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항문 질환은 부끄러운 병이 아닙니다. 참다가 응급질환이 될 수 있습니다."
대한대장항문학회 정순섭 이사장(이대목동병원)은 29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주관한 미디어아카데미에서 대장항문외과 진료에 대한 '창피하다'는 인식이 고령층의 치료 접근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이가 들면 수많은 질환에 걸릴 수 있는데, 그중 대장항문 질환은 복병이다. 삶의 질을 뚝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대장항문학회가 지난해 고령층 대장항문 대표 질환인 변실금을 앓는 환자를 대상으로 겪고있는 사회적 어려움을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외출이 어렵다’(32.7%), ‘냄새 문제’(21.8%), ‘사회생활이 어렵다’(16.8%) 등이 꼽혔다. 정순섭 이사장은 "많은 환자가 혹시 외부에서 실수를 할까봐, 냄새가 날까봐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결국은 밖을 나가지 못하는 사회적 고립에 처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23일부로 고령자 비중이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그만큼 대장항문질환자도 증가했다. 특히 노인에게 흔히 나타나는 대장항문질환은 변비, 변실금, 대장암 등이다. 변비는 인구 10만 명당 30대 1082명에서 70대 이상에 이르면 8575명으로 크게 증가하고, 변실금 환자도 65세 이상이 65세 미만보다 두 배 이상 많다. 대장암 역시 발병률이 30대에는 1.8%에 그치지만 50대에 22.9%로 올라, 70대엔 29.5%까지 증가한다.
정순섭 이사장은 "항문∙대장 증상을 부끄럽게 여기는 노인들의 심리는 검진 회피로 이어지고 그 결과 치료 시기를 놓쳐 건강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며 "실제로 변비로 장이 막히거나 터져 응급 수술로 이어지는 경우가 현장에서 상당히 많다"고 했다. 이어 "응급 수술의 절반 가량일 정도로, 특히 장이 터지면 균이 전신에 퍼져 패혈증으로 악화해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45세 이상 306명을 조사한 뉴질랜드 연구에서 창피한 감정이 대장암 검진 지연과 유의미한 연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연구에서도 대장 질환 검진을 받지 않는 주요 이유로 42.3%가 '창피함', 43.1%가 '검사 공포' 등을 꼽았다. 정순섭 이사장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며 "대장항문학회 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 숨어있는 환자까지 고려하면 변실금을 앓고 있는 인구가 국내 150만 명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실제 진료 받은 변실금 환자는 2만 명이 되지 않는다.
정순섭 이사장은 "노년기 대장항문 질환을 '부끄러운 병'이 아닌 일상적인 건강 이슈로 접근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장 항문 질환을 예방하고, 제때 병원을 찾으려면 먼저 질환에 걸리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가장 환자 수가 많은 변비는 ▲노화로 장 근육 기능이 약화하면서 장운동이 저하하고 ▲수분 섭취가 부족하고 ▲신경계가 변화하고 ▲복용 약물의 영향으로 생기곤한다. 정순섭 이사장은 "무엇보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며 "상당 수의 노인이 변비 증상이 생기면 의사와 상담없이 변비약 등을 먹는데, 이 약이 오히려 증상을 악화할 수 있고 심지어는 인지 기능까지 떨어뜨릴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노인은 기저질환으로 평균 12.4개의 약을 먹고 있는데, 이중 변비를 유발하는 약도 자주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비약을 자의로 먹기 전에 먼저 기저질환 등으로 복용하고 있는 약이 있다면, 변비 증상을 의료진에게 의논한 뒤 복용약을 조절하는 것이 우선이다.
대장암은 조기 증상이 거의 없으므로 주기적으로 내시경을 받는 게 매우 중요하다. 빨리 발견할수록 생존율이 높다. 1기에 발견하면 생존율은 98.6%에 달하지만, 4기에 발견하면 13.4%밖에 되지 않는다. 고령에서는 특히나 더 증상이 거의 없다. 악화해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출혈, 변비 보다 묵직함, 복통, 빈혈 등의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정순섭 이사장은 "대장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장내시경만이 유일한 조기 진단 방법이자 즉시 제거할 수 있는 치료 수단"이라고 했다.
변실금도 증상이 심하지 않을 때 진료를 받으면, 약물·식이 조절 등으로 관리가 가능하다. 정순섭 이사장은 "콩, 브로콜리, 양배추 등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은 변을 굳게 만들긴 하지만 장 내에서 가스 생성을 높인다"며 "괄약근 힘이 약한 노인에서는 변 일부가 가스와 함께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항문을 쪼였다 푸는 케겔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게 변실금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 기사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