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말, 얼마나 믿으시나요?

입력 2025.03.14 08:13

최훈의 이것도 심리학

남성이 연설하는 모습
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대학의 목적이 희미해졌다는 평가를 받는 오늘날, 그래도 학생들에게 대학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상당수 학생들은 ‘전문성’을 이야기한다. 학위를 받고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돼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키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내가 전공하는 심리학 분야의 경우에는 아쉽게도 학부 과정만으로는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학생들은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 정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전문가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이 존재하는 것 같다. 첫째는 ‘전문가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전문가들의 하소연이다. 전문가보다 비전문가의 말이 더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전문가인 의사의 권고보다 민간요법에 귀가 쏠리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둘째는 정반대로 ‘전문가가 지나치게 대접을 받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전문가들이 뭘 모른다는 것이다. 학위나 자격증, 직업 등이 전문성을 전혀 담보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여기에 더해진다. 이 상반돼 보이는 두 의견은 하나의 현상을 지목하고 있다. 전문가의 말이 딱히 믿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전문가. 기술, 예술, 기타 특정 직역에 정통한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이 있는 사람 또는 그 분야를 통달한 사람. 다양한 심리학 연구들은 전문가가 일반인에 비해 우수한 측면이 많다고 이야기 한다.

우선 전문가는 해당 분야에 대해서는 일반인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놀라운 기억력을 보인다. 어떤 작업을 수행할 때 필요한 정보가 모여 있는 기억을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라고 하는데, 그 용량에 한계가 있다. ‘매직 넘버 7’이란 말처럼 7개 안팎의 정보라는 주장도 있고, 4개 정도라는 주장도 있지만, 무한한 용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대국을 첫수부터 마지막 수까지 틀림없이 복기하는 바둑 기사의 예처럼 전문가는 일반인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의 작업 기억 용량을 가진다. 용량 자체가 늘어난다기보다는 정보의 압축률을 높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한데, 군집화, 의미화 등의 방법을 이용해 저장할 수 있는 양을 늘리는 것이다. 즉, 바둑 기사는 바둑돌의 위치를 하나 하나 다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바둑 경기의 흐름을 기억해 많은 정보를 저장한다.

전문가는 문제를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고 한다. 초보자들은 문제의 표면적인 특징에 집중하고 문제를 푸는 방법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는 반면, 전문가는 개념적 원리와 같은 깊은 구조에 집중해서 문제를 이해하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 해결 방식을 찾을 때에도 일반인은 문제를 보고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풀어나가는 반면, 전문가들은 목표(정답)를 설정하고, 필요한 단계를 거꾸로 생각하면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뇌과학 연구 결과를 봐도 전문가와 일반인의 뇌는 다르다. 예를 들면, 택시 운전기사의 경우에는 일반인에 비해 해마 크기가 더 크고, 통역사의 경우는 좌반구의 측두엽과 전두엽이 더 발달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전문가의 능력은 인정돼야 함이 옳을 것 같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전문가의 말을 믿지 않을까? 전문가의 능력은 전지전능한 것이 아니라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문제가 전문가의 능력은 영역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즉, 전문가는 자신이 전문성을 쌓은 영역에서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일반인에 비해 엄청난 기억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바둑 기사의 우수성은 바둑에 대해서만 한정적으로만 적용된다.

영역 한정성이 큰 문제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 누구도 바둑 기사에게 자동차 운전의 전문성을 기대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제대로 된 전문가만 찾아간다면, ‘뭘 알지도 못하는 전문가’란 소리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일반인의 경우에는 영역을 구분하는 것도 힘든 경우가 많다. 심리학을 전공한 필자에게 사회학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은 없다. 그런데 간혹 필자에게 정신 질환을 물어보는 사람들을 만나면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심리학은 세부 전공의 분야가 매우 넓고, 매우 달라서 자신의 세부 전공이 아닌 분야에 대해서는 그렇게 잘 알지 못한다. 심리학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이 정신 질환이니 심리학 박사인 필자가 잘 알 것이라고 기대하겠지만, 필자는 인지 심리학 분야의 전문가이지 임상 심리학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니 ‘잘 몰라요’를 남발할 수밖에.

거기에 더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전문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전공한 인지 심리학의 경우, 미국의 큰 대학에는 수십명의 교수들이 있고, 그들은 각각 기억, 지능, 의사결정, 지각 등 인지 심리학에 포함된 다양한 세부 영역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부분 심리학과에서는 1~2명 정도의 인지 심리학 전공 교수들이 있고, 그들이 인지 심리학의 모든 분야에 대해 최고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리라 여길 뿐이다. 전문가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진짜 전문가를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더 많은 전문가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할 일은 전문가의 능력을 의심하고 필요 없다고 못 박는 것보다, 다양한 진짜 전문가들을 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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