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 갱년기까지도 갈 수도… 엄마도 '100일 기념' 마음 점검 필요"

입력 2023.10.16 08:00

'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산후우울증 명의' 일산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민경 교수

열 달 동안 아이를 기다린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대부분의 여성은 출산 후 심한 우울감을 느낀다. 거의 매년 산후우울증 산모의 자살사건이 발생할 정도다. 그러나 여전히 산후우울증은 예민하고 유난스러운 여자의 문제로 여겨지거나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일 정도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산후우울증은 만성화될 수 있고, 갱년기 우울증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단 건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저출산시대에 출산을 마친 이들의 산후우울증 관리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일산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민경 교수에게 산후우울증과 그 치료에 대해 들어봤다.

김민경 교수
일산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민경 교수​/일산차병원 제공
-산후우울증이란 어떤 질환인가?
산후우울증은 우울증의 유형 중 하나다. '산후'라고는 하지만 출산 전부터 출산 후 시기에 나타나는 우울증 전반을 얘기한다. 교과서적인 진단은 출산 4주 이후부터 발생하는 2~3개월 사이에 발생하는 우울증을 말한다. 그러나 출산 후 어느 시점이 되면 완전히 몸이 회복되는 게 아니다보니 보통은 출산 전부터 출산 후 6개월 이내에 발생한 우울증을 산후우울증으로 본다. 개인차가 큰 편이다. 다른 유형의 우울증보다 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고, 부담감이나 심리적으로 혼란을 더 많이 겪는 특징이 있다.

-원인이 무엇인가?
우울증 자체가 몸과 마음의 변화 등으로 인한 감정적 어려움인데, 임신·출산을 하면 약 1년간 몸과 마음이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게다가 출산을 하면 임신 기간 중 멈춰 있던, 생리 주기에 따른 호르몬 변화가 한 번에 몰려온다. 열 달 분량의 호르몬 변화가 한꺼번에 발생하는 거다. 여기에 갑상선 호르몬 등 다른 기관의 호르몬 변화까지 한꺼번에 발생한다. 이 상태에서 출산을 앞두고 생긴 불안감,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 자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출산 후 몸의 변화와 통증, 육아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 등이 더해지니 산후우울증이 생긴다.

-산후우울감과 다른 건가?
산후우울감과 달리 산후우울증은 질환이다. 출산 직후엔 여성호르몬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급하강해 출산 후 5일까지 심하게 우울하고, 혼란스러워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등의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산후우울감이다. 질병이라 보긴 어렵다. 산후우울감은 산모의 80~90%가 겪는다.

-산후우울감이 아닌 산후우울증을 의심해야 증상은?
산후우울감이 생기는 이후에도 2주 이상 우울증상이 지속되고, 그로 인한 기능저하가 발생하면 산후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산후우울증이 있으면 계속된 긴장감, 강박 등으로 인해 우울하고 무기력한 상태를 보인다. 아이를 보느라 잠도 자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해 너무 피곤한데 잠을 못 자는 불면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잠을 잘 힘까지 써버려 각성된 상태로 피로와 우울이 계속 쌓여 불안이 높은 상태가 된 것이다.

그 외 의심 증상으로는 ▲작은 실수에도 '나는 엄마 자격이 없다'며 자책한다거나 아이를 봐도 행복하지 않은 경우 ▲아이를 탓하며 화를 내게 되는 경우 ▲아이와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고 ▲나만 사라지면 모든 안 좋은 상황이 해결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경우 ▲나쁜 충동이 반복되는 경우 ▲희망이 없다는 생각만 드는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한 우울감과 불안을 느끼는 경우 등이라면 산후우울증일 가능성이 크다. 온라인 등에 있는 산후우울증 증상들만으로는 산후우울증을 판단하긴 어렵다. 이는 문제인식을 위한 보조도구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김민경 교수
산후우울증은 산후우울감과 다르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일산차병원 제공
-산후우울증은 산후우울감처럼 저절로 나아지지 않나?
산후우울증은 자연스럽게 낫기 어렵다. 산후우울증이 자연스레 사라지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야 한다. 그런데 육아는 밤낮없이 계속되고, 아이가 자라며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 엄마는 더 많은 힘이 든다. 몸과 마음이 쉴 틈 없이, 더 강도 높은 노동을 하는 상태가 된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에선 산후우울증이 저절로 해결되기는 불가능하다. 산후우울증도 우울증의 한 종류이다. 치료가 필요하다.

-치료는 어떻게 하나?
다른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정신 치료(상담 치료, 인지행동 치료 등), 약물치료, 전기자극 치료 등 다양한 치료법이 사용된다. 중증도에 따라 치료법은 달라진다. 증상이 중등도 이상이라 자살이나 자해 위험이 있다면 약물치료를 바로 시작하고, 자신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매우 심각한 상태면 입원치료도 한다. 그 외 대부분은 정신치료를 진행한다. 가족과 함께 상담하거나 산후우울증을 겪는 이들이 서로 마음을 공유하고 위로하는 등의 방식이 이에 해당한다. 전기자극 치료는 약물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때 주로 사용한다.

