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몇 시간 잤을까?’ 일과 중 졸음이 쏟아질 즈음이면 자연스레 전날 수면 시간을 계산해본다. 그러다가 ‘많이 잔 것 같은데, 왜 피곤하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질문을 바꾸면 답이 나온다. ‘얼마나 제대로 잤느냐?’다. 자려고 누워있던 건 7~8시간이지만, 실제 깊이 잠든 시간은 이보다 적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유는 다양하다. 생각이 많아서, 우울해서, 주변이 밝고 시끄러워서, 혹은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과 같은 질환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을 겪고 있다면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 불면증 명의 이대서울병원 김지현 교수를 만나 우리가 잠 못 드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이대서울병원 신경과 김지현 교수 / 이대서울병원 제공
-국내 불면증 환자가 계속 늘고 있다. 이유가 뭘까?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환경의 변화다. 스마트폰 이용 시간이 계속 늘고 있고, 대형 TV, 컴퓨터 모니터도 많이 사용한다. 사람들이 화면의 밝은 빛에 더 자주, 많이 노출되고 있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질환의 인지도와 관련이 있다. 수면장애에 대한 정보나 건강한 수면의 중요성이 알려지면서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졌다. 불면증이 의심되면 적극적으로 병원을 찾고, 진단도 많이 받는다.”
-한국인은 수면량이 부족한 걸로 잘 알려졌는데, 불면증 환자도 많은가? “연령별 유병률이 10~20%다. 높은 편이다. 다만 수면부족과 불면증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수면량이 부족한 건 여러 이유로 인해 스스로 자는 시간을 줄여서다. 과도한 업무, 공부 또는 잠 못 들게 하는 여러 질환 등이 원인일 수 있다. 반면 불면증은 잘 자고 싶고 자기 위해 시간도 많이 투자하는데 못 자는 거다. 불면증이 수면부족의 원인 중 하나일 수 있지만, 불면증 환자라고 해서 전부 수면량이 부족한 건 아니다. 7시간, 8시간씩 자는데 깊게 못 자고 자꾸 깨는 등 수면의 질이 안 좋은 경우도 있다.”
-원인이 매우 다양한데? “그렇다. 문진해보면 주변 환경, 스트레스 등의 요인이 있고, 우울증,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등 다른 질환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두세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확인되는가 하면, 특별한 이유 없이 불면증을 겪는 환자도 있다. 보통 질환은 원인을 제거하면 치료돼야 하는데, 불면증은 그렇지 않다. 만성 불면장애가 있는 경우 원인을 제거해도 불면증이 지속된다. 예를 들어 층간 소음 때문에 불면증이 생겨 이사까지 갔는데 계속 잠을 못 잔다. 잠에 대한 걱정, 강박이 생겨서 불면증이 만성화된 거다. 이런 경우가 꽤 많은데, 치료가 쉽지 않다.”
-불면증도 고위험군이 있나?
“예민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각성도가 높은 편이다. 잠에서 잘 깬다는 뜻이다. 유전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가족력은 있다. 환경적으로 정상적인 수면이 어려운 사람도 고위험군으로 볼 수 있다.”
-불면증 진단 기준은? “잘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충분함에도 잠에 들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자주 또는 일찍 깨는 경우, 이로 인해 낮 활동 시간에 기능이 떨어지는 경우, 잠에 대한 걱정이 심한 경우 불면증으로 진단한다. 구체적으로는 30분이 지나도 잠들기 어려워하거나 수면 효율이 85% 미만일 때 불면증을 의심한다. 수면 효율은 자기 위해 누워 있는 시간 중 실제 잠든 시간의 비율을 뜻한다. 이외에 수면 설문지 점수도 진단에 참고한다. 실질적으로 중요한 건 환자의 주관적인 평가다. 주변에서 문제가 없다고 해도 환자가 불면증 때문에 힘들고 피곤해하면 불면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
-수면 패턴은 어떻게 파악할 수 있나? “불면증 환자에게 수면 시간을 물어보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대중없다’는 거다. 그만큼 불규칙하기 때문에 2주 정도 수면 일기를 쓰게 한다. 최근에는 스마트 워치도 많이 활용한다. 수면무호흡증이 의심될 때는 수면다원검사를 실시할 수도 있다.”
-잠이 안 와서 스마트폰을 한두 시간 사용하는데, 이 경우도 불면증인가? “자려고 노력해도 안 돼서 스마트폰을 본다면 불면증일 수 있다. 다만 정말 잠이 안 와서 인지, 퇴근 후나 주말에 일찍 자는 게 아쉬워서 스마트폰을 보다가 늦게 자는 것인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후자일 경우엔 스스로 취침 시간을 지연시키는 거다. 불면증이 아니다. 물론 이런 습관이 불면증을 불러올 순 있다. 적당히 사용하거나 밝기를 조절하는 것을 권한다.”
