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들의 매출은 2023년 기준 40조원에 달했습니다. 연 매출 1조원, 2조원은 물론이고, 3조원, 4조원을 바라보는 기업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사가 개발한 ‘국산 신약’은 어느덧 30여개에 달하며, 신약 FDA 허가, 수조원대 기술 수출 등을 통해 세계무대서도 입지를 다져가는 중입니다. ‘제약사 프로파일’에서는 이들 제약사를 하나씩 선정해,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종근당 사옥 / 종근당 제공
서울 지하철 충정로역은 주황색 고층 건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2호선과 5호선 역이 V자로 갈라져 있다. 두 역사(驛舍) 중앙에 들어선 이 건물은 국내 5대 제약사 중 하나인 종근당의 사옥이다. 1941년 현 사옥 인근에서 4평 남짓한 약방으로 시작한 종근당은 80여년 뒤 연 매출 1조6000억원 이상을 올리는 대형 제약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사이 2개 국산 신약을 개발했으며, 10여개 원료의 FDA 허가도 획득했다. 종근당은 계속해서 만성질환부터 난치성질환까지 다양한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고삐를 죄고 있다.
종근당 창업주 고촌(高村) 이종근 회장 / 종근당 제공
◇외판에서 약방으로… 우여곡절 끝 ‘종근당제약사’ 설립 종근당의 사명(社名)은 창업주 고(故) 이종근 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직접 지었다. 1919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그는 1931년 상경해 철공소 견습공, 정미소 배달부 등으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러다가 1939년부터 약방에서 약품외판을 시작했다. 약품외판이란 말 그대로 여기저기에 약을 가져다 파는 일이다. 이 회장 역시 자전거를 타고 서울과 경기, 충청 지역 등을 오가며 약을 배달·판매했다.
그렇게 2년 정도 일한 이종근 회장은 마포구 아현동에 ‘궁본약방’이라는 자그마한 약방을 차렸다. 남이 만든 약을 받아다 팔기만 하는 게 아닌, 직접 약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였다.
야심차게 개업했지만 약방은 2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당시 조선총독부가 일제의 태평양전쟁에 필요한 자원을 모으기 위해 기업정비령을 내리면서다. 이 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해방 이후인 1946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종근당약방’을 재개업했다.
그러나 이 역시 순탄치 못했다. 1948년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아 판매한 활명수가 가짜 약으로 판명돼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 물론 그 역시 사기를 당한 피해자였기 때문에 무죄 석방됐다. 이 사건은 후에 그가 회사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제약사업에 뛰어드는 계기가 됐다.
이종근 회장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간 뒤 그곳에서 약품판매업을 이어가며 사업 기반을 다졌다. 공장을 설립·확장해 생산제품을 늘렸고, 휴전 후엔 전국으로 영업망을 넓혔다. 이후 서울 충정로로 다시 돌아와 1956년 종근당제약사를 설립했다.
고(故) 이종근 회장이 1941년 마포구 아현동에 차린 ‘궁본약방’. / 종근당 제공
◇1950년대 구충제 ‘비페라’부터 2010년대 바이오시밀러 ‘네스벨’까지 설립 초기 종근당의 행보는 그야말로 종횡무진이었다. 1950년대 구충제 ‘비페라’와 조혈강장제 ‘헤모구론’을 개발했고, 1960~1970년대 들어서는 원료합성공장과 발효공장을 구축했다. 1961년 이종근 회장이 97일 동안 세계 16개국을 돌며 각국 제약사를 방문했는데, 이때 원료 자체 생산의 필요성을 느낀 뒤 한국에 돌아와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종근당은 1968년 항생제 ‘클로람페니콜’의 미국 FDA 승인을 획득해 일본, 미국 등에 수출했다. 1969년 우리나라 의약품 전체 수출액이 110만4993달러였는데, 당시 절반 이상(62만4548달러)이 종근당이 올린 실적이었다. 이후에도 1980~1990년대에 걸쳐 결핵 치료제 ‘리팜피신’, 면역억제제 ‘사이폴’ 등을 연이어 선보이며 국내 대표 제약사 반열에 올랐다.
1993년 이종근 회장 타계 후 경영권을 이어받은 이장한 회장은 신약 연구·개발에 더욱 열을 올렸다. 연구개발비를 매출액 대비 1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기존 중앙연구소를 기술연구소와 의약연구소로 이원화한 종합연구소로 확대 개편했다. 천안과 광교에 위치한 두 연구소는 추후 용인 효종연구소로 통합됐다.
지속적인 투자는 2003년 항암 신약 ‘캄토벨’과 2013년 당뇨병 신약 ‘듀비에’ 개발·허가로 결실을 맺었다. 2018년에는 종근당의 첫 바이오시밀러 ‘네스벨(빈혈치료제)’을 개발해 일본에 수출했으며, 재작년엔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와 1조7302억원 규모 초대형 계약을 체결하며 히스톤탈아세틸화효소6(HDAC6) 억제제 신약후보물질 ‘CKD-510’을 기술 수출했다. 이는 종근당 창사 이후 최대,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선 두 번째로 큰 규모였다.
◇신약 소식 10년 넘게 잠잠… 이상지질혈증 치료제·항암제 개발 중 종근당은 이장한 회장 취임 첫 해인 1993년 108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10년 뒤 2013년엔 5배 이상 늘어난 5606억원을 기록했고, 2019년 처음으로 1조원을 넘겼다. 2023년 기준 종근당의 연간 매출은 1조6694억원, 종근당건강과 종근당바이오 등 그룹사 전체 매출은 2조7673억원에 달한다.
이 같은 성장세를 장기적·안정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자체 신약 개발이 시급하다. 종근당은 2013년 듀비에 허가 이후 10년 넘게 신약 개발 명맥이 끊긴 상황이다. 현재 매출 상위권에 자리한 프롤리아(골다공증치료제)나 아토젯(고지혈증치료제), 글리아티린(뇌혈관질환치료제), 지누비아(당뇨병치료제) 등 대다수 품목 역시 타사에서 도입하거나 공동 판매 중인 제품이다.
현재 종근당은 이상지질혈증과 같은 만성질환부터 암을 비롯한 난치성 질환까지 다양한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이상지질혈증 치료제로 개발 중인 ‘CKD-508’의 경우 영국 임상 1상에서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했으며, 지난해 11월 FDA로부터 미국 임상 1상을 승인받았다. 항암이중항체 바이오신약 ‘CKD-702’ 또한 비소세포폐암을 적응증으로 임상 1상(파트 2)을 진행 중이다.
종근당 관계자는 “신약 개발 범주를 대폭 확대 중”이라며 “세포·유전자치료제, ADC 항암제 등과 같은 ‘퍼스트 인 클래스(계열 내 최초 신약)’와 미충족 수요 의약품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