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트라우마 치료 명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현수 교수

불현듯 떠올라 숨을 턱 막히게 만드는 기억들이 있다. 그 기억 때문에 길을 걷다 주저앉는가 하면, 악몽을 꾸고 환청을 듣기도 한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한 번쯤 경험하는 증상이다. 안타깝게도 기억은 인간의 의지로 취사(取捨)할 수 없다. 어떤 사건이 뇌리에 박히면 잊으려고 안간힘을 써도 도통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트라우마 치료가 늦어지면 우울, 불안, 알코올중독과 같은 2차적인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트라우마 치료 명의 명지병원 김현수 교수를 만나 트라우마의 원인과 치료에 대해 들었다.
-트라우마의 개념이 모호한 것 같다. 어떻게 정의하나?
“한 개인이 자신이 속한 문화권 안에서 보통의 정신적·심리적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외부 사건의 충격과 경험, 또 그로 인해 나타나는 비적응적·이상적 증상과 행동을 트라우마 질환이라고 한다.”
-트라우마도 질환인가?
“누구나 조금씩 견디기 힘든 경험을 한다. 그런 경험이나 상처 하나하나를 모두 질환이라고 보긴 어렵다. 트라우마의 종류, 강도, 기간, 적응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기준에 해당될 때 하나의 질환이라고 표현한다.”
-트라우마에도 종류가 있나?
“급성 트라우마와 만성 트라우마로 나눌 수 있다. 최근에는 만성 트라우마가 주목받고 있다. 아동기 학대, 청소년기 학교 폭력, 성인이 된 후 겪은 성폭력 등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누적된 경우다. 이밖에 트라우마가 생긴 사건·사고의 수, 발생 시기, 신체적 외상 동반 여부 등에 따라서도 종류가 나뉜다. 트라우마 종류에 따라 치료 접근 방식도 달라진다.”
-어떤 사건·사고일수록 트라우마로 남을 위험이 큰가?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회복 역량이나 심리적인 힘을 넘어서는 위협, 특히 생명의 위협, 지위·자리에 대한 위협 등 큰 상실을 일으키는 위협과 협박들이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를 받아들이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성추행·성폭력 트라우마의 경우, 사건 이후 외출조차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감당 가능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자는 논의도 있었으나, 지금은 개개인의 주관적 고통을 인정해주는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객관적 기준뿐 아니라, 사람마다 다른 주관적 고통도 반영해야 한다는 거다.”
-개인차가 있다면 성격도 영향을 미치는가?
“트라우마가 잘 생기는 성격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건 개개인의 스트레스 상태다. 스트레스도 종류가 있는데, 고통만 되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나쁜 스트레스, 흔히 말하는 독성 스트레스는 사람을 힘들고 약해지게 만든다. 독성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들은 트라우마에도 더 취약하다. 가령 최근에 이별, 사별을 경험한 사람이 트라우마까지 생기면 더 아프고 더 많이 힘들어할 수 있다. 트라우마는 회복하는 힘이 중요한데,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들은 회복도 더딘 경향이 있다.”
-과거에 비해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은데?
“과거에 우리가 몰랐던,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현상 중에 트라우마로 인한 증상으로 해석되는 게 훨씬 많아졌다. 아동 학대 관련 트라우마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미국에서 ACE(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아동기 부정적 경험) 연구가 진행되면서, 아동기에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트라우마가 성인이 된 후 겪는 알코올중독,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성격장애, 자살과 같은 문제와 관련이 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연구 결과가 발표된 후로 우리 사회에 트라우마로 인한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재발견하게 됐다.”
-사건·사고의 당사자가 아니어도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을까?
“간접 경험, 간접 노출에 관한 이야기다. 현대사회에서는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잔혹하고 끔찍한 상황을 멀리 떨어져서도 접할 수 있게 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배가 침몰하는 과정이 실시간으로 보도됐고, 이태원 참사 때도 보도를 통해 사람들이 사건 현장을 다 보게 됐다. 이런 간접 경험과 노출이 뇌에 직접 경험과 유사한 부정적 회로를 형성하고 스트레스 물질을 쌓이게 한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간접 경험에는 당시 사건에 대해 자세한 증언을 듣는 것도 포함된다. 증언을 듣고 상상하는 것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될 수 있다. 사건·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과 이야기를 들은 사람의 뇌를 촬영한 결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둘 다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뇌 회로가 작동했다.”
