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탈모, 삶의 질 크게 떨어뜨려… ‘리트풀로’ 새로운 대안 될 것"

서울아산병원 피부과 원종현 교수는 5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한국화이자제약 중증 원형탈모증 치료제 '리트풀로' 캡슐 출시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리트풀로는 그동안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약제에 의존해 치료 만족도가 높지 않았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특히 12세 이상 청소년에게 허가된 유일한 원형탈모증 치료제라는 점에서 더 많은 환자들에게 치료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는 평가다.

◇원형탈모, 예측 어려워… 일반 안드로겐성 탈모와 다른 질환
원형탈모증은 전 세계 인구의 약 1.7%가 평생 최소 한 번 경험할 만큼 흔하다.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안드로겐성 탈모와는 다른 질환이다. 면역계가 모발의 일부를 이물질로 인식하는 비정상적 면역반응을 일으키며, 이로 인해 모낭에 염증이 발생하면서 원형탈모증을 유발한다.

주로 40세 이전 성인에서 발생하나, 일부는 청소년기부터 증상이 나타난다. 이 경우 예후가 더 나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2023년 기준 약 17만8009명이 원형탈모증을 앓고 있으며, 이는 10년 전인 2013년 대비 15.3% 증가한 수치다. 군데군데 탈모반(패치형)으로 나타나는 반점형 원형탈모증이 84.4%로 가장 많고, 모발이 완전히 빠지는 전두 탈모(4.4%), 모든 몸의 털이 완전히 빠지는 전신 탈모(5.1%)도 일부를 차지한다.

◇동반질환·심리적 위축으로 삶의 질 저하
원형탈모증의 가장 큰 문제점은 크게 ▲환자 예측이 어렵다는 점 ▲삶의 질이 떨어지는 점 ▲치료 선택지가 부족하다는 점으로 나눌 수 있다. 전체 환자의 70%는 간단한 치료를 받거나 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저절로 호전되지만, 30%의 경우 자연스럽게 낫지 않거나,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거나, 탈모증이 더 심해진다.

원종현 교수는 "원형탈모증은 어떤 환자가 질병이 진행될지, 어떤 환자가 좋아질지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과거에 좋은 약제가 없었을 때는 증상이 심한 환자들이 모발이 한 번 다 빠지고 나면 되돌아오는 비율이 10%가 되지 않을 만큼 치료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동반 질환과 심리적인 위축으로 인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면역 이상과 관련된 질환인 만큼 다른 탈모 대비 ▲갑상선 질환 ▲2형 당뇨병 ▲건선 ▲루푸스 ▲백반증 ▲아토피피부염·습진 등을 더 자주 동시에 겪기도 한다.

특히 ▲여성 ▲20~50세 성인 ▲백인 ▲모발이 25% 이상 빠지는 경우 심리적 위축을 더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 환자가 탈모 사실을 감추려 하거나,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친구·가족·연인과의 교류를 피하기도 한다.

원 교수는 "단순 미용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사회적인 기능의 위축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환자들이 많다"며 "똑같은 사람의 사진에서 모발이나 속눈썹을 제거하는 형태로 변형해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때, 아파 보인다거나 매력적이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던 연구도 있다"고 말했다.

◇리트풀로, 12세 이상 청소년에게 허가된 최초 신약

치료 선택지가 부족한 점도 치료에 큰 장애물이다. 그동안 소아 또는 병변이 넓지 않은 환자는 바르는 연고를 주로 사용했으며, 성인의 경우 부신피질 호르몬을 탈모 부위에 직접 주사하는 요법을 사용했다. 이 외에는 먹는 스테로이드제나 면역 억제제 등으로 전신 치료를 했다. 다만, 이 치료제들은 안전성과 효과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아 환자들이 치료에 우려를 표했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심할 경우 치료를 포기하고 가발을 사용하는 환자도 있었다. 특히 주사제의 경우 전신 흡수의 위험으로 인해 어린이에게는 사용이 어려웠다.

원종현 교수는 리트풀로가 환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리트풀로는 성인과 12세 이상의 청소년에서 중증 원형탈모증 치료제로 허가받은 JAK(야누스 키나제) 억제제로, 1일 1회 경구 투여한다. 12세 이상 청소년 환자 대상으로는 국내 최초로 승인을 얻었다. 일라이 릴리의 '올루미언트(성분명 바리시티닙)' 또한 원형탈모 효능을 인정받은 JAK 억제제지만, 아직 12세 이상 청소년을 대상으로는 허가되지 않은 상태다. 12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이 비교적 늦게 시작돼서다.

원 교수는 "리트풀로는 원형탈모증을 유발하는 면역세포에 좀 더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기전을 가졌다는 장점이 있다"며 "자가면역질환과 치료제인 만큼 사용을 조심해야 하는 환자도 있어 투여 시 안내하고 있지만, 기존의 치료제들은 이보다 훨씬 위험한 부작용이 많았다"고 말했다.

리트풀로는 임상 3상 시험 'ALLEGRO'에서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됐다. 임상에서 리트풀로 50mg 투여군은 23%가 치료 24주차에 '탈모 중증도 기준 점수(SALT)'가 20점 이하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 48주차에는 이 비율이 43%로 나타나면서 위약군(10%) 대비 유의미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작용의 경우 상기도 감염과 요로 감염이 가장 흔했으나 대부분 경증 수준이었고, 사망 사례나 심혈관계 이상 사건(MACE), 기회감염은 보고되지 않았다. 기회감염은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정상인 사람에게는 병을 일으키지 못하는 미생물에 의해 감염병이 생기는 현상을 말하며, 폐포자충 폐렴이나 식도 칸디다증이 대표적이다.

◇중증 환자, 오히려 제도권 혜택 못 받아… "약가 논의 중"
다만, 아직 중증 원형탈모증이 산정특례로 인정되지 않아 리트풀로를 보험급여로 사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현재 증상이 심하지 않은 환자들이 연고, 주사제, 먹는 스테로이드제 등의 기존 약제를 사용하는 것은 보험급여 적용이 가능하지만, 중증 원형탈모증 환자들의 약제 사용은 오히려 보험급여가 인정되지 않는다.

원종현 교수는 "기존 약제의 부작용으로 치료를 받지 못해 증상이 정말 심각해진 환자들은 현실적으로 가발 사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가발은 미용 장구로 분류돼 오히려 증상이 심한 환자들이 제도권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화이자제약은 리트풀로의 구체적인 비급여 약가를 공개하진 않았다. 다만, 환자들의 접근성을 최대한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한국화이자제약 의학부 정성범 이사는 "정확히 얼마라고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환자들이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논의하고 있다"며 "산정특례에 대해서도 규제 당국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