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랑] 선한 사람들이 모여 이뤄낸 페루 소녀의 기적 이야기

“팔 절단하라”던 절망의 순간
하이디 로리아니씨가 처음 암 진단을 받은 건 2012년 6월, 12살이던 때였습니다. 로리아니씨는 오른쪽 팔에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통증이 6개월간 지속되고 어깨까지 딱딱하게 굳는 증상이 발생하자, 가족들이 ‘뭔가 잘못됐다’는 예감에 현지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을 데려갔다고 합니다. 정밀 검사 결과, “어깨에 암이 생겨 팔을 잘라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이뤄진 ‘기적’
로리아니씨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어린 나이었지만 삶이 무의미해지는 걸 느꼈고, 살아야 할 필요성도 못 느꼈다고 합니다. 이때 그를 붙잡은 건 아버지였습니다.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러 온 마을 성당의 신부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던 신부님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로리아니씨의 상황을 올리며 한국에서 자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열흘이 흘렀고, 치료해주겠다는 병원을 찾았습니다.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정양국 교수였습니다.

로리아니씨의 사연은 점차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사연을 접한 사람들은 각자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항공료와 체재비를, 신원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서울성모병원에 10억을 기부했던 70대 노 신사는 로리아니 부녀의 생활비를 전면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서울성모병원은 로리아니 부녀의 빠른 비자 발급을 위해 진료 예약 확인서를 보냈습니다. 비자가 발급되자마자, 로리아니 부녀는 비행기에 올라 2012년 6월 서울성모병원으로 왔습니다. 정 교수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선한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협력해 한 소녀를 살린 것”이라고 말합니다.

팔 보존 위한 치료 시작
로리아니씨의 치료는 암 진단을 받은 지 20일 만에 시작됐습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정밀 검사부터 시행했습니다. 조직 검사 결과, 골육종으로 확진됐습니다. 골육종은 뼈 또는 뼈 주변의 연골 등 유골 조직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입니다. 7.3cm 크기의 종양이 오른쪽 어깨부터 팔꿈치 관절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히 전이는 없었습니다.

치료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종양이 워낙 크다 보니, 로리아니씨의 팔을 보존하는 적합한 수술과 치료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일반적으로 종양이 발생하면, 암세포가 있는 부분만 수술로 제거하면 됩니다. 하지만 로리아니씨의 경우, 종양 침범 부위가 광범위해 어깨뼈와 팔꿈치 관절을 보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의 팔을 보존하기 위해 정 교수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골육종이 항암 치료에 잘 반응하는 종양이었기에, 정 교수는 항암 치료로 암 크기를 줄인 뒤, 광범위 절제술로 어깨뼈와 팔꿈치 관절을 보존하기로 했습니다. 항암 치료는 4주 단위로 네 번 시행했습니다. 그 후, 종양을 절제하는 광범위 종양절제술과 동종골(타인의 뼈)을 이용해 재건했습니다. 동종골은 한국장기조직위원회에서 뇌사 장기기증자의 것을 기증받았습니다. 수술 후 재발을 막기 위한 항암 치료도 추가적으로 두 번 시행했습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영양부족으로 뇌증 겪기도
수술은 잘 됐지만, 로리아니씨의 힘겨운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입에 맞지 않은 한국 음식으로 힘들었다고 합니다. 항암 치료와 수술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과 영양 섭취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국 음식이 익숙지 않았던 로리아니씨는 입맛이 없어 잘 먹지 못했습니다. 영양 부족으로 인해 뇌증(일시적 정신 혼란 상태)을 겪기도 했습니다. 뼈를 재건한 피부 창상도 잘 낫지 않았습니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피부 재생이 느렸기 때문입니다. 피부가 벌어진 곳을 통해 균이 침투하면 염증이 생겨 심할 경우 동종골을 제거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또 다시 선한 사람들이 마음을 모았습니다. 주한 페루 대사관 직원을 비롯한 한국 체류 페루인들이 힘을 합쳤습니다. 로리아니씨가 외롭지 않게 번갈아 가며 병문안해 말동무가 되어 줬습니다. 페루 전통 음식을 손수 요리해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로리아니씨는 아버지와 함께 한국에서 15개월간 체류하며 치료를 받았는데요. 치료 기간이 긴 만큼, 항암 치료와 수술로 퇴원과 외래진료가 잦았습니다. 로리아니씨의 빠른 회복을 위해, 서울성모병원에서는 로리아니씨 부녀에게 기숙사를 무상으로 제공했습니다. 당시 로리아니씨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재정 여건상 한국까지 동행할 수 없었지만 매일 저녁마다 영상 통화로 힘을 보탰습니다. 15개월을 그렇게 낯선 땅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모든 치료를 마친 로리아니씨는 “재발 소견 없으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최종 성적표를 받으며 2013년 8월, 페루로 돌아갔습니다.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이 협조한 덕분일까요. 2017년 6월,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해외 환자가 국내에서 암 치료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로리아니씨와 같은 해외 환자들도 국내에서 암을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서울성모병원을 비롯한 다수의 국내 병원은 해외 환자들을 위한 국제진료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성모병원의 경우, 영어, 중국어, 불어, 아랍어, 러시아어, 일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의료진과 코디네이터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정 교수는 로리아니씨를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중국에서 온 근골격 종양환자들을 치료해왔습니다. 해외 환자의 경우, 입국 전 병원 내 국제진료센터와 연결돼 치료를 필요로 하는 내용과 치료 가능 여부를 먼저 상의합니다. 그 후, 치료 가능한 대상이 되면 입국 및 입원절차를 진행하게 됩니다. 입원 후 진료는 국내 환자와 크게 다르지 않게 시행됩니다. 다만, 최대한 소요기간이 늘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신경 써서 치료합니다.

