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만으로 완치가 어려운 재발 고위험 조기 유방암 환자에게 CDK4/6 억제제 ‘버제니오’를 내분비요법과 병용할 경우 재발 위험을 유의미하게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재발을 막기 위해 초기 치료부터 버제니오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예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다만, 아직 이 용도로는 건강보험 급여가 인정되지 않아 환자들의 접근성이 낮은 상태다.
고대안암병원 종양내과 박경화 교수/사진=정준엽 기자
◇"고위험군, 재발 시 완치 가능성 낮아… 초기 치료가 관건" 한국릴리는 16일 서울 HJ 비즈니스센터 광화문점에서 '버제니오의 조기 유방암 수술 후 보조요법(추가요법)의 임상적 역할'을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고대안암병원 종양내과 박경화 교수가 버제니오의 조기 유방암 보조요법 5년 추적 결과를 소개하며, 재발 고위험 유방암 환자에 대한 조기 개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방암 환자들의 삶의 질 문제와 약물 부작용 관리법, 건강보험 급여 문제 등도 함께 논의했다.
버제니오는 국내에서 재발 위험이 높은 호르몬 수용체(HR) 양성·HER2(인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2형) 음성, 림프절 양성인 조기 유방암 환자에게 내분비요법과 병용할 수 있는 보조요법으로 유일하게 허가된 CDK4/6 억제제다. 세포 분열과 증식에 관여하는 단백질인 사이클린 의존성 키나제(CDK) 4와 6을 선별적으로 억제해 암세포 증식을 막는다. 2019년 호르몬 수용체 양성·HER2 음성인 진행성·전이성 유방암 치료제로 최초로 허가됐으며, 2022년 조기 유방암 적응증을 추가했다.
조기 유방암 환자의 경우 약 14~23%가 재발을 경험하며, 그 중에서도 ▲림프절 전이 개수가 있고 그 개수가 4개 이상으로 많거나 ▲종양의 크기가 5cm 이상(감자 한 알 크기)이거나 ▲종양 조직 등급이 3등급인 경우 재발 위험이 큰 고위험군으로 분류한다. 이들의 재발률은 약 20~40%로 전체 조기 유방암 환자군보다 높고, 재발을 경험한 유방암 환자의 50% 이상은 또 다시 재발을 겪는다.
조기 유방암은 재발을 막기 위해 첫 치료부터 철저한 치료가 중요한 만큼, 전문가들은 버제니오가 재발 위험이 높은 조기 유방암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유방암학회는 호르몬 수용체 양성이면서 HER2 음성인 재발 고위험 조기 유방암 환자에게 수술 후 보조요법으로 2년 간 버제니오와 내분비요법을 병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치료 기간을 2년으로 권고한 것은 질환 특성상 암세포가 천천히 자라는 경우도 있고, 장기 곳곳에 옮겨붙어 뒤늦게 재발을 일으키는 사례도 있어 2년 정도의 충분한 치료 기간이 요구돼서다. 버제니오를 평가한 임상시험 또한 2년 동안 내분비요법과 함께 투여 후 최대 10년까지 결과를 추적하도록 설계됐다.
박경화 교수는 "조기 유방암 환자들이 가장 크게 걱정하는 점은 수술 후 재발의 위험"이라며 "버제니오는 재발 고위험 환자에서 내분비요법과 함께 2년 동안 추가로 사용했을 때 재발률이 유의미하게 낮췄다는 데이터가 있어 임상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제니오/사진=한국릴리 제공
◇“버제니오, 5년 추적 시 재발 위험 33% 감소" 이날 간담회에서는 지난 2023년 나온 버제니오의 5년 장기 추적 연구 결과가 소개됐다. 임상 3상 시험 'monarchE'의 5년 추적 결과에 따르면, 버제니오·내분비요법 병용군은 단독 내분비요법군 대비 침습적 질병이 재발할 위험이 약 33% 감소했다. 이는 내분비요법 단독 투여 대비 2.5배 높은 재발 위험 감소 효과며, 효과는 2년차, 4년차보다 더 크게 증가했다. 부작용 또한 설사, 감염, 호중구 감소증 등이었으나, 대부분 1~2등급의 경증이었고, 용량 조절을 통해 관리 가능한 수준이었다.
박경화 교수는 "초기에 부작용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용량 조절을 잘 하면 환자들의 장기간 복용에 큰 문제가 없다"며 "버제니오 세 가지 용량의 약가가 모두 같다 보니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용량을 감량하더라도 효과는 동일하다"고 말했다.
◇계속 지연되는 급여 논의… "장기적인 관점 반영해줬으면" 버제니오는 진행성·전이성 적응증과 달리 조기 재발 고위험군 적응증에는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계속 밀리고 있다. 2022년 허가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계속 논의 중이나, 중증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에서의 논의가 길어지고 있다. 가장 마지막 심의는 작년 3월 이뤄졌으나, 비급여 판정을 받았다. 버제니오를 2년 간 비급여로 투여하기 위해선 약 5000만원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릴리에 따르면, 버제니오의 급여 확대는 오는 7월 말 중 열릴 암질심에 상정될 것이 유력하다. 다만, 최종 심의 여부는 심평원이 결정하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릴리 의학부 배주희 이사는 "환자들이 완치 후 사회에 다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조기 치료에 보험 재정을 투자하는 것이 비용효과성 측면에서 더 낫다는 보고들이 많다"며 "이러한 장기적인 요소들이 급여 적용에 더 많이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