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넘어 생활 습관까지 반영하는 정밀의학, 의료 패러다임 바꾼다”

의료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처방과 치료가 적용됐다면, 이제는 개인의 유전적 특성과 생활 습관을 고려한 ‘맞춤형 의료’, 즉 정밀의학이 부상하고 있다. 특히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후성유전학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나에게 맞는’ 진단과 예방법을 제시하는 새로운 헬스케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동국대일산병원 가정의학과 오상우 교수를 만나, 우리가 곧 맞이하게 될 변화에 대해 들었다.

-정밀의학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치료를 제공하는 기존 의료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 맞춤형으로 진단·예방·치료를 제공하는 의료 접근법을 말한다. 개인의 유전 정보, 생활 습관, 환경, 생체 데이터 등을 활용하게 된다. 현재 후성유전학 데이터를 활용해, 헬스케어 시스템을 접목해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후성유전학이란?
“우리 몸에는 유전자 2만 여개가 있다. 이 모든 유전 정보가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중 어떤 게 발현되는지는 환경, 생활 습관, 식습관, 스트레스 등 외부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유전자마다 스위치가 있고, 외부 요인에 따라 스위치가 켜지고 꺼진다고 생각하면 쉽다. 생리학적으로는 DNA에 메틸기가 붙거나, DNA와 결합한 단백질인 히스톤에 변형이 생기는 등의 변화로 스위치가 조절된다. 이런 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이 후성유전학이다.”

-외부 요인이 미치는 영향이 큰가?
“생각보다 매우 크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도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발생하는 질병, 건강 상태 등이 상반될 수 있다. 실제 유전자가 완전히 같은 일란성 쌍둥이를 분석한 연구가 있는데, 어릴 때 헤어져 매우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둘을 비교해 보니 비만도부터 질병 위험도까지 매우 달랐다. 인류 전체로 봐도 후성유전학의 영향을 체감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수명이 길어졌고, 노화가 늦춰졌다. 과거의 60대와 현재의 60대를 비교하면 얼굴부터 다르다. 지금이 훨씬 젊어 보인다. 국내 유방암, 대장암 환자가 급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후성유전학은 노화부터 모든 질병과 관련이 있다.”

-의료 중 어느 분야부터 활용될 것으로 보는가?
“가장 먼저 활용되기 용이한 분야는 '정밀영양'을 활용한 대사 질환, 노화 분야다. 헬스케어로 의료 서비스가 제공될 것으로 기대된다. 비만도 연구해 보면 실제 비만에 유전자가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10%도 안 된다. 비만 유전자가 있는지 없는지만 보고 치료하는 게 아니라, 유전자 정보에 생활습관 정보까지 더해진 후성유전학 정보를 보고 맞춤형으로 환자에게 맞는 변화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당장 먼저 접근할 수 있는 건 '영양'이다. 유전자 발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인이고, 쉽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방 섭취에 취약한 유전자가 있고 그간의 생활 습관으로 해당 유전자 발현율이 높은 사람이라면 지방 섭취를 줄이는 앱 등으로 조언하는 식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밀 의학이 활용돼야 하는 분야는 암, 선천성 기형 등 유전 질환이다. 해당 질환에서 특히 정밀 의학이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약, 항암 치료 등을 많은 학자가 연구·개발하고 있다. 의료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임상 결과가 필요해, 가까운 미래에 활용되기는 어렵다. 먼저 헬스케어 형태로 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맞춤형이 아닌 여러 영양과 관련된 일반적인 다이어트 방법은 모두 효과가 없는 것인가?
“음식을 골고루, 적당히 먹는 게 건강에 좋다는 기본 원칙은 오랜 경험과 연구로 증명된 것이다. 하지만 한 음식이 다이어트 식품으로 뜨거나, 탄수화물을 제한하는 등의 방식은 오히려 안 좋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 확인된 연구가 없고, 경험적으로도 대다수 요요로 체형이 되돌아간다. 현장에서 만나는 환자 중 해당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오히려 탄수화물을 제한해 뇌 기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사람마다 맞는 다이어트 방법이 다른데, 이제 어떻게 다른지 측정이 가능한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실제 성과를 내고 있는 분야가 있는가?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고 있는 노화 쪽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후성유전학 시계'라고, 혈액 검사로 유전자의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살펴 (▲암 발생 가능성 ▲뼈·근육 건강 ▲뇌 건강 ▲대사 건강) 등을 객관적인 수치로 추정하는 기술이다. 외부 요인에 따라 변하므로, 생활 습관을 바꾸고 재면 후성유전학적 나이가 더 어리게 나오는 등 검사 값이 변한다. 최근 해외에서 활용하고 있는 곳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이미 활용되고 있는 서비스는 없는가?
“연속 혈당측정기를 달고, 먹는 음식마다 혈당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확인하는 게 정밀영양의학 분야의 기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환자마다 혈당이 오르는 정도가 다르고, 환자마다 특히 혈당이 더 오르는 음식도 다르다. 어떤 음식이 본인의 혈당을 더 많이 올리는지를 이 기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데이터가 쌓이면서 여러 분야에서 관련 서비스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당장 비슷한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다. 챗gpt에 본인의 체중, 키, 기저 질환, 혈압, 혈당 등을 밝히고 건강 목표(체중, 혈당, 혈압 등)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식단을 구성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식이다. 정확도가 높진 않지만, 챗gpt가 주는 답처럼 앞으로 본인 의무 기록을 넣으면 맞춤형 제안을 주는 새로운 형태의 헬스케어 서비스가 나올 것이다.”

