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깊어질수록 불안이 커지는 사람들

[마음 이정표]

연인과 포옹하는 사람
공허함을 타인을 통해 단번에 채우려 하기보다 스스로의 감정을 인식하고 불안을 스스로 견딜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겉보기엔 화려한 인생이지만 마음속은 늘 비어 있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공통적으로 “누군가와 사랑을 해도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더 불안해지고 사랑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관계가 무너진다고 말한다.

한 여성 환자도 그랬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매력적인 외모 덕분에 늘 연애는 끊이지 않았지만 관계가 오래가지 못했다. 사랑이 시작되면 세상이 다 내 것이 된 것처럼 행복하다가도 작은 실망과 변화 하나에도 마음이 무너졌다. 자신의 공허함을 채워줄 남자를 만나기 원했으나 번번이 실망과 좌절을 겪었다. 상대방의 연락이 늦어지거나 관심이 줄어든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불안과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왠지 날 버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늘 불안했어요.”
“그래서 확인하고 의심하고 그를 시험하게 돼요.”

확인하려는 행동은 점점 다툼으로 번졌고 다툼은 이별 위기로 이어졌다. 그러다 막상 상대가 떠날 것 같으면 매달리고 붙잡으며 또다시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런 반복은 결국 두 사람 모두를 지치게 만들었다.

이러한 대인관계 패턴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문제는 아니다. 어린 시절 충분히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경우, 사랑은 위로이자 동시에 위협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사랑이 시작되면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가정환경이 안정적이진 않았어요. 어머니는 늘 우울했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돌봐주지 않았어요. 결국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전 어머니를 방치한 아버지가 용서되지 않았어요.”

그렇게 자란 그녀는 자신과 타인, 그 누구도 믿지 않게 되었다. 두려움을 감추고 외로움은 화려함으로 포장했다. 밖에서의 화려한 삶과 사랑이 자신의 본 모습이라고 느꼈다. 그 때만이 유일하게 행복했다. 유감스럽게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 뒤엔 “나는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불안은 상대를 향한 분노로, 극단적인 감정 기복으로, 반복되는 다툼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공허함을 채우지 못하고 오히려 더 깊은 허무감만 남긴다는 점이다.

이런 마음의 상태에서는 사랑이 위로가 되기보다 상처를 확인하는 과정이 되기 쉽다. 사랑을 통해 안정감을 얻고 싶어 하지만 그 사랑을 스스로 무너뜨리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녀의 진단은 경계성 인격장애에 가깝다. 감정 기복, 불안정한 관계, 투사, 상대에 대한 이상화와 평가절하의 반복이 드러나는 환자였다. 강렬한 관계 후의 파탄과 재결합이 반복되는 대인관계에서의 문제점도 심각했다. 어렸을 때 겪었던 어머니의 우울증과 죽음, 아버지의 정서적 학대 역시 그녀의 마음에 많은 상처를 안겼다.

치료의 시작은 “왜 나는 이런 사랑을 반복하는가?”를 비난 없이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관계를 되짚어 보면서 자신이 너무 불안해서 그럴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허함을 타인을 통해 단번에 채우려 하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불안을 스스로 견딜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상대의 사랑은 나를 채워주는 도구가 아니다. 상대도 나도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을 때 비로소 관계도 안정된다. 쉽지는 않겠지만 누군가를 붙잡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 떠나가더라도 무너져 버리지 않을 자신감이 쌓여야 한다. 그래야 사랑도 덜 불안하고 덜 아프며 덜 공허해진다.

공허한 사랑의 반복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상처가 보내는 신호일 수 있다. 그 신호를 외면하지 않고 천천히 들여다볼 때 사랑은 더 이상 상처를 확인하는 시험이 아니라 함께 머물 수 있는 편안한 심리적 공간이 된다. 사랑이 불안한 사람은 사랑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큰 경우가 많다. 벌써 많은 세월이 흘렀고 또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편안하고 안정된 자신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환자와 몇 년째 상담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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