불면증 환자가 인지행동치료를 받기 전(위)과 후(아래)를 비교한 그래프. 파란색 막대가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 빨간색 막대는 실제 수면 시간을 뜻한다. 치료 후 약 한 달 만에 실제 수면 시간이 크게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이대서울병원 제공
-수면제를 꼭 먹어야 할까? “치료는 크게 약물, 비약물 치료 두 가지다. 당장 일상생활이 어렵고 우울증, 불안장애 등이 생길 정도로 불면증이 심하다면 수면제 사용을 고려한다. 수면제는 안전하게 사용해야 한다. 복용했을 때 부작용이 없었던 약을 찾아서 제때 정확한 양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사용하면 부작용 위험도 높아진다. 약을 쓰면서 부작용도 여부를 계속 확인하고, 증상이 개선됐을 때는 사용량을 줄여가야 한다.”
-비약물치료 효과는? “비약물치료는 환자가 불면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인지행동 치료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워 있어도 잠들기 어려울 때는 억지로 노력하지 말고 침실에서 나와서 몸을 이완시킬 수 있는 일들을 해볼 것을 권한다. 졸릴 때까지 책, TV를 보거나 퍼즐을 맞추는 식이다. 잠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른 일에 집중하다보면 오히려 잠이 잘 온다. 하루아침에 개선되진 않지만, 몇 번씩 반복하다 보면 잠드는 시간이 짧아질 수 있다. 실제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효과가 입증된 행동 치료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오디오북 듣는 걸 추천한다. 이밖에 잠들기 위해 누워있는 시간을 줄여 수면효율을 높여가는 방법이나 수면에 대한 잘못된 믿음, 강박을 교정해주는 것도 인지행동치료에 포함된다.”
-‘수면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란? “오늘 못 자면 내일 아무것도 못할 것처럼 생각하거나 잠을 못 자서 당장 생명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거라고 걱정하는 거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 못 잤다고 졸리지도 않은데 계속 누워있는 것도 삼가야 한다. ‘내일을 위해 빨리 자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오히려 각성을 일으켜 잠을 안 오게 한다. 마음을 비워라. 잠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버려야 잠이 찾아온다.”
-인지행동치료는 얼마나 받아야 하나? “환자마다 다르지만 보통 4회, 길면 8회다. 1~2개월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 불면증을 오래 앓았다면 치료도 오래 걸릴 수 있다. 당장 힘들 순 있으나, 나아진다는 생각으로 길게 보고 치료에 임하는 것이 좋다.”
-영양제, 식품도 도움이 될까? “연구를 통해 약간의 효과가 확인된 영양제는 있으나, 크게 도움은 안 된다고 본다. 위약 효과는 생길 수도 있다. 무언가 새로운 걸 먹으면 도움이 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단, 지나친 맹신과 의존은 금물이다. 개인차를 고려하지 않고 이것저것 먹다보면 부작용을 겪을 수 있고, 되레 영양제를 먹어야만 잠이 온다는 강박이 생길 수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치료제도 개발·사용되고 있는데?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수면효율을 계산하고 권장 수면시간 등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거다. 미국 일부에서 처방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이제 막 시작 단계다. 디지털치료제도 마찬가지로 환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프로그램을 잘 따라가야 효과를 볼 수 있다.”
-꼭 7~8시간씩 자야 할까? “보통 7시간 이상을 권하긴 하나, 사실 사람마다 개인차가 크다. 어린이들만 봐도 성인보다 더 많이 자야 한다. 타고난 숏 슬리퍼(short sleeper)가 있는 반면, 롱 슬리퍼(long sleeper)도 있다. 중요한 건 본인의 적정 수면 시간을 파악해 그에 맞게 자는 거다. 너무 적게 자면 안 되지만, 반대로 7~8시간에 너무 집착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잠에 대한 강박이 생겨 불면증을 겪을 위험이 있다.”
-성공을 위해 잠을 포기했다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말이다. 타고나기를 잠이 적은 사람들이 있지만 극히 일부다. 그런 발언들이 청소년들한테 영향을 준다. 삼가야 한다.”
-수면의 양과 질 중 어떤 게 더 중요할까? “무조건 ‘둘 다’다. 나눌 수 없다. 물론 적정 시간을 자는 건 중요하지만, 수면 시간이 길어도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그 시간만큼 쉬었다고 할 수 없다.”
-불면증 예방을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건 일정하게 자는 거다. 주중, 주말을 나눠 불규칙하게 자는 건 좋지 않다. 운동도 숙면에 도움이 된다. 반면 수면을 방해하는 카페인은 피해야 한다. 불면증이 의심되면 커피는 물론, 콜라, 술도 멀리할 필요가 있다. 잠자리에서 자주 시계를 보는 습관도 고치는 것이 좋다. 시간을 계속 확인하면 잠에 대한 집착, 불안함이 생겨 오히려 각성될 수 있다.”
이대서울병원 신경과 김지현 교수 / 이대서울병원 제공
김지현 교수는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한 후 동대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이대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겸 수면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전문 진료 분야는 수면장애와 뇌전증, 어지럼증 등이다. 불면증, 수면무호흡증, 몽유병, 하지불안증후군, 기면병 환자들을 주로 치료한다. 대한수면학회 교육이사, 대한수면연구학회 부회장을 맡아, 국민들에게 질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건강한 수면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도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