-다이어트할 때 챗GPT 도움을 받는 것을 권장하는가?
“잘 활용한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챗GPT가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어, 리터러시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훈련을 어떻게 시키느냐에 따라서도 정확도가 달라져, 이용자의 역량에 따라 도움받을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정밀영양의학 분야는 어떻게 실현될 것으로 보는가?
“먼저 큰 시장인 영양분야에서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것부터, 조금씩 확장될 것으로 본다. 실제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제도가 신설돼, 올해부터 운영되고 있다. 개인의 유전적 특성, 건강 상태, 생활 습관 등을 고려해 전문가가 개인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소분해 낱개 포장·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그다음은 도시락 등으로 데이터와 AI가 결합해 분야가 확장될 것이다.”

-국내 의료 현장에서 정밀의학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 분야는 AI 기술의 발달이 핵심이다. 정부에서는 기업이 육성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의료 데이터 중 민감 데이터를 제외하고는 환자가 자기 결정권을 갖도록 해 민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포함된다.”

-‘정밀의학과 후성유전학’이 가져올 미래 의료의 모습을 설명한다면?
“당뇨병 등 만성질환 환자들은 3개월에 한 번 혹은 6개월에 한 번 본다. 그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환자가 매번 병원에 올 수 없으니, 맞춤형 치료를 할 때 병원 진료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 일 년에 한 번씩 건강 검진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데, 앞으로는 실생활에서 AI를 통해 본인에게 맞는 진단과 케어를 하는 시스템을 접하게 될 것이다.”

오상우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비만대사영양센터장, 스마트헬스케어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과거부터 한국인의 비만에 큰 관심을 두고, 다양한 정부 기관 연구를 진행해 왔다. 비만과 암 발생·사망과 연관성을 밝혀냈고, 국민건강보험공단 비만대책위원으로 참여해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해왔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국내 최초 비만 지도를 완성하기도 했다. 비만예방의 날을 제정하고, 국내 복부비만 기준을 설정하고, 국가 비만 관리 종합대책 마련 등 국가 검진 사후관리 제도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9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정밀영양학회장으로 적극 활동하며, 미래 의료로만 여겨졌던 정밀의료가 식품을 통해 현실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