<로리아니씨>

-완치 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무사히 학업을 마쳤고, 고등학교 졸업 후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투병 생활을 하며 주변의 도움으로 힘을 얻었던 좋은 기억이 교사의 꿈을 키우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아이들과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매일매일 깨닫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도 골육종을 진단받기 전보다 오히려 더 건강해졌습니다. 건강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은 덕분에,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건강하게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오기로 한 결정이 인생에서 제일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엄마와 여동생을 페루에 남겨두고 아버지와 단둘이 낯선 나라에 와야 한다는 사실이 처음엔 두려웠습니다. 페루에서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며 한국행을 반대하던 마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료진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도움과 배려는 저의 두려움을 차츰 없애주었습니다. 언어, 환경, 음식 등이 낯설고 무서울 저를 위해, 많은 분들이 페루 음식을 직접 만들어 주시고 말동무가 돼주며 정서적으로 큰 힘이 돼주었습니다. 의료진과 여러 공동체의 사랑과 애정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받고 현재까지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이 저를 살린 셈이죠.”

-한국에서의 일화 중 크리스마스가 가장 기억난다고요?
“교수님을 비롯한 서울성모병원 의료진들이 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저를 위해 세심하게 배려해주셨습니다. 부모님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낯선 한국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저를 위해 교수님께서 귀여운 강아지 인형을 선물해주셨습니다. 항상 껴안고 지내다보니 제 애착인형이 됐어요. 병원생활을 할 때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의료진이 크리스마스 캐럴도 불러주시고…. 한국에서의 크리스마스가 제겐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투병 중인 다른 암 환자들에게 한 마디.
“처음에 암 진단을 받고 이겨내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두렵고 힘들겠지만, ‘나는 할 수 있다. 끝까지 싸우면 이겨낼 수 있다’를 되뇌세요. 옆에서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의료진, 가족을 믿고 의지하다 보면 암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열심히 먹고 운동하다 보면 분명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정양국 교수>

-로리아니씨의 현재 상태와 예후는?
“로리아니씨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나눔의료사업 우수사례에 선정돼 수술 후 46개월이 경과한 2017년, 서울성모병원에 재방문했습니다. 2017년도, 수술 후 11년이 경과한 현재도 전이 없이 완치된 상태입니다. 어깨와 팔꿈치 관절 역시 아무 이상 없이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만 지낸다면 암에 걸리지 않은 일반인처럼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습니다.”

-교수님께 로리아니씨는 어떤 환자였나요?
“로리아니씨를 만난 지 어느덧 11년이 넘었습니다. 당시 12세의 어린 아이가 팔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매우 힘들어 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은 낯선 나라에서 항암 치료와 수술을 받는 것이 두려웠을 텐데도 불구하고 의료진과 절 전적으로 믿고 따라줬습니다. 난이도가 높았지만 제 전공인 골육종인 만큼 신중하게 치료에 임했고, 다행히 항암 치료와 수술 모두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많은 분들의 지지도 빠른 회복에 큰 도움이 된 듯합니다.”

-국내 골육종 치료 현황은?
“골육종은 뼈에서 가장 흔한 원발성 악성 종양으로 전체 암종의 0.2%를 차지하는 드문 종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100명, 미국의 경우는 500~1000명 정도 발생합니다. 골육종의 70%는 성장 발육이 왕성한 10대 청소년들에게서 많이 나타납니다. 또한 여자보다 남자에게 조금 더 많이 발생하는데요. 성장통으로 오인돼 병원에 늦게 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발생 부위, 재발 여부, 전이 유무, 환자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치료법을 선택합니다. 치료 성적은 일반 암종에 비해 좋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이가 없는 경우, 진단 후 5년 생존율이 70%에 달해 초기에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서울성모병원의 골육종 환자 전체 생존율은 77.6%, 전이가 없는 환자의 경우 91.9%로 치료 성적이 좋습니다.”

-종양 전문의로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고?
“골육종을 비롯한 국내 암 치료 성적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치료 성적만큼 암 환자의 삶의 질 개선도 중요합니다. 주치의는 환자들과 함께 최적의 치료 방법을 찾아 치유와 회복을 돕는 동반자라고 생각합니다. 환우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투병의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고 치유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골연부종양센터의 ‘You Believe, We Care!’라는 슬로건처럼 저희를 믿고 따라와주신다면, 정확하고 신속한 진단, 최적의 치료, 적극적인 재활을 통해 환우들의 생명과 삶을 돌보는 의사가 되도록 매 순간 노력하겠습니다.”

-골육종 환자들에게 한 말씀.
“암에 걸렸다고 좌절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골육종은 다른 암종에 비해 매운 드문 종양으로, 주변 분들의 도움이나 위로의 말이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골육종은 지금도 계속해서 여러 치료제들이 개발되며 이전보다 높은 장기 생존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치료받으시길 바랍니다. 또한 골육종을 비롯한 대부분의 암은 초기에 진단해 수술적 절제가 가장 좋은 치료인 만큼, 치료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통증이 지속될 경우, 신속하게 내원해 검사받으시길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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