-뇌 구조·기능과도 연관이 있나?
“부모로부터 학대당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의 뇌를 촬영한 트라우마 관련 연구가 있다. 검사 결과, 아동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학대를 당하지 않은 아이보다 뇌 용적이 줄어들고 특정 부위가 발달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면서 뇌세포막이 용해되고 뇌세포가 파괴된 탓이다. 트라우마가 마음의 상처를 넘어 뇌에 구조적 변화까지 일으킨다는 이야기다.”
-트라우마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은?
“깜짝 놀라는 놀람 반응, 나쁜 기억이 재현되는 플래시백, 트라우마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공포감 등은 모두 양성 증상이다. 음성 증상은 회피다. 트라우마로 인해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사고 장소에 가지 못하는 식이다. 가장 힘들어하는 건 침습적 사고(思考)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계속 생각나고, 관련성이 없음에도 관련성이 있는 것처럼 느낀다. 여름에 사고를 당했으면 여름이 돌아올 때마다 괴롭고, 자동차 사고를 겪었으면 자동차만 봐도 힘들어 한다. 이런 생각, 공포들이 일상생활마저 어렵게 한다.”
-식은땀을 흘리거나 숨이 가빠지기도 하던데?
“공포에 따른 반응이다. 트라우마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교감신경 부교감신경을 포함한 자율신경계도 큰 영향을 받는다. 식은땀이 나거나 눈이 커지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손에 땀이 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기억을 억눌러도 몸이 먼저 반응하곤 한다. ‘몸이 기억한다’는 말처럼 말이다.”
-트라우마의 개념이 모호한 것 같다. 어떻게 정의하나?
“한 개인이 자신이 속한 문화권 안에서 보통의 정신적·심리적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외부 사건의 충격과 경험, 또 그로 인해 나타나는 비적응적·이상적 증상과 행동을 트라우마 질환이라고 한다.”
-트라우마도 질환인가?
“누구나 조금씩 견디기 힘든 경험을 한다. 그런 경험이나 상처 하나하나를 모두 질환이라고 보긴 어렵다. 트라우마의 종류, 강도, 기간, 적응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기준에 해당될 때 하나의 질환이라고 표현한다.”
-트라우마에도 종류가 있나?
“급성 트라우마와 만성 트라우마로 나눌 수 있다. 최근에는 만성 트라우마가 주목받고 있다. 아동기 학대, 청소년기 학교 폭력, 성인이 된 후 겪은 성폭력 등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누적된 경우다. 이밖에 트라우마가 생긴 사건·사고의 수, 발생 시기, 신체적 외상 동반 여부 등에 따라서도 종류가 나뉜다. 트라우마 종류에 따라 치료 접근 방식도 달라진다.”
-어떤 사건·사고일수록 트라우마로 남을 위험이 큰가?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회복 역량이나 심리적인 힘을 넘어서는 위협, 특히 생명의 위협, 지위·자리에 대한 위협 등 큰 상실을 일으키는 위협과 협박들이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를 받아들이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성추행·성폭력 트라우마의 경우, 사건 이후 외출조차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감당 가능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자는 논의도 있었으나, 지금은 개개인의 주관적 고통을 인정해주는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객관적 기준뿐 아니라, 사람마다 다른 주관적 고통도 반영해야 한다는 거다.”
-개인차가 있다면 성격도 영향을 미치는가?
“트라우마가 잘 생기는 성격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건 개개인의 스트레스 상태다. 스트레스도 종류가 있는데, 고통만 되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나쁜 스트레스, 흔히 말하는 독성 스트레스는 사람을 힘들고 약해지게 만든다. 독성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들은 트라우마에도 더 취약하다. 가령 최근에 이별, 사별을 경험한 사람이 트라우마까지 생기면 더 아프고 더 많이 힘들어할 수 있다. 트라우마는 회복하는 힘이 중요한데,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들은 회복도 더딘 경향이 있다.”
-과거에 비해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은데?
“과거에 우리가 몰랐던,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현상 중에 트라우마로 인한 증상으로 해석되는 게 훨씬 많아졌다. 아동 학대 관련 트라우마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미국에서 ACE(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아동기 부정적 경험) 연구가 진행되면서, 아동기에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트라우마가 성인이 된 후 겪는 알코올중독,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성격장애, 자살과 같은 문제와 관련이 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연구 결과가 발표된 후로 우리 사회에 트라우마로 인한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재발견하게 됐다.”
