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환자 약 쪼개 먹으라 부추기나… ‘십(十)자’ 새겨진 전립선 약, 제약사 노림수?

입력 2024.05.14 15:06
약
피나스테리드 5mg 전립선비대증 치료제 / 약학정보원 홈페이지
탈모 환자들에겐 비싼 약 값이 탈모만큼이나 큰 스트레스다. 잘 알려졌다시피 탈모 약은 유전, 노화가 원인일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인터넷상에는 탈모 약값을 아낄 수 있다는 여러 편법들이 공유되곤 한다.

‘전립선비대증 약 쪼개 먹기’ 역시 그런 편법들 중 하나다. 개중엔 전립선비대증 약 급여 적용 대상인 고령의 아버지, 지인 등에게 부탁해 싼 값에 약을 구하거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전립선비대증 약을 몰래 사고파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제약사들이 해당 약에 십자 무늬를 새겨 넣은 것 또한 약을 쪼개서 먹는 탈모 환자들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 쪼개 먹으면 오리지널 약 10분의 1 가격… 대리 처방 의심도

탈모 환자들이 먹는 전립선비대증 약 ‘프로스카’는 탈모 약 ‘프로페시아’와 동일한 피나스테리드 성분이다. 성분만 보면 같은 약 같지만, 두 약은 피나스테리드 함량이 각각 5mg(프로스카), 1mg(프로페시아)으로 5배나 차이 난다. 성분만 동일할 뿐 엄연히 다른 약이라는 뜻이다. 함량이 달라지면 효과도 부작용도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연유로 탈모 환자들은 5mg짜리 프로스카를 구매한 뒤 다섯 조각으로 쪼개 먹는다. 정확히 5등분하기 어렵다보니 4등분해서 먹는 경우도 많다.

탈모 환자들이 약을 쪼개는 번거로움까지 감수하면서 프로스카를 먹는 이유는 결국 가격 때문이다. 프로스카의 가격은 1정(T) 당 725원, ‘탈모 성지’로 불리는 약국가에서는 800원이다. 5등분하면 1정 당 160원, 4등분해도 200원이 된다. 같은 약국가에서 오리지널 탈모 약 프로페시아는 1정 당 1600원대, 제네릭(복제약)은 300~600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30일치(30정)로 계산하면 프로페시아는 4만8000원대, 제네릭은 9000~1만8000원대, 프로스카는 5000원대 내외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약을 쪼개 먹는 대신, 오리지널 약의 10분의 1, 제네릭의 절반 또는 그보다 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셈이다. 프로스카 제네릭의 경우 오리지널 약보다 저렴한 약들도 있다. 여기에 전립선비대증 급여 기준(국제전립선증상점수 최소 8점 이상이면서 초음파 검사 상 전립선 크기가 30ml 이상이거나, 직장수지검사에서 중등도 이상의 크기로 전립선이 비대해 있거나, 혈청 전립선특이항원검사 수치가 1.4ng/ml 이상인 경우)까지 충족하면 약값은 더 떨어진다.

실제 전립선비대증으로 비뇨의학과를 찾는 환자들 중 대리 처방이 의심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비뇨의학과 원장은 “필요 이상으로 약을 많이 처방해달라고 하거나, 약을 처방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약이 부족하다’, ‘약을 잃어버렸다’며 자주 병원에 찾아온다”며 “전립선비대증 환자는 급여 적용이 가능한 점을 이용해 대리로 약을 싸게 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 “상술, 오해일으킬 수 있어”… 제약사 “그런 의도 아냐” 반박

우연찮게도 피나스테리드 5mg 전립선비대증 약 중에는 정제에 십(十)자 무늬가 새겨진 약들이 많다. 약학정보원 홈페이지 확인 결과, 대웅바이오, HK이노엔, 현대약품, 일양약품, 보령 등 시중에 판매 중인 프로스카 제네릭 20여개에 이처럼 십자로 분할선이 들어가 있다. 타원형으로 된 약에 세로줄 4개가 들어간 약도 있다. 전립선비대증 약을 처방받아 쪼갠 뒤 탈모약으로 먹는 환자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앙대병원 피부과 김범준 교수는 “탈모 환자들이 약을 쉽게 자르게 하려는 일종의 상술”이라며 “이렇게 자른 약을 서로 나눠먹거나 개인 간 거래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제약사 의도와 상관없이 환자들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지솔약국 오인석 약사는 “약에 특정 모양을 넣는 것은 제품명을 새기거나 약을 식별하기 위한 의도”라면서도 “굳이 십자 모양을 새긴 건 4등분하기 위한 목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들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환자 입장에서는 오해할 수 있다”고 했다.

제약사들은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저용량이 필요한 전립선비대증 환자나 약의 응집력 등을 고려한 것일 뿐, 탈모 환자를 염두에 두고 분할선을 넣진 않았다는 설명이다. A제약사 관계자는 “저용량에 대한 수요가 있지만 모든 용량의 약을 만들 순 없으니 분할선을 넣는 것”이라며 “탈모 환자들이 약을 잘라 먹기 좋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며,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굳이 그렇게 만들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십자 무늬는 다른 약에도 많고, 게다가 탈모 약은 5분의 1 용량인데 해당 약에는 십자 무늬가 들어가 있지 않나”라며 “이런 점만 봐도 그런 지적은 잘못됐다”고 했다. B제약사 관계자 또한 “타정(약을 압축해 일정한 모양으로 만드는 작업) 과정에서 약 응집력을 위해 모양을 넣은 것이지, 탈모 환자를 고려한 건 아니다”며 “약은 십자 무늬가 없어도 자를 수 있다”고 말했다.

◇ 용량 불규칙, 효과 떨어져… 가루 날리면 여성에게 위험

전문가들은 약이 어떻게 만들어졌든 환자가 임의로 쪼개서 먹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십자 무늬를 따라 자른다고 해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용량을 등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정확히 4분의 1로 잘라도 본래 용량인 1mg이 아닌 1.25mg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김범준 교수는 “효과를 보려면 약물 농도가 일정해야 하는데, 환자가 직접 잘라서 먹으면 농도가 들쑥날쑥해진다”며 “1.25mg 용량은 장기 데이터가 없을뿐더러, 과량 복용할 경우 성기능 저하, 감정 변화 등과 같은 부작용 발생 위험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약을 쪼개는 과정에서 공중에 흩어진 약 가루가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위험 또한 배제할 수 없다. 피나스테리드는 남성호르몬을 통제하는 성분으로, 피부, 호흡기 등을 통해 가임기 여성 또는 임신 중인 여성에게 흡수될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김 교수는 “코팅된 약이 쪼개지는 순간 공중에 약이 분말 형태로 떠다니고, 계속 쌓이면 피부나 호흡기로 흡수되는 양이 늘어날 수 있다”며 “집에서 자르면 함께 살고 있는 여성 가족구성원에게, 직장에서 자르면 여직원에게, 약국에서 잘라달라고 하면 여성 약사나 약국을 출입하는 여성 손님에게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약이 본래 목적과 다르게 쓰이지 않으려면 병원에서 올바르게 처방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오인석 약사는 “피나스테리드 5mg 전립선비대증 약은 의사가 처방하는 전문의약품”이라며 “결국 의사가 잘 처방하는 것이 관건이다”고 말했다. 제약사 관계자 또한 “전립선비대증 치료를 위해 만든 약이 제대로 처방되지 않는 건 의사 잘못”이라며 “현장에서 정확한 소견에 따라 진단·처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