-치료를 할 때 배우자나 가족의 역할이 중요한가?
그렇다. 배우자와 가족이 산후우울증 환자의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특히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다. 산후우울증을 앓는 환자의 배우자나 가족을 보면, '원래 다들 그 정도로 힘들다'거나 '일도 하고 왔는데 애도 보고 집안일도 해야 하냐'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산후우울증 치료를 할 때 배우자나 가족을 함께 상담하고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는 거다. 이들이 환자를 위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고 모르고는 큰 차이가 있다.

-배우자는 환자를 어떻게 도와야 하나?
남자도 아이가 태어나면 호르몬이 변해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유대감이 생기는 등 변화가 일어난다. 동시에 아이의 탄생은 부부간의 심리적·정신적 관계를 변화시키기에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부부간 유대감이 끊길 수 있고, 갈등이 심화해 산후우울증을 악화할 수 있다. 배우자는 상대적으로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는 아내를 의도적으로 지지해주고, 감정을 자주 살펴야 한다.

배우자는 산후우울증이 내 아내만의 문제가 아니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임을 인지하고, 아내의 심리적·신체적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단순히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육아든 집안일이든 구체적이고 특정한 일을 담당해 아내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산후우울증은 연속된 불확실성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산후우울증 환자가 완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물리적으로 엄마와 아이를 분리하는 시간을 줄 필요도 있다. 엄마도 제대로 된 휴식이 필요하다. 정기적으로 물리적인 자유시간을 주는 것만으로도 산후우울증은 많이 개선된다.

-가족 외 주변인이 도움을 줄 수도 있나?
산후우울증은 환경과 시간이 제한되고, 지지체계가 부족한 데서 발생하는 경향이 크다. 아이를 낳고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겪을 땐 세상에서 고립된 느낌을 받게 되기에 이때, 주변인이 자주 연락을 하는 등 교류를 지속하면 산후우울증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김민경 교수
산후우울증 치료는 배우자와 가족 등 가까운 주변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산차병원 제공
-산후우울증 치료도 '골든타임'이 있나?
산후우울증 역시 다른 치료와 마찬가지로 치료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다만, 최적의 치료시기인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출산 후 3개월 시점에 일단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길 권한다.

육아엔 '100일의 기적'이란 말이 있다. 출산 후 3개월쯤인 100일이 지나면 아이도 초반보단 돌보기 쉬워지고, 엄마도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해 육아에 적응한 상태가 된다. 그런데 이 시점에도 계속 몸과 마음이 힘들다면 반드시 배우자와 함께 병원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산후우울증 조기진단과 치료가 가능하다.

출산 후 힘듦을 당연하게 여기고, 아이와 가족을 챙기다보면 정작 '나'를 챙기기는 어려워 자신이 산후우울증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해 산후우울증이 만성화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출산 후 6개월까진 몸과 마음이 힘들어 그 이후에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출산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엔 산후우울증이 이미 만성우울증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산모 5명 중 1명은 산후우울증이 만성 우울증으로 진행한 상태로 병원을 찾는다. 갱년기 우울증 환자를 상담해봐도 우울증의 시발점이 산후우울증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아이가 어느 정도 안정되는 출산 후 100일이 되면 엄마 마음 건강도 챙겨야 한다.

-산후우울증을 예방할 방법은 없을까?
산후우울증은 예방할 수 있다.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임신, 출산을 한 사람은 몸의 큰 변화를 겪는다. 몸의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 호르몬 변화에 따른 우울감은 당연한 일이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니며, 자꾸 우울한 방향으로만 빠질 필요가 없다는 걸 미리 알아두면 좋다. 출산 후 감정적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인지하고, '좋은 육아'를 해야만 한다는 부담이나 강박을 낮추면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일도 산후우울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임신 전 우울증 병력이 있거나 임신 중 우울·불안이 심하면 산후우울증 발생 위험이 크기에 미리 의사와 상담하고 대비하면 산후우울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산후우울증 환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엄마가 되는 과정을 겪는 모든 여성은 산후우울증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산후우울증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며, 치료하고 회복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산후우울증을 겪는 많은 엄마가 힘든 만큼 자책을 많이 하는데 거기에 매몰되지 않길 바란다. 분명히 충분히 잘해내고 있을 것이다. 지금 아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보고, 아이가 주는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길 바란다. 산후우울증을 겪는다 해서 엄마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힘들면 전문가와 주변의 도움을 받아라. 충분히 나아질 수 있다.

김민경 교수 프로필
김민경 교수는
차의과학대학교 일산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으로 일산차병원 국제진료센터 부센터장, 일산차병원 적정진료부실장을 맡고 있다. 대한불안의학회 학술위원, 공황범불안장애연구회 간사,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교육간사도 역임하고 있다.

김 교수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 연구자상(2013), 대한불안의학회 우수 포스터 발표상(2012) 등을 수상한 산후우울증 분야에서 주목받는 명의다. 현재 일산차병원에서 여성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불면증, 심리적 트라우마, 암환자 정신건강를 전문적으로 진료하고 있다. 분당차병원에서 쌓은 다수의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들의 마음 건강 챙김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