-사건·사고의 당사자가 아니어도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을까?
“간접 경험, 간접 노출에 관한 이야기다. 현대사회에서는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잔혹하고 끔찍한 상황을 멀리 떨어져서도 접할 수 있게 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배가 침몰하는 과정이 실시간으로 보도됐고, 이태원 참사 때도 보도를 통해 사람들이 사건 현장을 다 보게 됐다. 이런 간접 경험과 노출이 뇌에 직접 경험과 유사한 부정적 회로를 형성하고 스트레스 물질을 쌓이게 한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간접 경험에는 당시 사건에 대해 자세한 증언을 듣는 것도 포함된다. 증언을 듣고 상상하는 것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될 수 있다. 사건·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과 이야기를 들은 사람의 뇌를 촬영한 결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둘 다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뇌 회로가 작동했다.”
-뇌 구조·기능과도 연관이 있나?
“부모로부터 학대당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의 뇌를 촬영한 트라우마 관련 연구가 있다. 검사 결과, 아동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학대를 당하지 않은 아이보다 뇌 용적이 줄어들고 특정 부위가 발달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면서 뇌세포막이 용해되고 뇌세포가 파괴된 탓이다. 트라우마가 마음의 상처를 넘어 뇌에 구조적 변화까지 일으킨다는 이야기다.”
-트라우마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은?
“깜짝 놀라는 놀람 반응, 나쁜 기억이 재현되는 플래시백, 트라우마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공포감 등은 모두 양성 증상이다. 음성 증상은 회피다. 트라우마로 인해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사고 장소에 가지 못하는 식이다. 가장 힘들어하는 건 침습적 사고(思考)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계속 생각나고, 관련성이 없음에도 관련성이 있는 것처럼 느낀다. 여름에 사고를 당했으면 여름이 돌아올 때마다 괴롭고, 자동차 사고를 겪었으면 자동차만 봐도 힘들어 한다. 이런 생각, 공포들이 일상생활마저 어렵게 한다.”
-식은땀을 흘리거나 숨이 가빠지기도 하던데?
“공포에 따른 반응이다. 트라우마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교감신경 부교감신경을 포함한 자율신경계도 큰 영향을 받는다. 식은땀이 나거나 눈이 커지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손에 땀이 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기억을 억눌러도 몸이 먼저 반응하곤 한다. ‘몸이 기억한다’는 말처럼 말이다.”

-치료가 필요한 이유는?
“환자가 그 기억에 다시 맞서는 힘이 생기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초기에 적극적인 치료는 트라우마 증상이 장기화되는 것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침습적 사고, 경험의 재현, 환각, 환청과 같은 증상은 상담·약물 치료나 환자들을 안정시키는 기법 등의 정신건강의학과적 치료에 잘 반응한다.”
-‘시간이 약’이라고들 말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트라우마 증상이 약화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일상생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무언가를 보거나 듣기만 해도 시공간을 초월해 그 때가 생각나서 두려움을 느낀다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오해, 착각으로 인한 행동으로 2차, 3차 사건들이 생겨날 수도 있다. 이런 게 또 트라우마가 되고 장기화돼 고착되면 망상에 의해 특정 행동 자체를 못하게 된다. 그래서 초기에 치료받을 것을 권하는 거다.”
-트라우마로 인해 다른 질환이 생길 수도 있나?
“흔히 동반되는 문제가 우울이고, 알코올, 마약 관련 문제도 보고된다. 트라우마가 재현되는 순간 감각을 차단하고 전환시키기 위해 술, 마약처럼 중독을 일으키는 것에 빠지는 거다. 트라우마로 인한 공포 때문에 무언가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나?
“트라우마 치료는 ‘안전-통제권 회복-증상 치유-재연결’이 큰 흐름이다. 우선 환자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환자 자신이 이 치료의 주인이고, 자신한테 치료 통제권이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이후 증상에 따라 효과가 입증된 치료들을 시행한다. 그 다음은 재연결이다. 그동안 트라우마로 인해 차단한 것들, 예컨대 안 가고, 안 만나고, 안 했던 것들을 다시 연결하는 과정을 통해 회복에 이른다.”
-어떤 치료법들이 있나?
