것이 좋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고 일상적인 활동을 유지하는 것도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 어린이나 청소년은 충격적인 장면에 더 민감할 수 있어 보호자의 관심이 필요하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는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다. 대표적인 치료 방법으로는 외상의 기억을 안전하게 다루고 재해석하도록 돕는 인지행동치료가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아픈 기억으로 떠올리게 하는 치료가 아니다. 외상 기억을 안전하게 다시 다루고 “나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거나 “모든 것이 내 잘못이다”와 같은 왜곡된 생각을 바로잡으며 회피와 과도한 경계 반응을 줄여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치료다. 지속노출치료가 대표적이다. 불안증이나 우울증, 불면증을 치료하는 약물도 도움이 된다. 특히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계열 약물은 불안과 과각성 증상을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겪은 사람들의 공포와 긴장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렵다. 내 옆에서 갑작스러운 폭발음이 들리고 바로 옆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 나와 가까웠던 사람이 다치고 생명을 잃는 장면을 목격하고 나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내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극심한 공포와 긴장을 견디며 살아가야한다.

전쟁을 치르는 군인들 역시 다르지 않다. 무기를 들고 싸우지만 그들 또한 두려움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언제 어디서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기도 하고 자신이 살아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런 경험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기억 속에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전쟁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깊은 상처를 남긴다. 전쟁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경제적 피해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남는 고통과 상처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총성과 폭격은 멈출 수 있지만 그 기억이 남긴 두려움과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잔혹한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오래도록 계속될 수 있다. 세상의 평화가 더욱 절실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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