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가 미국에 공장을 추가 건설하고 비만치료제 신제품의 가격을 낮추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에 대한 압박 때문이지만, 비만·당뇨병 치료제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굳건히 지키겠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일라이 릴리가 270억달러 규모의 미국 내 제조 시설 추가 건설을 발표했다./사진=일라이 릴리 제공
◇美 공장에 총 72조 투자… 트럼프 관세 압박 6일만 26일(미국시간) 릴리는 270억달러(한화 약 38조6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내 4개의 제조 공장을 5년 내 가동을 목표로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릴리는 이전에도 2020년부터 작년까지 미국 내 제조 입지를 늘리기 위해 230억달러를 투입했고, 이번에 발표된 금액을 포함하면 2020년부터 총 500억달러(한화 약 72조원) 가량의 비용을 투입했다.
4개의 제조 공장 부지 위치는 올해 중 공개될 예정이다. 이 중 3개 부지는 원료의약품 제조와 의약품 공급망 강화에 중점을 두고 개발한다. 나머지 1개 부지에서는 주사제 의약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릴리는 4개의 제조시설이 완공되면 과학자, 엔지니어, 운영 인력, 실험실 기술자 등 약 3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으며, 시설이 건설되는 기간에는 약 1만개의 건설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번 발표는 지난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릴리를 포함해 대형 제약사 CEO(최고경영자)들과 수입 의약품에 대한 관세 우려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지 6일 만에 이뤄졌다. 대선 운동 당시 미국 내 제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트럼프는 취임 이후 제약사들에 의약품 생산을 미국으로 이전하라는 압력을 가했고, 지난주에는 의약품과 기타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릴리의 발표로 다른 미국 제약사들의 국내 시설 투자 검토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해외 기업들의 미국 내 제조 시설 투자 여부는 수입 의약품 관세 부과에 대한 상세 내용이 발표된 이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상세 내용에는 관세 부과 시 관세율의 정도와 대상 국가·대상 품목, 관세 적용 시점 등이 포함된다.
일라이 릴리 데이비드 릭스 CEO는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인 2017년에 도입된 감세·일자리에 관한 법률은 릴리의 미국 내 제조업 투자의 기반이 됐다"며 "올해 2기 행정부에서도 정책이 연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만·당뇨병약 시장 점유 목적도 있어… 신제품 가격 낮추기도 릴리가 발표한 제조시설 추가 투자의 가장 큰 목적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이지만, 비만·당뇨병 등 환자들의 수요가 높은 의약품 시장에서 입지를 확고히 다지기 위한 의도도 있다. 제조 시설이 부족해 의약품을 충분히 만들지 못할 경우 복제 의약품에 시장 점유율을 빼앗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특정 오리지널 의약품의 물량이 부족할 경우 '의약품 공급부족 명단'에 올리며, 공급난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동일한 성분의 복제 의약품 제조·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터제파타이드 성분 당뇨병 치료제 '마운자로'와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는 모두 미국에서 월 1000달러 이상의 비용이 필요한 고가의 의약품이다. 마운자로의 가격은 월 1023달러(한화 약 148만원)며, 동일 성분의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는 한 달에 약 1060달러(한화 약 153만원)다. 특히 젭바운드는 미국에서도 의료보험으로 사용할 수 없어 이 비용을 환자가 전부 직접 부담해야 한다. 이에 릴리는 2022년 12월 터제파타이드가 의약품 공급부족 명단에 오른 후 작년 12월 공급난이 해소되기까지 약 2년 동안 복제 의약품 제조사들에 시장 점유율을 내주기도 했다.
높은 시장 점유율 유지를 위해 약가를 낮추려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 25일(미국시간)에는 젭바운드 1회 용량(7.5mg, 10mg) 바이알 제품을 새롭게 출시하고, 자가 부담 환자를 위한 가격 조정안을 같이 발표하기도 했다. 바이알이란 약물이 미리 충전된 펜 형태의 주사기가 아니라, 일반 주사 용액을 담아두는 보관 용기 형태의 제품을 말한다. 릴리에 따르면, 젭바운드 신규 품목은 월 499달러로 책정됐으며, 기존 2.5mg 바이알과 5mg 바이알도 각각 399달러와 499달러로 가격을 낮췄다.
일라이 릴리 패트릭 존슨 심혈관·대사질환 부문 사장은 "비만은 의료계에서 만성질환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보험과 정부 프로그램에서는 여전히 지원이 부족하다"며 "우선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저렴하고 가용성이 높은 선택지를 늘리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