“환각, 불안, 과도한 긴장감 등 환자가 힘들어하는 증상이 있으면 그에 대한 약물 치료를 진행하고, 약물 치료만으로 충분치 않으면 기억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된 치료를 실시한다.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노출 치료도 있다.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법은 이제 막 꽃 피웠다고 할 정도로 많은 치료법들이 나오고 있다. 전통적인 면담 치료부터 인지행동치료, 약물 치료, 안구운동 탈감작 재처리요법, 호흡법 등 다양한 치료들이 있다. 여러 치료를 시행하고 환자가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점차 매뉴얼화되고 있다.”
-치료가 어려운 트라우마가 있나?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는 모두 치료가 어렵다.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몸에 좋지 않은 습관들을 오랜 기간 이어오다가 병에 걸리면 습관이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길을 걷다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는 건 자신과 어떤 연관성을 찾거나 원인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사건·사고일수록 수용하고 치유하고 재기하는 데 더 어려움이 있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과 대화할 때 주의할 사항이 있다면?
“트라우마 환자들을 상담해보면 ‘함께했으면’ ‘기억해줬으면’ ‘탓하지 않았으면’이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특히 비난 받는 걸 가장 힘들어 한다. ‘그러게 왜’처럼 비난하는 말들이 치료와 회복을 어렵게 한다. 비난 못지않게 힘들게 만드는 말이 ‘금방 다 사라질 거야’와 같이 별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하는 거다. 그런 말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사회적 지지가 매우 중요한 치료 요인이다. 예후와도 큰 관련이 있다. 주변에서 편을 들어주거나 응원하는 분위기에 있는 사람들은 증상도 빨리 좋아진다. 세상이 더 안전하다고 느껴지고 두려움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사건·사고에 대해 사회적 인식과 여론이 안 좋게 형성되면 치료에 큰 어려움이 생긴다. 편이 없고 사회적 지지가 없으니 여전히 외부 세상이 두렵게 느껴지는 거다.”
-‘기억해줬으면’이라고 했는데, 트라우마는 잊어야 좋은 것 아닌가?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정도로 개인적·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인데,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된다면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 입장에선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잊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같은 트라우마가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어떤 사건·사고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주변에서 기억해줄 필요가 있다.”
-끝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에게 한 마디.
“진료적 차원에서 트라우마 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용기를 갖고 잘 치료받는 것이다. 개인적·사회적 트라우마로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데, 그 어려움이 환자가 마음이 약하거나 성격이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누구나 살면서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고, 그로 인해 병원을 찾는 사람도 많다. 감당 어려운 트라우마를 혼자 처리하려고 하면 더 아파지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스트레스가 중첩될 경우 정신과 인격이 파괴될 수도 있다. 치료를 위해 용기를 냈으면 한다. 주변에 안전하게 도와줄 사람들이 꽤 있다는 말도 하고 싶다. 치료를 받으며 본인을 지지해주는 연계망을 잘 만들면 덜 고통 받으면서 회복할 수 있다.”
“환자가 그 기억에 다시 맞서는 힘이 생기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초기에 적극적인 치료는 트라우마 증상이 장기화되는 것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침습적 사고, 경험의 재현, 환각, 환청과 같은 증상은 상담·약물 치료나 환자들을 안정시키는 기법 등의 정신건강의학과적 치료에 잘 반응한다.”
-‘시간이 약’이라고들 말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트라우마 증상이 약화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일상생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무언가를 보거나 듣기만 해도 시공간을 초월해 그 때가 생각나서 두려움을 느낀다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오해, 착각으로 인한 행동으로 2차, 3차 사건들이 생겨날 수도 있다. 이런 게 또 트라우마가 되고 장기화돼 고착되면 망상에 의해 특정 행동 자체를 못하게 된다. 그래서 초기에 치료받을 것을 권하는 거다.”
-트라우마로 인해 다른 질환이 생길 수도 있나?
“흔히 동반되는 문제가 우울이고, 알코올, 마약 관련 문제도 보고된다. 트라우마가 재현되는 순간 감각을 차단하고 전환시키기 위해 술, 마약처럼 중독을 일으키는 것에 빠지는 거다. 트라우마로 인한 공포 때문에 무언가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나?
“트라우마 치료는 ‘안전-통제권 회복-증상 치유-재연결’이 큰 흐름이다. 우선 환자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환자 자신이 이 치료의 주인이고, 자신한테 치료 통제권이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이후 증상에 따라 효과가 입증된 치료들을 시행한다. 그 다음은 재연결이다. 그동안 트라우마로 인해 차단한 것들, 예컨대 안 가고, 안 만나고, 안 했던 것들을 다시 연결하는 과정을 통해 회복에 이른다.”
-어떤 치료법들이 있나?
“환각, 불안, 과도한 긴장감 등 환자가 힘들어하는 증상이 있으면 그에 대한 약물 치료를 진행하고, 약물 치료만으로 충분치 않으면 기억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된 치료를 실시한다.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노출 치료도 있다.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법은 이제 막 꽃 피웠다고 할 정도로 많은 치료법들이 나오고 있다. 전통적인 면담 치료부터 인지행동치료, 약물 치료, 안구운동 탈감작 재처리요법, 호흡법 등 다양한 치료들이 있다. 여러 치료를 시행하고 환자가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점차 매뉴얼화되고 있다.”
-치료가 어려운 트라우마가 있나?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는 모두 치료가 어렵다.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몸에 좋지 않은 습관들을 오랜 기간 이어오다가 병에 걸리면 습관이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길을 걷다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는 건 자신과 어떤 연관성을 찾거나 원인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사건·사고일수록 수용하고 치유하고 재기하는 데 더 어려움이 있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과 대화할 때 주의할 사항이 있다면?
“트라우마 환자들을 상담해보면 ‘함께했으면’ ‘기억해줬으면’ ‘탓하지 않았으면’이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특히 비난 받는 걸 가장 힘들어 한다. ‘그러게 왜’처럼 비난하는 말들이 치료와 회복을 어렵게 한다. 비난 못지않게 힘들게 만드는 말이 ‘금방 다 사라질 거야’와 같이 별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하는 거다. 그런 말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사회적 지지가 매우 중요한 치료 요인이다. 예후와도 큰 관련이 있다. 주변에서 편을 들어주거나 응원하는 분위기에 있는 사람들은 증상도 빨리 좋아진다. 세상이 더 안전하다고 느껴지고 두려움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사건·사고에 대해 사회적 인식과 여론이 안 좋게 형성되면 치료에 큰 어려움이 생긴다. 편이 없고 사회적 지지가 없으니 여전히 외부 세상이 두렵게 느껴지는 거다.”
-‘기억해줬으면’이라고 했는데, 트라우마는 잊어야 좋은 것 아닌가?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정도로 개인적·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인데,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된다면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 입장에선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잊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같은 트라우마가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어떤 사건·사고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주변에서 기억해줄 필요가 있다.”
-끝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에게 한 마디.
“진료적 차원에서 트라우마 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용기를 갖고 잘 치료받는 것이다. 개인적·사회적 트라우마로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데, 그 어려움이 환자가 마음이 약하거나 성격이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누구나 살면서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고, 그로 인해 병원을 찾는 사람도 많다. 감당 어려운 트라우마를 혼자 처리하려고 하면 더 아파지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스트레스가 중첩될 경우 정신과 인격이 파괴될 수도 있다. 치료를 위해 용기를 냈으면 한다. 주변에 안전하게 도와줄 사람들이 꽤 있다는 말도 하고 싶다. 치료를 받으며 본인을 지지해주는 연계망을 잘 만들면 덜 고통 받으면서 회복할 수 있다.”

김현수 교수는
중앙대 의대를 졸업하고 아주대의료원을 거쳐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안산시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경기도 광역자살예방센터, 경기도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서울시 강서구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센터장으로도 활동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초기 통합재난심리센터단 단장을 맡았다. 김 교수는 환자 진료와 함께 다양한 사회적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여러 참사 관련 트라우마 환자를 지원하기 위해 강의를 펼치고,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과 느린 학습자와 경계성 지능 청년들의 사회 참여 실현학교 ‘청년행복학교 별’도 설립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열린 ‘제52회 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중앙대 의대를 졸업하고 아주대의료원을 거쳐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안산시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경기도 광역자살예방센터, 경기도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서울시 강서구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센터장으로도 활동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초기 통합재난심리센터단 단장을 맡았다. 김 교수는 환자 진료와 함께 다양한 사회적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여러 참사 관련 트라우마 환자를 지원하기 위해 강의를 펼치고,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과 느린 학습자와 경계성 지능 청년들의 사회 참여 실현학교 ‘청년행복학교 별’도 설립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열린 ‘제52회 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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